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잘 먹는
매일 걷기운동은 도서관 산책로다. 오전 재활 운동 마치고 점심 무렵 길을 나섰다. 어느 순간 한 남성이 뒤따랐다. 노래를 하도 진지하게 크게 불러 뒤통수 공기를 감지했다. 가요제에 나갈 건지, 공연을 준비 하는지, 노래방에 대비한 건지 그냥 흥얼대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음의 강약과 높낮이였다.
참 용감할세. 나만의 개성대로, 내 느낌에 취해 사는 모습이 멋졌다. 누군지 궁금한데 고개를 획 돌릴 순 없고, 하던 터에 나를 앞질렀다. 그는 내 옆을 스쳐 앞으로 나아갔다. 노래 소리가 최대로 커졌다가 그의 보폭과 함께 저만치 음소거 되었다. 한 정거장 정도 음악 잘 들었군.
이제 도서관에 가려면 우회전을 해야 한다. 그는 일찌감치 우회전 했다. 도서관 3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난 황급히 들어갔다. 공과금이고 책이고 내 사전에 연체라곤 없는데 집안일로 하루 연체됐다(<해방의 밤, 은유).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 대출 연기도 되지 않았다. 이래저래 마음이 급했다. 반납처리 하고 바퀴달린 반납 책꽂이에 책을 꽂았다. 누군가가 재빠르게 튀어 나와 그 책을 쏜살같이 가져갔다. 가만 보자. 키 182cm 정도, 귀까지 내려오는 라면머리 가운데 가르마, 허리춤까지 오는 후드티, 롱다리를 너그럽게 품은 통바지.
책을 낚아 챈 사람은 다름 아닌 산책로에서 내게 음악을 들려준 그였다. 독서 하는 사람 관상이 따로 있는 건 아니지만 노래와 외모로 도서관에서 만난 데에 놀랐고 내 책을 올려 놓자마자 바로 가져가는 모습에 또 놀랐다.
"저기요!"
"네?"
"그 책 예약 대기자 있는 책이에요. 가져가시면 안 되요"
"저.... (함박 미소)"
라는 말과 함께 이어지는 그의 멘트에 난 입을 함부로 놀리지 않기로 했다.
"저 여기 직원이에요!"
그냥 놀라면 되는 것을 꼰대 티를 이토록 진하게 우려낼 줄이야.
도서관을 다녀 보지 않은 티
출근은 아침에 한다는 생각 티
예술과 책 사이를 멀게 바라본 티
쓸데 없는 오지랖과 입방정 티...
도서관 휴관일인 오늘,
그 틈 타 한 달 만에 건국대병원으로 산책 했다.
통증 소멸은 3개월~6개월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에
다리와 마음에 힘이 풀렸지만
이런 꼰대 저런 꼰대 할 것 없이
실수를 만회할 시간으로 삼으며
그와 있었던 일로 왜 사냐건 웃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