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날. Rasm-E-Hina (2022.3.4.금요일)
이곳 지사 SS 파트의 수석 매니저 리 선생님은 지사 내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분이다. 중령으로 군대를 예편하신 분인데 이 나라는 아직 정치 및 행정이 군대랑 완전히 분리된 나라가 아니라서 인허가 등 행정업무를 원활하게 진행하려면 군인 인맥이 필수적이다. 심지어 주택 임대차 문제 등 민간영역에도 군 관계자가 접근하면 이상하게 매끄럽게 해결이 된다. 본인도 군대 고위간부 출신임을 아주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으며 예우 차원에서 사내에서도 대령님이라고 불린다.
그분 아드님이 결혼한다고 한국인 매니저 전부를 초대했다. 집과 결혼식장 모두 이슬라마바드에서 1시간이 채 안 걸리는 라왈핀디에서 진행되므로 당연히 참석하겠다고 했다.
참고로 라왈핀디는 인구는 2017년 약 200만 명으로 파키스탄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이다. 수도인 이슬라마바드와 한 도시권을 이루고 있는데, 이 도시권은 카라치, 라호르에 이어 파키스탄 제3의 규모를 자랑한다. 같은 도시권이다 보니 국제공항도 이슬라마바드 국제공항을 이슬라마바드와 라왈핀디가 같이 쓴다. 이슬라마바드 건설 이전 1959~1969년까지 파키스탄의 수도이기도 하였다. 베나지르 부토 파키스탄 총리가 2007년 이곳에서 테러로 암살당했다.(출처 : 나무위키 부분 인용)
초대를 받은 곳은 Jacaranda Family Club 대형 연회장. 한국 호텔 연회장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럭셔리하고 깨끗하고 고급진 곳이었다.
파키스탄의 결혼식은 최소 3일에서 최장 일주일까지도 이루어진다고 한다. 파키스탄 자체가 다민족 다언어 국가라 빈부, 사회적 지위에 따라 많이 다르다고 하지만 수도 이슬라마바드 생활권 문화를 기준으로 이 나라 상류층을 기준으로 하는 결혼식에 직접 참여해 본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결혼식의 메인 이벤트는 순서별로 Rasm-E-Hina(라즘-에-히나), Barat(바랏), Walima(왈리마) 각 3일에 걸쳐 다른 날에 행하며, Rasm-E-Hina(라즘-에-히나) 행사일 이전에 Mayoun(마이융)이라고 신부를 준비시키는 별도의 사전행사가 있다고 한다.
나는 운 좋게 Rasm-E-Hina(라즘-에-히나), Barat(바랏), Walima(왈리마) 세 메인행사 모두 참석해봤으니, 안 가본 Mayoun은 제외하고, 참석한 행사 중심으로 적어볼까 한다.
수석매니저 선생님 아들 결혼식 청첩장은 한 봉투에 석장의 카드가 들어있었다.
첫째날(2022.3.4.금요일) : Rasm-E-Hina
라스메망디/헨나(Rasm-e-mehndi/Henna) 또는 멘디(Mehndi)는 로소니아 인어미스 식물에서 제조된 염료인 헤나의 이름을 따서 붙인 의식으로, 신랑과 신부의 손에 바르기 위해 반죽 형태로 섞는다.본혼식을 며칠 앞두고 열리는 이 행사는 전통적으로 신랑과 신부를 위해 따로 열렸다.그러나 그 의식은 이제 종종 결합되어 결혼식에서 거행된다.신랑은 일반적으로 검은색 또는 흰색 샬와르 카메즈, 셔와니 또는 서양식 정장을 입는 반면, 신부는 일반적으로 밝은 색으로 수놓은 샬와르 카메즈, 사리 또는 렝가를 착용한다.그 드레스는 지역과 인종적 배경에 따라 보석류를 동반하거나 동반하지 않을 수도 있다.일부 의식에서는 신부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기혼여성들이 손에 헤나를 바르고 사탕을 먹이는 경우도 있다.이 의식은 신부의 결혼 생활에 행운과 장수를 가져다 주도록 되어 있다.때로는 정교한 뮤지컬과 연기 공연이 라스메-에-헤이나 축제의 일부일 뿐 아니라, 신랑과 신부의 가족들 간의 경쟁도 오늘날에는 꽤 흔하다.전통적으로 남성이 참여하지 않아 '여성의 행사'로 여겨졌다.그러나 이것은 최근 세대에 두드러지게 크게 달라졌다.어떤 지역에서는 라스-에-히나가 축하받지 못하는 반면 다른 지역에서는 신랑 가족이 축하하고 신부 가족이 축하하는 두 개의 라스-에-히나 축하 행사가 열린다. - 출처 : 위키피디아 영문 번역
Hina, Henna, Mehndi 등 표현이 제각각이지만, 우리나라에도 헤나 표현은 익숙하니 그렇게 이해하면 되겠다. 익숙한 단어 뜻 그대로 생각나는 헤나, 그거 맞다.
