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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제보다 나은 오늘 Dec 23. 2023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 들어가다

안토니 가우디 평생의 역작

(이전 이야기에서 계속...)


https://brunch.co.kr/@ragony/349




 점심도 빵빵하게 잘 먹고 왔으니 이제 다시 관광모드.

 어디까지 했더라. 아 그렇지, 입구에 들어갔지.(이제 겨우 하루 반 치 썼는데 언제 다 쓰나...)

 


 표를 미리 구매한 관광객은 "C" Gate로 들어가면 된다. 별 거 없고 보안검색대 통과해서 QR코드 보여주면 된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관광 성수기에 들어가려면 높은 확률로 표가 매진될 수 있으니 내부를 관광할 계획이라면 미리미리 구매해서 헛걸음하지 않으시길 추천드린다.


타워 포함 입장 티켓은 이렇게 생겼음



 들어가다 말고 잠시 들었던 생각.

 아니, 이 성당 "건축 중"이라면서요.

 "건축 중"인 성당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집어넣어도 괜찮음? 준공검사 사용전검사 받았음? 건축 중인 블록에 일반인 출입하게 하는 건설소장이 어딨음? 고공 낙하물 추락사고 나면 책임질껴?


 암튼 한국인 상식으론 좀 납득이 안 가는 일이긴 하지만 우얏든 "건축 중"인 성당에 잘 들어왔다.




 성당은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가 제공된다.

 별도의 오디오 수신기와 헤드셋을 제공하는 건 아니고,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어플을 깔고 자신에게 맞는 다국어를 다운받으면 된다. 물론 공짜는 아니고, 표를 구매한 사람에 한해 제공된다. 성당 방문 전 미리 한국어 오디오를 다운받고 무선이어폰 등을 챙겨가시는 게 좋겠다.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가 제공되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한 일이긴 하지만, 녹음된 소리를 듣는 것은 그리 평안하진 않다. 전문 성우 목소리 같기도 한데 텍스트를 AI로 자동 더빙한 것 같은 느낌도 살짝 든다. 요즘에는 AI기술이 워낙에 좋아져서 TTS도 사람목소리 같아서 종종 헷갈린다. 가이드 투어는 역시 맨투맨 가이드가 최고긴 하지만... 비싸다.


 동선을 안내한 지도도 어플 안에서 제공하니까 아이콘만 잘 보고 따라가면 크게 헷갈릴 길은 아니다. 가끔 보면 성당 후면 "수난의 파사드"까지만 보고 도로 정문으로 나오는 분들도 있다던데 고 뒤쪽으로 돌아나가서 천장이 수려한 가우디 학교도 보시고 지하 박물관까지 보고 나오셔야 한다. 그래서 여행 전 예습은 중요하다.



 가까이서 보려니 고개가 아프다. 저 많은 조각들을 일일이 수작업으로 깎고 붙이고 하려니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 공장에서 찍어내는 것도 아닐 텐데 말이다.



 입구에는 이렇게 완성 모형을 전시하고 있다.

 아 그렇구나. 바로 위 제일 마지막 오른쪽 사진이 영광의 파사드 쪽 입구가 되며 주 출입구가 될 모양인가 보다. "고가도로 및 다리를 건설하고 그 위로 사람들이 걸어올 수 있는 계단길을 조성하겠다"고 한 설명과 모양이 일치한다.

 성당 중앙의 가장 거대한 탑과 십자가는 아직 세워지기 전이지만 수년 내 공사를 마칠 수 있으리라.



 탄생의 파사드는 가장 먼저 지어졌고 이미 공사가 끝났다. 가우디 생전에 완공한 유일한 파사드. 성경 속 예수 탄생에 관한 이야기가 다양한 조각으로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조각상 하나하나 뜯어서 감상하려면 여기서만 한 시간을 보내도 모자랄 것 같다.



 중앙에 있는 자비의 문을 지탱하는 기둥 하부에 조각된 거북이들. 너넨 무슨 원죄가 있길래 이리 무거운 걸 이고 다니니. 거북이들을 자세히 보면 바다 방향 쪽 거북이는 다리에 지느르미가 있고 산 방향 쪽 거북이는 지느르미가 없다. 각각 육지거북과 바다거북을 표현한 것. 



 실내로 들어가면 젤 처음 볼 수 있는 로사리오 회랑. 탄생의 파사드 못지않게 출입구 상부에도 조각상들이 즐비하다. 



 탄생의 파사드에 설치된 탄생의 문.

 일본인 조각가 소토오 에츠로의 작품이다.

 문을 자세히 보면 다양한 식물과 곤충들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드디어 들어온 실내.

 나는 종교인은 아니지만 매우 장엄하고 엄숙하면서도 신비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이게 바로 공간의 힘.

 가우디는 성당 내부를 숲으로 상상하고 형상화했다. 저렇게 나뭇가지처럼 뻗어나간 기둥은 정말 처음 본다.



 사방에 설치된 스테인드 글래스는 빛의 방향에 따라 시시각각 실내를 다른 느낌으로 비추어준다. 자연의 빛이 이리도 오묘하고 아름답다니. 성당 내부 벤치에 앉아있기만 해도 영혼이 치유되는 느낌을 받는다.





