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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길 조경희 Feb 25. 2024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을 읽고

삶을 변화시키는 한 문장

자기 머리로 생각하면 겁날 게 없다고 말하는 선생님은 죽음 앞에서도 죽음이 생의 한가운데 있다고 말합니다. 암이 온몸으로 전이되고 그 고통을 가늠할 수 없는데 마지막 순간까지 삶의 지혜를 은유로 말씀하십니다.     

고분고분 둥글둥글 살면 평생 진실을 모르게 된다(97p)는 말이 뼈를 때렸어요. 

어렸을 때 고분고분 둥글둥글 살았거든요. 

범생이, 모범생, 모나지 않은 아이....^^


손가락질당하고, 비뚤어진 놈이라는 말을 들으며 

지적으로 생각하면 말이 안 되어 또 손을 들고 질문을 했다는 이어령 선생님의 지적 능력은 

범접할 수 없는 타고난 능력이 아닐까 싶어요. 


들에 쓰러져 자는 술 취한 제 주인을 구하려고 

강에 몸을 적셔 주인을 구했다는 충견 이야기를 들었을 때, 

'아 그렇구나!' 생각했고 지금도 아이들에게 '아 그렇구나!'를 가르치는데, 

선생님은 납득이 안되었다고 해요. 

에이 선생님 말도 안 돼요. 

들판이 다 타는데 어떻게 그 사람만 안 죽어요. 

개가 물 적셔 비빈다고 어떻게 불에 안타요. 

불에 안타도 연기 때문에 질식해서 먼저 죽지 않나요? 

과연 선생님 말씀에 이렇게 질문하는 아이가 있을까 싶어요


솔로몬이 ‘아이를 반으로 갈라 가져라’ 했다는 솔로몬의 지혜로 회자되는 말씀에도 

죽은 아이 반쪽을 뭐에 쓰려고 저 가짜 어머니는 좋다고 했을까? 

이거 거짓말이구나 했다니 사고의 틀이 달라도 너무 다른 것 같아요.     


이어령 선생님의 이야기를 읽으며 끝없이 ‘왜요?’를 반복하며 고집부리는 아이를 

어떻게 양육해야 하나 크나큰 숙제가 남았어요. 

자꾸만 왜요? 하고 물으며 따지면 피곤하고 힘들거든요. 

처음에는 한두 번 답해주다 나중에는 ‘네 알았습니다’ 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가르쳐요. 

제가 배운 그대로 가르치는 것은 아닐까 싶어요. 

아이들 밥상을 먼저 차려주고 나중에 종사자들이 먹는데 

‘너희들 밥 다 먹었으니까 방에 가서 조금 쉬고 있을래?’ 하면 

왜요? 

왜 그래야 하는데요? 하는 아이가 있어요. 

‘선생님도 배고프고 밥 먹어야 하는데 조금 조용하게 먹고 싶어서 그래’하면 

‘제가 떠드는 것도 아닌데 왜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세요?’ 하는 아이가 있어요. 

정말 피곤하고 힘든 아이인데 

이어령 선생님의 이야기를 읽고 보니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많아져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스스로 답을 찾을 때까지 기다려야 할까요?

아님 뭘 자꾸 따지고 물어 그냥 그러면 그런 줄 알아

선생님도 편하게 밥 먹을 수 있도록 방에 들어가서 놀았으면 좋겠어라고 

끝까지 저의 말에 따르도록 강요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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