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듬으로 걷다
만물은 지나봐야 안다. 사람이든 사건이든 직접 겪지 않으면 잘 믿지 않는 편이다. <오 세브레이로>로 가는 길이 ‘급경사’라는 말은 들었으나, 나는 세상 평화롭게 비야프랑카를 떠났다. 험악한 분위기 속에서 혼자 해맑게 웃는 아이처럼, 알베르게의 복장, 반바지 그대로 가볍게. 어제 저녁 얻어먹은 소고기의 든든함과 감칠맛 나는 대구구이, 그리고 스페인 밀의 자부심이 담긴 고소한 아침 식사는 추위에 약한 내 몸에 훌륭한 땔감이 되어주었다. ‘잘 먹어야 잘 자고, 잘 자야 잘 걷는다’는 나만의 원칙이 착착 들어맞는 리듬이었다. 허연 허벅다리를 내놓고 걷는 나를 보며 지나가는 이들은 춥지 않냐는 눈길을 보냈지만, 정작 내 몸은 용광로처럼 뜨거웠다. 어둠 속을 한 발 내딛는 순간마다 나는 그림엽서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듯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나의 왼편은 분주했다. 보이지 않는 물줄기가 쉴 새 없이 자갈을 굴리며 달리고 있었다. 날이 밝자 강물이 정체를 드러냈다. <발카르세> 강 계곡의 물소리는 경쾌했다. 물소리가 잔잔했다면 내 걸음도 ‘안단테’였겠지만, 그 활기찬 소리에 맞춰 발걸음은 ‘모데라토’를 유지했다. 바람, 새, 강물의 소리가 빛을 대신해 더 크게 와 닿았다. 불안감은 불규칙한 심장에서 비롯되는데 일정한 리듬이 주는 평온함 속에서 순례자들의 발소리는 하나의 합주곡이 되었고, 그 흥겨움에 취해 바(Bar) 두 개를 속절없이 지나쳤다.
길 위에서 과거의 소리가 들려왔다. 지금과 똑같은 기온 속에서 폴댄스 공연을 준비하던 기억이다. 주말 아침마다 사장님께 부탁해 연습실 문을 열고, 120명의 관객 앞에서 폴에 매달렸던 나. 지나고 보니 나는 참 대단한 사람이었다. 이곳의 거대한 산맥과 어깨를 나란히 할 자격이 충분한 사람이었다. 길은 단순히 새로운 길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대단한 존재’였던 나의 지난날을 비추고 있었다. 오히려 앞날을 가리켰다면 그 테두리에 갇혀 그것이 또 다른 한계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길은 내가 무엇이든 가능하도록 나 자신을 증명하고 확신하게 했다. 나 자신을 대단하게 여기니 타인 역시 존중받아 마땅한 존재로 다가왔다. ‘나 자신을 대하는 것이 남을 대하는 것’이라는 진리는 우주 공간처럼 머릿속에서만 떠다녔을 뿐, 그동안 심장까지 중력으로 내려앉지는 않았었다. 인간은 누구나 이 땅에 태어난 것 자체가 ‘처음’인 소중한 존재들이니까.
‘강약중강약’ 자진모리장단으로 20km 지점인 <베레리아스>에 다다랐다. 이곳이 바로 ‘행복 끝, 불행 시작’의 기점이라 했다. 등산 무경험자라는 꼬리표가 상기되자 불안이 밀려왔다. 두려움을 잠재우려 또르띠야와 애플 타르트를 주문했다. 마침 옆자리에 앉은 S님과 Y님께 예의를 차려 타르트를 나눠 드렸다. 사실 오르막에 대한 공포 때문에 속으로는 “괜찮다”며 거절하시길 바랐던 옹졸함이 스쳤으나, 그들은 기쁘게 받아주셨다. 음식만 나누었을 뿐 공포감은 여전히 내 몫으로 남아있었다. 바에서 나오자마자 비스킷이며 젤리며 가방 속 물체들을 온통 내 뱃속으로 옮겨 담았다. 폭풍전야의 허기를 채우듯.
