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세브레이로에서 트리아카스텔라
여덟 시를 넘겨 길을 나섰다. 산꼭대기 마을 <오 세브레이로>는 여러모로 설레게 하는 곳이었다. 어젯밤 내가 마을 아래를 내려다보며 감탄했던 그 자리가 바로 일출의 '생방송 지점'이었다. 어제와 다름없는 추위에 반바지 차림이었지만, 해를 기다리는 마음은 생리적 떨림마저 무찔렀다. 나에게 이런 인내심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자연의 힘은 놀라웠다. 마을 사람들 모두가 일제히 쏟아져 나온 듯, 우리는 한곳을 바라보며 빛을 기다렸다.
어둠 속에서 나무인지 사람인지 분간 안 되던 실루엣들이 빛을 받으며 제 정체를 드러냈다. 태양은 떠오르는 그 짧은 찰나에 참 많은 작품을 그려냈다. 구름의 스크래치부터 하늘의 빨래줄까지. 그 장엄한 일출을 기다리며 나는 내가 오랫동안 기다려온 '함께할 사람'과 '목적'에 대해 생각했다. 퇴직을 결심한 이유도 결국 댄 설리번과 벤저민 하디가 쓴 <누구와 함께 일할 것인가>에 있었으니.
한 시간쯤 지나 <산 로케> 고개에서 순례자 동상을 만났다. 발에 밴드를 덕지덕지 붙이고 뻐근한 목을 스트레칭하는, 그야말로 '리얼'한 순례자의 모습이었다. 도로가 시작되는 초입에 우뚝 서서 타이밍 좋게 자리를 잡은 그를 보며, 사직서를 던지고 새로운 길로 자리 잡은 나 자신도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는 오르기 위해 왼편의 강물이 수십 킬로미터를 데려다주었다면, 오늘은 내려가기 위해 오른편의 산맥들이 줄지어 나를 배웅했다. 베일 같은 안개를 두른 산맥들은 어제의 웅장함과는 또 다른 곱디고운 인상이었다. 멀리감치 선 산은 나무와 벼, 그리고 나를 한껏 끌어안은 공존의 세계였다. 낮은 돌담 사이 길을 걸을 땐 내 몸이 마치 물이 되어 다리 사이를 흐르는 듯했다. 일출 때 저장된 설렘은 여전했고, 이 길은 순례길이라기보다 천상낙원에 가까웠다. 걸으며 대충 셔터를 눌러도 사진은 예술이 되었다. 본판이 좋으니 사진이 개떡같이 찍혀도 결과물은 찰떡같았다.
이토록 예쁜 길, 맑은 날씨에 고마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그에 응답하듯 내 몸도 최고조로 건강해졌다. 산티아고에 오기 전 나를 괴롭히던 고관절과 어깨, 등의 통증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뒷발차기를 할 때마다 바위처럼 단단해진 엉덩이 근육에 깜짝깜짝 놀란다. 공기 좋은 곳에서의 '요양'으로 몸이 거듭나는 기분이다. 하루에 수천억 개의 세포가 죽고 다시 태어난다는 말이 실감 났다. 나뭇잎도 색을 바꿔 늘 새로워지는데, 하물며 인간인 내가 제자리걸음일 수야 없지 않은가. '인바디' 기계는 없지만, 나의 '눈바디'와 '근바디'가 확실한 근육량 증가를 입증하고 있었다.
대박 한 번보다 꾸준한 끈이 중요하다는 걸 가르쳐주려는 듯, 어제 <오 세브레이로>를 거친 후 가파른 오르막이 다시 나타났다. 그 클라이맥스 지점에 <포이오봉> 바(Bar)가 등장했다. 그곳의 또르띠야는 다른 곳보다 크고, 내가 좋아하는 반숙 달걀처럼 속이 물러터진 '외강내유' 스타일이었다. 주문 줄을 서서 기다리는 마음은 마치 아침에 일출을 연인처럼 기다리는 설렘과 같았다. 옆 테이블 사람은 달걀 비린내 때문에 못 먹겠다며 투덜댔지만, 내게는 그 부드러움이 마음까지 녹여주었다. 일한 만큼 보상이 따르는 정직한 체제. 내가 닭장 같았던 월급 소굴을 나와 원했던 삶도 바로 이런 것이었다. 강단과 유연함을 겸비한 개인이 스스로 조직이 되는 사회. 15시간의 공복 끝에 마주한 또르띠야에서 내 모습을 찾았다. 인간의 가장 큰 한계는 결국 '생각'이었다는 끝맛까지 더해지니, 오르막의 고통도 맛깔스럽게 소화되었다.
