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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환 Aug 16. 2020

나는 ‘Sex’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6. Sex 성

 * Sex : ‘자르다’ 뜻의 라틴어 sexus에서 유래     


 제목에서도 언급했듯이 저는 이 단어를 별로 안 좋아합니다. 지금이야 성별을 나타낼 때 사회학적 혹은 정신적 성(性)을 의미하는 gender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지만, 몇 년 전만 하더라도 sex를 별 문제의식 없이 남용했었습니다. 2007년 뉴질랜드로 떠나기 전 여권 발급신청서 작성할 때도 그랬었고, 이후 호주에서 유학 생활할 때에도 각종 신청서 작성 시 ‘Sex : Male / Female’로 되어있는 선택지를 많이 봤었어요. 당시에는 큰 문제의식 없이 넘겼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굉장히 부자연스러워 보여요.       


 성(性)을 가리키는 단어 sex는 ‘자르다, 나누다’는 의미를 가진 라틴어 sexus(seco의 동사 변형)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즉, 남자와 여자를 생물학적 성에 따라서 반으로 뚝 잘라버린 것이지요. 물론 남자와 여자를 구별하는 것이 필요한 경우도 있겠지만, 빵을 두 조각으로 쪼개듯이 잘라버리는 것이 맞는 것일까요?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는 ‘여성성’과 ‘남성성’이 모두 내재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어릴 때 부모님이나 주변 사람들로부터 여자들은 내면의 ‘남성성’을, 그리고 남자들은 ‘여성성’을 억압하도록 규제받아요. 그것이 일종의 암묵적인 사회 규범으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죠. ‘남자는 눈물을 흘리면 안 된다, 인형을 가지고 놀면 안 된다, 거친 운동을 해야 한다’, ‘여자는 조신해야 한다, 치마를 입어야 한다’ 등 해야 할 것과 해서는 안 될 것들이 생물학적 성(性)의 차이에 의해 많이 구분되어 있어요.      


 <Happy Ending>이라는 노래로 유명한 가수 Mika의 노래 중 ‘그녀가 내게 말했다’는 뜻의 <Elle me dit>라는 노래가 있는데, 가사를 살펴보면 노래 주인공인 소년이 겪는 스트레스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습니다. 소년의 어머니는 ‘다른 남자애들처럼 밖에 나가서 공 차고 놀아라, 왜 집에만 처박혀서 인터넷 하며 인생을 낭비하니’ 등의 잔소리를 끊임없이 늘어놓지요. 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주인공 빌리는 또 어떠한가요? 물론 나중에는 그의 아버지와 형이 빌리의 발레에 대한 재능과 열정을 인정하지만, 초반에는 빌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 광산에서 평생을 일하며 거친 삶을 살았던 당신의 주변 환경 탓에 ‘발레는 여자들이 하는 운동’이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빌리에게 복싱만 권하곤 했었지요.       


 해도 되는 것과 하면 안 되는 것의 기준은 누가 정한 것일까요? 남자가 복싱이 아니라 발레를 좋아하거나 화장을 하는 것, 여자가 고무줄 놀이보다 축구를 좋아하는 것 등도 관점에 따라서는 크게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아니,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것이 될 수도 있어요. 남자라고 해서 무조건 로맨틱 코미디 영화보다 액션을 좋아하라는 법도 없고, 여자라고 해서 소주 한 잔 하는 것보다 카페 가서 커피 마시면서 수다 떨기를 더 좋아하라는 법도 없지요.     


 더 나아가 이런 관점에서 보면, 마스크 팩을 붙이고 드라마를 보며 눈물을 훔치고는 하시는 아버지들과, 그 모습을 보며 울지 말라고 다독이거나 큰 소리를 치시는 어머니들의 모습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갈 것입니다. 누군가는 나이가 들수록 여자는 남성 호르몬이, 남자는 여성 호르몬이 더 많아져서 그렇다고 말합니다. 물론 과학적으로 그럴 수도 있지요.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하며 억압했었던 내부의 남성성 혹은 여성성을 밖으로 표출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변한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더 솔직해지는 것이지요. 주변 사람들을 크게 신경 쓸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 어른이 되어서야 비로소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질 수 있다는 것이 조금은 슬프긴 하네요.


 지금은 ‘탈 코르셋’ 혹은 ‘탈 맨박스’ 등의 사회적 운동이 활발해지며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지만, 아직까지 그 분위기를 따라가지 못한 채 자신의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여자/남자는 그러면 안되지’라는 문구를 아직 머릿속에 담아두고 있다면 지워버리길 바랍니다. 자신도 분명 밖으로 꺼내기 쑥스러운 남성성 혹은 여성성을 가지고 있을 것일 텐데 말이죠. 그럼에도 이를 표출하는 이들을 향해 해롭고 날카로운 말을 던지는 것은 심보가 고약하다고 밖에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게 더 부끄러운 일 아닐까요?


- 2020년 8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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