본격적인 오르막은 쥐구멍 하나 없이 끝없이 이어졌다. 내리막이라고는 단 한 발짝도 허락하지 않는 수직의 길. 그 와중에 길을 잘못 들어 산 중턱 알베르게까지 올라갔다 돌아 나오는 낭패까지 겪었다, ‘오르막’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피레네산맥이 보면 우스울 경사도였다. 덤불 위에 기진맥진해서 쉬는 순례자들이 곳곳에 보였지만 나는 오히려 박자를 높였다. 운동을 매일 하듯, 지금 쉬면 다시는 이 비트를 끌어올리지 못할 것 같았다. 그 가파른 길 위에서 사람을 태워다 주고 내려오는 말들을 만났다. 말 못 하는 짐승이 품었을 한(恨) 같은 배설물들을 보며, 나는 다시금 힘을 내어 걸었다.
언제까지 오르기만 하느냐고 입술이 삐죽 나올 때쯤 옆을 돌아보면, 산과 구름이 내 어깨 곁에 와 있었다. 가쁜 호흡이 치닫자 어느새 그들보다 내가 더 높이 있었다. 그동안 뒤통수 가르마처럼 난 먼 산을 바라보기만 했지 내가 그 험준한 길에 개미처럼 달라붙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자식이나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처럼 힘들지만 마냥 사랑스러운, 딱 그 마음이었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다는 마음으로 박차를 가할 때, 마침내 ‘갈리시아’ 표지석이 나타났다. 성경 속 ‘갈릴래아’와 이름이 비슷해서일까. 괜스레 성스러운 친근감이 밀려왔다.
영화평론가 이동진은 그의 저서 <생각이 기다리는 여행>에서 노을 한 마디가 행인의 발길과 시선, 시간, 생각마저 붙잡았다고 했다. 갈리시아의 경계가 나를 붙들었지만 일희일비하지 않기로 했다. 오르막은 여전히 계속되었으니까. 축하의 피리 소리와 함께 여성 동상이 나타났을 때 비로소 오르막은 끝이 났다. 끝없이 올라온 산의 정점, 그곳이 바로 오늘 내가 묵을 알베르게였다. 온 세상이 발아래 내려다보이는 그 높은 곳에 서니, 지금의 나를 만들기 위해 그동안의 그 모든 일들을 겪어온 것만 같았다. 마치 신이 이미 그려놓은 그림을 뒤늦게 통보받은 듯한, 그런 경건한 압도감이었다.
도착하자마자 먹은 갈리시아식 수프와 문어는 입안에서 살살 녹았다. 철의 십자가를 넘었을 때와는 또 다른, 예기치 않은 ‘못갖춘마디’ 박자로 곡이 완결되는 느낌이었다. 소화도 시킬 겸 동네를 몇 바퀴 어슬렁대다 산타 마리아 라 레알 성당에 들렀다. 붉은 초들이 활활 타오르는 기운에 이끌려 아들에게 편지를 써 초와 함께 봉헌했다. 성당 밖은 노란 화살표의 창시자, 엘리아스 신부의 흉상이 있었다. 9세기에 지어진 산타 마리아 성당은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변했다는 ‘기적의 장소’였다. 소나기를 피하듯 발을 들이자마자 시작된 미사, 그 우연한 참여는 참으로 옳았다. 28km, 고도를 감안하면 36km에 달하는 혹독한 구간이었지만, 결국 나는 나만의 리듬으로 이곳에 닿았다. 그 길 위에서 마주친 모든 순간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의 연속이었다.
오늘의 길은 나를 다시 가르쳐주었다. 나는 리듬으로 걷는 사람이다. 규칙적인 박자는 억지 의지가 아닌 즐거움을 낳는다. 가장 자신 없던 장거리와 오르막을 이겨낸 뒷심은 바로 그 리듬에서 나왔다. 리듬이 만든 루틴은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다. 또한, 내 안의 두려움은 ‘먹는 것’으로 푸는 정직한 사람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오늘의 성취로 내일의 공복을 다짐하며, 이제는 삶의 엇박조차 즐겨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