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운과 운치

사리아에서 포르토마린

by 푸시퀸 이지

자린고비가 천장에 매단 굴비를 보듯, 알베르게를 나서면 고개가 절로 하늘을 향한다. 손톱 같은 달과 <사리아> 표지판 불빛을 눈에 담으며 하루를 열었다. 아침 공복 3일차지만 몸과 마음 점수는 10점 만점에 9점이다. 시작부터 가파른 오르막이 앞을 막아섰지만, 이제 오르막 유무는 이 길에서 날씨처럼 일상이 되었다. 추위와 배고픔을 안고 오르는 길 한쪽을 밤나무 고목들이 울타리처럼 지키고 있었다. 전체가 거대한 뿌리처럼 보이는 그 굵직한 몸통들. '버팀목'이라는 단어가 절로 튀어 나오는 모습이 마치 내게 '두려워하지 마라'며 지지해 주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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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안개가 펼쳐졌다. 뭉친 구름을 좌우로 늘려 놓은 듯한 희미함 속에서 언뜻 비친 나무는 산신령 같았다. 이전 길들이 구름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었다면, 오늘은 안개 속으로 입장하는 기분이다. 앞길은 원래 불투명한 것이라며, 알 수 없는 미래를 기꺼이 받아들이게 한다. 세상이 안개 같아도 결국 빛은 들어온다. 자연은 내 몸 상태를 살피느라 말을 아끼던 수준을 넘어, 4주차인 오늘 드디어 수다쟁이가 되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남은 거리를 세기 쉬워지자 비로소 터져 나온 아쉬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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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황색 화살표를 보니 나이키 짝퉁 ‘나이스’가 떠올랐다. 순례길 화살표를 교묘히 흉내 내어 자기네 알베르게로 유인하던 <오 세브레이로>의 상술이 생각나서다. 순례자의 간절함을 이용하는 그 얄미운 장삿속에 길을 잘못 들었던 기억이 화살표 사진과 함께 선명히 겹쳤다. 공복 상태인 데다 순례길 작별 예고로 바(Bar)는 이제 설렘을 넘어 애잔하기까지 했다. 4주째 걷는 지금, 물리적 거리로 일희일비하며 역세권에 목숨 걸던 내가 오히려 멀게 느껴졌다. 허기는 왕성한 혈기도 꺾는 재주가 있다. 도대체 바는 언제 나오느냐고 길에서 물으니 이미 4km 지점에 있었다고 한다. 밤나무 바통을 이어받은 사과나무 길 구경에 빠져 또 그냥 지나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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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순례길 옆길로 새서 보이는 바에 들어갔다. 3.5유로나 하는 또르띠야는 맛과 크기 모두 최악이었다. 어제 뽈뽀 집에서 먹은 1유로짜리 빵에 입이 고급이 된 건지, 빵은 껌을 씹는 듯 턱이 아팠다. 주운 사과 맛이라도 보려 했으나 너무 떫어 소설 <소나기>의 소녀처럼 “아, 맵고 써“라며 던져버릴 뻔했다. 떫은 사과 맛과 소똥 냄새가 마음까지 떫게 만들었다. 화장실 비용으로 치려했더니 화장실 청결 상태까지 감각을 마비시켰다. 사람 많은 바에 가자던 다짐을 어긴 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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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 악취는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갈리시아 대명사' 같은 향기려니 하고 뇌리에 박았다. 4주 동안 매일 30km 안팎을 걷는 것, 그것이 산티아고 조직에 입사한 나의 주된 업무였다. 그동안 나는 끝장을 보는 것이 책임이자 의무라고 생각했다. 일하는 패턴이 길 위에도 투영되었다. 이전에는 지금 닥친 괴로움보다 고통에 끝이 없을까 봐, 계속 이렇게 살까 봐 불안해했다. 그러나 길을 걸어 보니 모든 것엔 끝이 있었다. 끝이 있다는 사실만 잊지 않는다면 걱정도 자연스레 빠져나갈 일이다. 시간이 약이라는 흔한 말은 곧 모든 것에 끝이 있다는 말이었다.


