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토마린이라 적힌 긴 표지판 옆으로 관광버스가 나란히 서 있었다. 인공미를 덜어낸 순수한 마을을 독점하고 싶었지만, 이내 내 이기심을 알아차리고 ‘내려놓기’ 신발로 갈아 신었다. 어제와 반대 방향으로 돌아 나가는 발걸음이 큰 원을 그리는 듯했다. 해가 비칠 때 만난 어제저녁 성당과 해가 진 후 재회한 오늘 아침 성당. 빛과 그림자를 모두 접한 기분으로, 지그재그로 금이 간 반쪽짜리 하트가 서로 딱 들어맞는 느낌의 출발이었다.
어제 알베르게에서는 외국인들과 16명 정도 함께 묵었다. 내게 와 밤을 맛있게 먹었다고 두 번이나 반복하던 외국인 여성, 선크림을 편히 바르도록 거울 앞 자리를 비켜준 외국인 남성. 그토록 화기애애하던 방은 오늘 아침 포커페이스로 둔갑했다. 팀원 중 한 명이 잠깐 화장실에 간 사이 전대 가방에서 돈만 사라지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행방불명된 돈과 일찌감치 비어버린 외국인의 침상을 바라보며 씁쓸한 첫걸음을 내디뎠다.
아침 공복은 여전했지만, 수라상을 받았어도 목구멍으로 넘기지 못했을 아침이다. 수십 년 주인에게 쫓겨 다닌 월세 살이와 부모·자식 부양비로 나가는 현실 탓에 난 아직 ‘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내 마음이 투영되어 돈을 잃은 상대의 슬픔이 내 안을 떠나지 않았다. 온몸이 아파 삶을 견디기 힘들었기에 타인의 통증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내 몸은 거꾸로 간다>도 썼다. 보험 하나 없던 내게 가족 부양 명목으로 네 개나 들게 하고 명퇴금 150만 원씩 보험에 투자하라 권유했던 상처들. 나와 같은 사람을 구하겠다고 보험업에 뛰어든 것도 결국 그 마음 때문이다. 길은 소심한 감정이입의 소유자인 ‘나’를 비추었다. 슬플 텐데도 기쁜 표정을 짓는 타인을 보면 더 새가슴이 되는 내 모습. 하늘과 태양만 보였을 뿐, 어떤 자연이 스쳐 지나갔는지 기억조차 나질 않는다.
두 시간쯤 걸으니 <곤사르> 바가 나타났다. 상념을 끊은 건 거대한 바가 아니라 내 마음에 들어선 결심이었다. 50유로를 돈 잃은 이의 주머니에 보태주기로 한 결심. 이곳에 머무는 40일 중 2주간 커피를 즐길 만큼 즐겼으니 남은 날은 끊기로 했다. 커피 값을 아끼면 50유로를 절감하는 셈이다. 나의 노력으로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생각에 아침에 그렸던 원과 음양, 하트의 아귀가 맞으며 완전한 푸근함이 찾아왔다. 3.5유로짜리 치즈 샌드위치를 먹으며 외국인 틈바구니에서 최대로 입을 찢어 기쁨을 만끽했다.
얼마나 기뻤던지 샌드위치나 바 사진도 찍지 않았다. 한참을 걸은 후에야 뒤를 돌아 휴대폰 줌을 당겨 바의 옆모습을 겨우 담았다. 마음의 빗장이 풀리니 이제야 눈도 제구실을 한다. 표지석에 적힌 남은 거리 숫자가 선명했다. 100km도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슬픔을 가속했다. 83km가 아닌 83,979m가 남았다고 생각하니 더 아쉽다. 컵에 든 물을 보고 ‘이만큼이나’ 남았다고 말하고 싶은데, 내게는 ‘이것 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산티아고 대성당에 대한 설렘보다, 그곳에 닿기까지의 아쉬움이 가슴을 더 후벼 팠다.
근원지가 '외로움'일까 고민하던 찰나 35살 S님을 만났다. 이 길에서 처음 만난 그녀와 류시화의 책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의 한 문장으로 물꼬를 텄다. 독서모임 운영자로서 이보다 반가울 수 있을까. 산길에서 책을 나누니 그야말로 '산책(山冊)'이 실현되는 순간이다. 두 번째 산티아고, 아프리카 생활, 업무와 휴직, 정체성까지 그녀의 에세이 한 편을 통째로 선물 받은 듯했다. 내가 줄 수 있는 건 타 들어가는 날씨에 어울리는 오렌지 주스, 검게 타들어갔지만 잃어버린 선크림, 그리고 그녀의 뒷모습 사진뿐이었다. 무형의 가치에 미미한 유형의 자산을 되돌려 주었지만, 수천 마디 일상 대화보다 가치 있는 단 한마디가 지금까지 이어지는 인연이 되었다.
