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다. 에어컨으로 꼭꼭 쳐닫았던 문이 계절을 알렸다. 지난 여름은 낮시간대에 들락대는 호사를 누렸다. 그만큼 현관 밖 창문 닫힌 복도에 머문 시간도 많았다. 주상복합건물, 동서남북으로 다닥다닥 붙은 집들이 눈에 들어왔다.
간밤에 내린 비로 바닥에 다닥다닥 납작 엎드린 나뭇잎
누구네 집 오늘 김치찌개 끓였네.
누구네 집 오늘 삼겹살 굽네.
누구네 집 오늘 고구마로 때우나.
엘리베이터까지 가는 내내 내 코에 대고 인사를 했다. 가뜩이나 개코라 쓰레기통을 뒤지지 않아도 먹은 걸 아는 사람인데. 회사 다닐 때도 심사위원님들과 식사할 때 식당에서 미리 내어 준 물도 알아 맞쳤다. 위원님들은 둥글레차네 무슨 차네 하셨지만 그냥 '보리'라 했던 내가 정답. 직원들과 함께 탄 엘리베이터 안에서 어느 집 치킨 배달부가 타고 내렸는지도 낌새 챘던 개코.
오늘 아침 바람이 코를 찔렀다. 김치찌개 냄새가 나질 않으니 괜한 걱정도 들었다. 단지 바람에 등 떠밀린 찌개 냄새이리라. 내 맘이 편치 않을 땐 음식 냄새는 공해였다. '음식 냄새 = 사람 사는 냄새'인 걸 보니 '철' 든 향수를 뿌렸나보다.
"니 아버지는 어째 그리 행동이 느리냐"
"행동개시, 행동대장인 나랑 어째 그리 달러"
어제 엄마의 귓속말이었다. 가지가지 하는 난 가지를 무척 좋아한다. 어제 아침식사를 하며 "기름에 볶은 가지보다 시어머니의 삶은 가지가 참 맛있었다"는 말을 우연히 내뱉었다.
오늘 아침 식탁 위에 손으로 푹푹 찢어 색다른 맛과 향을 뽐내는 가지 반찬이 덩그러니 있었다. 아부지가 만들어 놓은 작품이었다. 냄새가 코를 찌르진 않았지만 행동대장 아빠 때문에 코 끝 찡한 아침이었다(보라색 아닌 노란색 가지무침 사진 찍는 걸 깜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