길에서 만난 한국인 가족이 내게 "아가씨는 참 빠르시네요"라고 인사를 건넸다. 아가씨라는 단어가 두 다리에 모터를 달아 주었는지 발걸음이 빨라졌다. 그러다 하체 비만 나무를 만났다. 나무는 내게 노후 준비는 이렇게 하라고 일러주는 듯했다. 30대 아들과 함께 걷는 가족 순례객을 보며, 하체에 단단히 뿌리 내린 저 나무처럼 나의 노후도 견고하기를 떠올려 보았다. 길은 "넌 그래"라고 말해주는 거울이 되었다. 내가 생각했던 모습과 같은 모습에서는 역시 나는 그랬다는 확증을, 전혀 다른 모습에서는 내게 이런 면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영역을 확장했다. 가령 런닝머신 위에서 영상이나 오디오에 의지해 걷던 내가, 이제는 걸음 자체에 무게 실어 장거리를 걷는다. 표지석 미터기가 1km씩 줄어들 때마다 택시 요금이 올라가는 느낌이다. 99km로 숫자가 떨어지는 순간 자동적으로 걸음이 늦춰졌다. 잔고 줄어들듯 빠르게 빠져나가는 거리를 붙잡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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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들었던 길과 헤어질 생각을 하니 눈물이 났다. 위로해 주고, 다독여 주고, 내가 누구인지 밝혀 준 이 자연을 두고 가려니 마음이 짠하다. 내려놓는 법과 견디는 법을 몸소 가르쳐 준 이 길에게 받은 게 너무 많아 서글펐다. 혼자라는 생각에 어금니가 부서질 정도로 버텼던 세월이 떠올랐다. 이제 나를 품어준 이 자연이 나를 한국으로 시집보낸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알베르게에서의 한 달 생활, 집과 사택 짐을 싸고 풀은 횟수가 24번이라 익숙했다. 발 뻗고 누울 장소가 있어야 마음 편히 일하듯, 길은 내 삶의 궤적을 그대로 투영해 주었다.


알베르게까지 한 시간 남짓 남겨두고 일부러 성시경 노래를 틀었다. 아쉬움에 귀를 열어도 부족할 판에 틀어막으니 참았던 눈물이 터졌다. 선글라스와 모자가 고마운 가림판이 되어주었다. 길은 온전히 아들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함께 보낸 추억을 보여주었다. 붙잡는 것도 집착이거늘, 눈물 흘리는 나를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오늘 세 번이나 길을 잃었다. 사랑하는 자연과의 이별로 눈이 멀어 다리가 횡설수설했지만 그때마다 천사들을 만났다. 직진하는 나를 불러 세운 외국인 여성들, 주방문을 화장실로 착각한 내게 소리쳐 준 이들, 아스팔트 길로 샌 나를 쫓아와 경적을 울리며 백(Back) 하라던 트럭 운전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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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 하산을 마치니 기나긴 흰 다리가 나타났다. 메마른 강조차 한 폭의 그림이다. 포르토마린은 수몰된 마을의 돌을 하나하나 옮겨 번호를 매겨 다시 지은 도시다. 복원 정성은 갸륵하나 다 와서 성벽 같은 계단을 세웠으니, 쉽게 품을 내주지 않는 마을이다. 돌담 관문을 통과하자 세련된 바(Bar)가 나왔다. 유럽다운 한적함에 이끌려 폼을 잡고 앉아 메뉴판을 열었다. 와인 한 잔에 7.5유로. 목이 타들어 갔지만 가격에 내두른 혀도 함께 타들어가기로 했다. 폼 잡고 앉았다가 메뉴판만 보고 튀어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라, 같은 가격의 콩 수프를 주문했다. 세숫대야 같은 그릇에 담긴 갈리시아 수프가 눈물로 빠져나간 염분을 알차게 채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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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게에 도착하니 Y님이 주워온 밤을 삶아두셨다. 배낭에 담아온 정성과 아스토르가에서 팔던 것보다 뛰어난 맛에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행복을 누렸다. 그 기분 그대로 성 니콜라스 성당 미사에 참여했다. 마을에서 가장 먼저 재건된 곳답게 이제 막 세례 받은 듯 깨끗했다. 저녁 식사로 마주한 연어 스테이크는 남은 '아쉬움'을, 남성분이 건넨 한 덩어리는 '미련'마저 싹 몰아냈다. 본래 단순한 유전자인지, 길이 나를 단순하게 만든 건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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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헤어진다는 설움에 분리불안이 일었다. 하지만 아침마다 올려다보는 하늘처럼, 같은 하늘 아래 존재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심장 뛸 일이다. 이전 알베르게에 두고 온 3단 우산이 오늘까지 세 번이나 되돌아왔다. 놓고 간 줄 알고 누군가 나를 떠올려 주는 것, 그것이 여운 아닐까. 늘 가득 찬 것이 아닌 어딘가 모자라고 아쉬운 구석이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여운이자 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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