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요즘 영화 <해리 포터>에 빠져있습니다. 마지막 시리즈인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이 개봉된 지 거의 10년도 훨씬 지난 지금 이런 이야기를 하면 조금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예요. ‘갑자기 생뚱맞게 뭐지?’
제가 <해리 포터> 시리즈를 처음부터 다시 정주행 하며 ‘공부 아닌 공부’를 하고 있는 이유는 이 영화의 새로운 면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우선 별 의미 없다고 생각했던 많은 주문들이 라틴어를 어원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게다가 의외로 영화 중간중간에 철학적인 내용들도 많이 포함되어 있더군요. 이런 새로운 매력을 발견했기에 ‘와 해리 포터가 이렇게 깊이 있는 영화였나?’하고 감탄하며 1편부터 찾아보고 있는 것입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작가 조앤 K. 롤링은 대학교에서 불문학과 고전학을 전공했었다고 하네요)
예를 들어 ‘리디큘러스(Riddikulus)’라는 주문을 봅시다. 이는 상대가 두려워하는 존재로 모습을 바꾸는 보가트(boggart)를 물리칠 수 있는 주문으로, 간단해 보이지만 제대로 사용하기 결코 쉽지 않습니다. 진정으로 웃기다고 느낄 정도로 보가트를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변신시켜야만 효력이 있기 때문이지요.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계속 공포를 느끼면 주문은 아무 쓸모가 없어요. 이는 ‘웃기는, 말도 안 되는’ 등의 뜻을 가진 영어단어 ridiculous와 비슷한데, '웃다'는 뜻의 라틴어 ridere 혹은 ‘우스꽝스러운, 터무니없는’의 뜻을 가진 라틴어 ridiculus와 연관 있습니다. 즉, 이 마법은 ‘두려움의 대상에 굴복하지 말고 오히려 희화화하여 극복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지요. 이 얼마나 실용적이고 철학적인 조언인가요.
이 외 많은 흥미로운 소재들 중 저로 하여금 가장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던 것은 바로 ‘Mirror of Erised’, 즉 ‘소망의 거울’이었습니다. 영화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에서 해리는 우연히 어느 방에서 거울 하나를 발견하고 다가가는데, 갑자기 거울 속에 자신의 부모님 모습이 나타납니다. 기억도 제대로 안나는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여의고, 이후 심술궂고 포악한 더즐리 이모네 집에서 자랐던 해리는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지요. 그렇게도 그리워하던 부모님의 모습을 보게 되었으니 얼마나 행복했을까요. 흥분한 해리는 다급하게 친구인 론을 깨워서 그 방으로 데려간 뒤 그에게 거울 속 자신의 부모님 모습을 보여주려 하지만, 론에게는 해리 부모님의 모습이 아니라 퀴디치 주장으로서 우승컵을 들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이후에도 해리는 종종 그 방을 찾아가 한참 동안 거울을 보며 부모님을 그리워합니다.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렇게라도 부모님의 존재를 느끼고 싶었던 것이지요. 그러던 어느 날 이를 목격한 덤블도어 교수가 해리에게 다가가 조언의 말을 전합니다. 진정 행복한 사람은 거울 속에서 현재 자기 모습 그대로를 본다며. 이룰 수 없는 꿈에 빠져 살다가 진짜 삶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Happiest man on earth would look into the mirror and see only himself exactly as he is ... It does not do to dwell on dreams and forget to live) 해리를 이토록 빠져들게 만들었던 ‘소망의 거울’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책을 확인해 보면 거울 위에 “Erised stra ehru oyt ube cafru oyt on wohsi”라는 문장이 적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처음엔 이 문장이 라틴어 아니면 고대 문자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아니더군요. 이를 거꾸로 읽으면 “I show not your face but your heart’s desire”가 된다. 이는 ‘나는 너의 모습(얼굴)이 아니라 너의 진심 어린 소망(바람)을 보여준다’는 의미로, 즉 이 거울은 덤블도어의 말과 같이 우리 마음속 가장 간절한 소망만을 보여주는 존재인 것입니다.
해리는 제대로 기억하지도 못하는 ‘부모님과의 만남’을, 론은 ‘퀴디치 팀의 주장’으로서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것을 가장 원했듯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각자 자신만의 가장 간절한 욕구나 바람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해리포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최소 한 번쯤은 위의 장면을 보며 '내 모습을 소망의 거울에 비춰본다면 어떤 모습이 나올까?' 하며 상상해 봤을 겁니다. 저도 상상력을 동원하여 한번 내 간절한 소망을 머릿속에 그려봤어요. 그랬더니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전국을 돌며 강연 다니는’ 모습이 나타나더군요. 물론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임을 알지만, 생각만 해도 즐거워지는 상상이기에 우울하고 막막할 때 한 번씩 위의 행복한 공상에 빠지곤 합니다. 다행히도 이러한 욕망이 나에겐 긍정적인 동기부여가 되고 있습니다. 덕분에 지금도 글을 쓰고 공모전에 참여하며 내 이름으로 된 책을 출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지요.
단, 한 가지 경계하려는 것은 있습니다. 바로 현실을 자각하지도 못한 채 제대로 된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지요. 마치 소망의 거울 앞에서 시간을 허비했던 많은 호그와트 학생들처럼. 흔히 공상에 빠져 막연하거나 허황된 것을 쫒는 행위를 ‘뜬구름 잡는다’고 표현하는데, 이를 영어로는 chasing mirage라고 합니다. 여기서 mirage는 신기루를 의미하는데, 거울을 뜻하는 mirror와 같은 어원에서 유래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소망의 거울’은 신기루와 비슷한 존재인 것 같아요. 지금의 저에겐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것이 신기루와 같은 것이지요.
아무 생각 없이 사막에서 오아시스라는 신기루를 쫒아다니다 보면 목말라 죽게 되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한 사실입니다. 제가 만약 저만의 신기루에 빠져 일도 안 하고 글만 쓰며 현실을 보지 않으려고 한다면, 소망의 거울 앞에서 멍하니 행복한 상상만 하는 것과 다를 바 없지 않을까요? 그렇기에, 제 목표가 신기루가 되어 사라지는 모습을 보지 않으려고 욕망을 생산적으로 사용하며 노력하고 있습니다. 직장 다니며 밥벌이 하면서도 매주 최소한 2~3개의 글 쓰고 오탈자 확인한 뒤 브런치에 발행하는 일상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지요.
다만 돌이켜보면 아직까지는 소망의 거울에 제 모습을 비춰봤을 때 현재 그대로의 모습이 나타난 적은 없었습니다. 그만큼 제가 진심으로 행복해하며 그 시간을 제대로 보냈던 적이 없었다는 반증인 것이지요. 하지만 다행히도 지금은 조금씩 거울에 지금 제 그대로의 실루엣이 끄트머리쯤에 보이기는 합니다.
내가 나다워지기 위해 필요한 것은 ‘소망의 거울'에서 현재 제 모습을 그대로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이 거울은 다른 여느 거울과 다르지 않게 될 것이지요. 저는 앞으로도 제가 지금 잘하고 있는지 판단하는 잣대로 ‘소망의 거울'을 활용하려고 합니다. 이것이 가능해진다면, 스스로를 더 소중히 여기게 될 뿐 아니라 나를 나답게, 그리고 품위 있게 만들어 주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