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 시부모님을 만나던 날. 잘 보이고 싶은 마음 반, 혹시 나에게 무례하게 대하신다면 당하고만 오지 않겠다는 마음 반으로 나갔다.
남자친구의 어머니는 나를 위한 꽃다발을 준비해 오셨다. 꽃다발에는 [고맙습니다]라는 팻말이 꽂혀있었다.
우려했던 바와 달리 예비 시부모님은 매스컴에서 접했던 시댁(?) 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고, 날 너무나 반겨주셔서 따듯한 경험을 하고 돌아왔다.
오. 이런 시댁도 있군?
결혼 전 예비 시부모님과의 몇 번의 식사가 더 있었지만, 꽤나 당돌한 나의 모습들도 넓은 마음으로 품어주시는 어른들이셨다. 그들은 '시댁은 다 꼰대다.'라는 나의선입견을 철저히 깨 주셨다.
결혼의 부적격일 것 같았던 내 성격이 온전히 수용되는 경험을 통해(?) 나는 결혼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었고, 어느새 버진로드를 걷고 있었다.
유난히 긴 버진로드를 걸으며 이런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와 내가 진짜 결혼을 하네. 진짜 하네. 했네. 오.
결혼식을 마쳤다. 신혼여행도 다녀왔고, 신혼집도 다 꾸며졌다. 혼인신고도 마쳤다.
신혼여행도 재미있었고, 알콩달콩 콩 볶는 신혼생활도 재미있었다. 같이 장도보고 요리도 해 먹고, 밤늦도록 영화도 보고 이야기도 하고.
그렇게 한 달 정도가 지났을까.
문득, 집에 가고 싶었다.
나는 결혼 전에 엄마아빠와 떨어져 살아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우리 엄마는 어렸을 때부터 집안일을 많이 하고 자란 딸이었어서, 나에게는 집안일을 일절 시키지 않으셨기 때문에 나는 정말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는 상태로 결혼을 했다.
(창피한 얘기지만, 밥 하는 법도 몰랐고, 세탁기도 못 돌렸다.)
살아보니 엄마가 없는 게 이렇게 막막할 줄이야.
결혼을 하고 나면 '어-른'이 되어있을 줄 알았는데, 몸만 독립했지 나는 아직 엄마가 필요한 어린아이였다.
또한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내향형 인간인데, 코로나로 남편과 같이 재택근무 하는 시간이 늘어나 늘 붙어있게 되니 갑갑했다.
데이트를 하고, 집에 돌아가 아주 편하게 내 방에서 쉬었던 예전이 그리웠다.
집에 오면 옷은 휙휙 던져서 아무 데나 벗어놓고 나중에 치우고 싶을 때 치웠는데, 같이 사는 남편은 깔끔이여서 내 그런 습관을 힘들어했다.
같이 사는 사람이 바뀌었으니 나도 어느 정도는 맞춰줘야지 하는 마음에 나갔다 돌아와서 바로 옷정리를 하는데 그런 것까지 나를 옭매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 자유가 속박당한 느낌이랄까?
그렇게 신혼생활에 어렵사리 적응해 가던 중, 드디어 부부싸움이라는 것을 했다.
연애 때는 싸우면 서로 떨어져서 안 보면 되었는데 싸우고 나도 같은 공간에 있어야 한다니 (물론 다른 방에 서로 있었지만) 그게 너무 싫었다. 늦은 밤이라 나갈 데도 없고.
새벽까지 우울한 마음에 '내가 결혼을 잘못했어. 나는 결혼을 하는 게 아니었어.' 자책을 하다가 새벽감성에 엄마한테 전화를 했다. 우리 엄마는 잘 때 전화를 무음으로 해 놓기 때문에 역시나 안 받았다. 그래서 아빠한테 전화를 했다. 두 사람한테 번갈아가며 받을 때까지 전화를 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철부지다.)
새벽 3시경, 아빠가 깜짝 놀라 전화를 받았다.
놀라서 전화를 받은 아빠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마지막에 울면서 이렇게 얘기했다.
'아빠, 나 집에 가고 싶어.'
'하봄아, 이제 거기가 너희 집이야.'
그때 아빠의 나긋한 목소리를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 이제 여기가 나의 집이구나.'
어떤 느낌이었달까. 이제는 내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느낌이었달까?
느낌은 명확하게 설명이 어렵지만, 이제 여기서 적응을 해야만 하는구나 라는 강력한 깨달음(?)이 있었다.
그렇게 나는 이 생활에 적극적으로 적응해 보기로 결심했다.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에 몰두하며 힘들어하지 말고, 바꿀 수 있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 생활에서 나의 경계를 정하고 나를 지키기로 했다. 그리고 불평보다는 감사를 찾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