그녀의 이야기만큼 잊지 못할 맛이 또 있었다. 길가 바 문 앞에 공짜라며 내놓은 과일 바구니에서 만난 '배'였다. 표주박처럼 못생겨 배인 줄도 모르고 씹었는데 기가 막힌 맛이었다. 그녀를 기다리게 하는 결례를 범하면서까지 다시 돌아가 하나를 더 먹었다. 배는 ‘생긴 대로 논다’를 반박하는, 반전 내면을 가졌다. 치고 빠지는 코드까지 잘 맞은 우리는 눈치껏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각자의 길을 걸었다.
어찌 보면 그녀가 <팔라스 데 레이>까지 나를 데려다준 셈이다. 남은 것에 대한 미련을 새로 채울 설렘으로 전환시켜주었으니까. 알베르게는 하얀 비둘기처럼 탄탄하고 깨끗했다. 창밖 성당 담벼락에는 TV에서나 보던 잘생긴 외국인 남성이 영화 속 장면처럼 걸터앉아 있었다. 창문을 잽싸게 열어젖히고 샤워와 빨래를 후다닥 끝냈다.
역시 다 좋을 순 없나 보다. 화장실 겸용 샤워실은 비좁았고, 문 대신 달린 비닐 커튼은 미니스커트 길이로 다리가 훤히 보였다. 옷 거는 고리도 커튼 밖 벽에 달랑 두 개 있어 짐이 많아 다 쓰면 맞은편 사람과 싸움 나기 딱 좋은 구조다. 샤워도 동시에 끝나면 커튼 열고 서로 마주 보며 옷을 걸칠 판이다. '상상하면 이루어진다'더니, 내가 시작하자마자 외국인 친구 둘이 들어와 내 맞은편과 옆 칸을 채워 니은(ㄴ)자로 함께 샤워를 했다. 비닐 커튼을 누가 더 빨리 여닫는지 게임이라도 하듯, 20대로 추정되는 그녀들의 스피드에 나도 한몫 거들었다.
신경을 썼는지 배가 고팠다. 알베르게를 나오니 영화배우 같은 그 남성은 여전히 담벼락에 앉아 있었다. 낮에 놓친 아름다운 장면을 보충하듯 참 오래도 앉아 있다. 토요일이라 문 연 바가 없어 마트에서 냉동 또르띠야와 오징어 튀김 한 봉지를 샀다. 주방에서 혼자 밥 먹던 남성에게도 건네고 그 많은 양을 다 해치웠지만, 역시 지나간 맛은 돌아오지 않는다. <산 마르틴>을 향하던 바에서 먹던 1.5유로의 그 감동은 과거일 뿐이었다.
현재의 맛으로 다시 돌아와 저녁 7시, 알베르게 코앞에 있는 <이그레샤 데 산 티르소> 성당 미사에 참여했다. 오른손 하나가 없는 예수님의 모습이 강렬하게 들어왔다. 오른손이 하는 선행을 왼손도 모르게 하라는 메시지처럼 느껴졌다. 오늘 하루 나름 선행을 베풀었다고 뿌듯해하던 참이었는데, 십자가에 매달린 그 손을 보는 순간, 존재하지 않고도 베푸는 오른손을 본 순간, 낯간지러운 내 베풂이, 내 오른손이 한없이 작아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00개를 가진 자가 1을 나누는 것보다 두 개 가진 자가 하나를 나눌 때 하늘에서 받을 상이 더 크듯이, 오늘 나눈 50유로는 내 마음의 곳간을 절반이나 채울 만큼 기뻤다. 비우고 채우는 삶이란 내 것을 줄여 얻은 걸 남에게 줌으로써 또 비워내는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내가 건넨 선크림도 블로그 이웃 분께 선물 받은 것이었다. 진정한 intake & output은 한 사람에 그치지 않고 우주 전체 안에서 이루어지는 I/O였다. 내가 가졌다는 건 그만큼 누군가의 잃음이요, 내가 잃은 건 누군가의 얻음일 테니, 일희일비(一喜一悲)야말로 삶의 진정한 베프(Best Friend)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