영광의 파사드


 영광의 파사드 주 출입문이 될 부분.

 똑같은 것이 이미 바깥에 설치되어 있는데 이게 그 문의 반대편인지 복제품인지는 잘 모르겠다.

 노란 금박으로 입혀진 AIG는 Antoni Gaudi를 뜻하며 그를 기리기 위함이라고 한다.



 이 문에는 50개국의 언어로 주기도문 일부가 조각되어 있다. 왼쪽 하단을 자세히 살펴보면,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주옵소서"라는 한글 문구도 확인할 수 있어 무척 반가웠다. 문의 바로 상부에는 성 조르디 기사의 조각이 올려져 있다. 선과 면이 단순한 특징으로 보아 저 조각 역시 수비라치가 조각했음에 틀림없다.(나도 예술을 보는 눈이 생겨버렸네.)



 스테인드 글라스를 자세히 보면 KIM이라는 친숙한 영문을 찾아볼 수 있다.

 한국인 성씨 "김" 맞다.

 우리나라 최초의 천주교 신부님인 김대건 신부님에 대한 헌정이라고.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찾는 한국인은 꼭 영광의 파사드에 새겨진 한글 문구와 KIM 스테인드 글라스를 찾아보고 오심을 추천드린다.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숲 속 나무기둥을 연상시키는 성당 기둥들.


 내가 방문한 시간은 해지기 직전 시간이라 건물 안이 붉은 기운이 가득했다. 동편은 탄생을 뜻하는 녹색+파랑 계열의 글래스, 서쪽은 일몰과 죽음을 상징하는 주황 계열의 스테인드 글래스로 장식되어 있어 해질 무렵에 가면 실내가 온통 따뜻한 붉은빛으로 물든다.




탄생의 타워


 이제 탄생의 타워로 올라갈 시간.

 인생에 한 번 간다는 생각으로 방문 옵션 모두 질렀다. 설마 두 번 와 보겠냐.

 올라갈 수 있는 타워 옵션은 두 개가 있는데, 나는 가우디가 건축했다는 탄생 타워를 골랐다.

 타워에 올라가기 전에는 이렇게 생긴 록커에 소지품을 모두 넣고 가야 한다. 작은 가방도 안 봐준다. 보증금 1유로 동전을 넣어야 열쇠를 돌릴 수 있는 구조니까, 성당 방문 전 유로 동전 하나쯤은 챙겨가심이 좋겠다.(나중에 도로 돌려준다.)



 한 번에 네댓 명이 탈 수 있는 매우 좁장한 엘리베이터. 그래도 이거라도 있는 게 어디셈.

 타워 올라가는 시간은 성당 들어가는 시간과 별도로 지정해야 하는데, 타워 올라갔다 내려와도 성당 구경은 더 할 수 있으니 시간 안배에 너무 고민할 필요 없다. 다시 외부로 나갔다가 들어오는 구조 아니다.(성당 내부에서 바로 연결되어 있다.)



 사실 타워 상부는 별 게 없다.

 매우 좁은 전망대에서 주변 탑들을 좀 더 자세히 볼 수 있고 그 탑들 사이로 도시를 좀 더 조망할 수 있을 뿐이다. 가성비는 별로다. 그냥 의미를 두자.



 그래도 저렇게 멀리서만 보던 이름 모를 과일 조각상도 자세히 볼 수 있고,



 탑 들 사이로 보이는 도시 전경도 훌륭하다.



 탑 전망대는 매우 매우 좁아서 딱 엘리베이터 탑승 인원 대여섯 명이 동시에 설 수 있는 정도일 뿐이다.



 그래도 여기서만 볼 수 있는 조망이 있는 거고



 꼭대기 조각상도 여기서만 자세히 볼 수 있고



 옥수수탑의 세부 모습도 자세히 볼 수 있으니 인생에 한 번쯤은 와 봐도 후회하진 않을 듯.



 저 호수가 아까 사진 찍고 온 그곳. 여전히 인증샷 찍는 사람들로 빠글빠글.



 짧은 구경을 마치면 곧 후속 엘리베이터가 올라오므로 지체할 시간 없이 (쫓겨서) 내려간다. 내려가는 길은 여느 타워와 마찬가지로 매우 좁은 꼬불꼬불 나선길.



 내려가는 길에도 군데군데 눈길을 끄는 조각상들을 볼 수 있다.



 나선길을 상부에서 보면 마치 암모나이트 조개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 또한 바다를 자주 형상화 했었던 가우디의 의도였던 것일까.



 나선길 따라 내려오면 다시 성당 내부와 연결된다.

 짧은 타워 관람은 이렇게 끝.

 시간과 체력이 충분하신 분들은 인생에 한 번 경험이니 가 보실 만하고 시간도 돈도 체력도 아낄 분들은 굳이 가 보지 않아도 특별히 중요한 뭔가가 있는 건 아니니 패스 하셔도 무방할 것 같다.


 벌써 사진을 너무 많이 올려서,

 수난의 파사드와 가우디 학교, 박물관 얘기는 이어지는 다음 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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