내리막에서 긴장이 풀렸는지 ‘직진’ 관성으로 길을 잘못 들었다. 그때 대만 여성이 "헬로우 헬로우!!"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나를 유턴시켰다. 천사는 모자란 인간 곁을 지키는 존재인가 보다. 앞만 보고 돌진하는 내 성격이 길 위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 셈이다. 앞만 보고 돌진하는 성격은 갈리시아 수프 맛집인, 사람이 들끓는 바도 건너뛰게 했다. 길을 헤맨 덕에 멕시코 여성 마리솔을 다시 만났다. 영어가 서투른 걸 양해 구하며 더듬더듬 대화를 나누었다. 가족사진을 보여주며 멕시코에 놀러 오라던 그녀. 사람은 역시 빵만으로 살 수 없는 존재다.
길 위에는 온통 외국인뿐이었다. 돌담과 나무, 능선으로 구역을 나눈 풍경은 각자의 책임을 온전히 다하는 존재들로 보였다. 심지어 우르르 몰려오는 소떼마저 한 줄서기로 우리와 구분 지었다. 그 구별된 풍경 속에 내가 하나로 녹아드는 기분은 세상을 다 가진 듯했다. 예전의 내게 길이란 그저 목적지에 닿기 위한 지루한 도구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곳에선 길 자체가 하나의 정교한 예술이자 작품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저 멀리, 마치 개미가 줄지어 가는 것처럼 아득해 보이던 길도 어느 순간 발밑의 현실이 되어 있다. 시공간의 마술을 느끼고 나니 '시간은 관찰자의 속도와 중력에 따라 다르게 흐른다'던 아인슈타인과 급격히 친해진 기분이다.
한참 길을 걷다 시야에 선명한 주황빛이 들어왔다. 잘 익은 감처럼 밝고, 순례자의 복장이라기엔 지나치게 화사한 주황색 원피스 차림의 누군가가 빨간 열매가 열린 나무 밑을 걸어가고 있었다. 묘한 호기심에 이끌려 걸음을 재촉했다. 뒤를 쫓아가 조심스레 말을 건 순간, 나는 멈칫했다. ‘그녀’라고 확신했던 뒷모습의 주인은 텁수룩한 ‘그’였다. 주황색 점퍼를 허리에 두르고 걷던 호주 남성에게, 나도 모르게 “여자분인 줄 알았어요!”라는 실례 섞인 고백을 날리고 말았다. 멋쩍은 웃음 끝에 불쑥 이런 생각이 차올랐다. 다음번에 이런 우연한 만남에서 좀 더 자연스럽게 농담을 주고받으려면, 한국에 돌아가자마자 중학생 수준의 영어부터 다시 시작해야겠다고. 글도 마찬가지다. 중학생도 단번에 이해할 수 있는 문장으로 써 내려갈 때, 비로소 삶의 진솔한 무늬가 드러나는 법이니까. 길 위의 대화도, 종이 위의 문장도 결국은 본질로 걸어야 하는 법.
오늘의 목적지 <트리아 카스텔라>에 도착했다. 외진 곳 작은 바에서 5유로짜리 치즈 샌드위치를 먹었다. 바게트에 치즈 달랑 한 장 들어있을 뿐인데, 본질에 충실한 그 맛이 마음을 녹였다. 나도 이런 치즈 샌드위치 같은 무기를 장착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산장 같은 알베르게의 유리 천장으로 빛이 쏟아지고, 창밖의 빨래줄은 오선지처럼 정겨웠다.
길 위에서 보던 풍경만 자연이 아니었다. 내 눈앞에 자연스럽게 펼쳐지는 이 모든 생동감이 다 ‘자연’이었다. 아름다움은 가장 자연스러울 때 빛난다. 그리고 그 자연스러움이 곧 ‘나다움’이다. 길은 자연이 무엇인지, 그리고 내가 누구인지 자연스럽게 가르쳐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