헤나를 중심으로 뭔가 특별한 이벤트를 하나보다... 생각했는데, 또 그렇지는 않더라.
청첩장에는 오후 7시부터 시작한다고 딱 써놨다. 그러나 그대로 가면 안 된다. 대부분의 하객이 행사시작 1시간은 지나야 온다. 좀 천천히 와도 된다는 직장동료의 말 감안해서 30분 늦게 도착하는 일정으로 느긋하게 출발했다가, 퇴근시간 차가 막히는 바람에 발을 동동 굴렀는데 도착해서 보니 거의 선두권... 한 시간 늦게 가도 결례가 안 되니까 걱정할 필요 없다.
리 선생님이 입구에서 극진히 나를 반겨주신다. 큰 조카뻘 되는 한참 어린 나한테 그래도 본인의 조직장이라며 늘 깍듯하게 인사해주시며 예우해주시는 게 느껴져서 무척 황송할 따름이다. 나는 나대로 이런 경사에 초청받아 영광인데, 나 같은 조직장 + 이 나라에서 보기 힘든 외국인이 개인적 경사에 참석해주는 것 만으로도 혼주와 하객들이 좋아한다고 하니 안심이 된다.
청첩장에 찍힌 7시보다 1시간 15분이 지난 8시 15분이 되어서야 메인이벤트가 진행된다. 홀 밖에서 웅성웅성 소리가 나더니 음악과 노래가 울려 퍼지고 엄청나게 큰 꽃장식을 화려한 옷으로 치장한 여성 하객들이 들고 들어오는 것으로부터 행사가 시작된다. 꽃장식 뒤로 신랑 가족들이 먼저 하객들이 던져주는 꽃비의 축하를 받으며 입장한다. 신랑 가족만 축하받는 자리 같은데, 혼주 아버지인 리 선생님이 자꾸 같이 입장하길 권해서 얼떨결에 나도 같이 입장.... 왠지 다시 장가가는 기분....
신랑 가족이 입장하고 자리 잡고 난 후 10여분 지나니 신부 가족이 도착해서 입장한다. 신랑 입장 때만큼은 아니지만, 화려한 꽃장식을 선두로 꽃비를 뿌려주는 환영의식은 동일하다.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신부 못지않게 하객들의 복장이 무척 화려하다. 특히 여성 의상은 장식 수준에 따라 서민들의 급여 몇 달치에 해당할 정도로 비싼 가격으로 팔린다고 한다. 이런 상류층의 결혼식에 초대받아 갈 때는 복장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하며, 평상복으로 참석하는 것은 혼주 및 결혼 당사자에게 매우 큰 결례가 되는 일이라고 알려준다. 즉, 돈이 없는 사람은 이런 류의 결혼식에 참석하는 것조차 힘든 일. 물론 나도 사전에 귀띔 받아서 내가 가져온 옷 중에 가장 비싼 정장에 모처럼 화이트 셔츠를 받쳐 입고 이 나라에서 처음 넥타이까지 매고 왔다. 안 갖춰 입고 왔으면 큰일 날 뻔했다. 그나마 남성 사회는 정장 한 벌이면 세계 어딜 가도 드레스코드에서 웬만큼 체면치례 다 할 수 있어 다행이다. 같이 초청받은 한국인 헤드 매니저 아내분도 자녀분들도 참석했는데, 이런 분위기를 의식해서 단아한 한복을 갖춰 입고 오셨다. 현지인들도 무척 좋아하고 결혼식이 풍성해지는 느낌이라 나도 보기 좋았다.
양가 신랑 신부 및 가족들이 착석하고 나니 종교지도자가 축복을 해준다. 경건한 분위기다. 시간은 벌써 9시가 넘어간다. 아직 저녁은 줄 생각을 안 한다.
목사님의 주례(?)가 끝나니 드디어 음식 서빙을 해준다. 시간은 거의 밤 9시 30분.
간단하게 음식 맛을 평가하자면...
1. Suji Halwa(수지 할바) : 밀가루(Suji)로 만든 푸딩의 일종. 탄수화물+설탕맛으로 비율이 2:8쯤 되는 것처럼 엄청나게 달다. 디저트로 먹어야 할 음식일 듯.
2. Puri(푸리) : 기름에 튀겨 낸 얇은 빵. 기름에 튀기면 신발도 맛있다는 말이 있듯이 맛있다. 하지만, 먹고 난 후의 느끼함은 견딜 수 있어야 한다. 기름이 줄줄 흐른다.
3. Naan(난) : 인도/파키스탄 주식 중 하나로 먹는 도톰한 빵. 담백하고 고소하다.
4. Kabab(케밥) : 고기와 향신료를 다져서 길쭉하게 구운 요리. 향신료 맛이 지나치게 강해서 한국인들은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
5. Chicken Achari(치킨 아차리) : 치킨 커리+아차르 향료(약간 매운맛). 조금 매운 인도식 치킨커리라고 보면 된다.
6. Chicken BBQ Boti : 그냥 구운 닭요리. 약간의 매운듯한 양념이 입혀져 있지만 거의 닭만 구운거랑 큰 차이 없는 맛이다. (양념치킨은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다.)
7. Chana Bhujia(차나 부지아) : 병아리콩 수프. 좀 걸쭉하고 완두콩보다 훨씬 기름진 맛.
(오자마자 써야 하는데 벌써 한 달 이상 지나서 정확히 기억이 안 나는 게 함정 ㅠㅠ)
밥 먹고, 춤추고 사진 찍고... 결혼식 첫째 날 행사인 Rasm-E-Hina는 손에 헤나를 바르는 의식인 줄 알고 간 나의 예상과는 달리, 이미 많이 서구스러운, 복장과 음식만 빼면 한국에서 많이 본 듯한 공통적이 문화코드로 끝났다.
한국과의 차이가 있다면, 역시 한국은 손님맞이부터 본 행사, 하객 접대 식사까지 초 스피드로 진행되는 반면, 여기는 거의 밤 11시가 되어야 하객들을 귀가시켜주는... 느림의 미학이 있다.
정리해보자. 파키스탄에서 결혼식 첫날 초청을 받았다면,
1. 청첩장 시간보다 4~50분 늦게 가라. 제시간에 가면 하객 중 1등으로 도착한 본인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또, 너무 늦게 가면 메인이벤트를 못 볼 수도 있다.
2. 있는 옷 중에 가장 비싸고 화려한 옷을 입고 가라. 그게 혼주에 대한 예의다.
3. 축의금은 준비할 필요 없다. 보통 마지막 날 한꺼번에 준다.
4. 하객들에게 식사는 매우 늦게 제공된다. 보통 밤 9시~10시는 되어야 식사가 나온다고 보면 된다. 당연히 파키스탄 전통 잔치음식으로 제공되니, 서구 호텔식 뷔페는 기대하면 안 된다.
5. 하객 춤판에 끌려나갈 수 있으니 적절한 춤사위 흥을 돋우는 정도로 추천드림. 전문 댄스꾼을 방불케 하는 하객도 있다.(미리 작정하고 준비한 듯 하지만)
2일 차, 3일 차 스토리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