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직을 그만두고 마흔에 만난 책 한 권이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그전까지 살아온 삶과는 전혀 다른 삶에 들어서게 해준 책을 만난 것이다. 그런데 그 책은 내가 직접 선택해서 읽은 게 아니었다. 누군가의 따뜻한 마음으로부터 우연히 내 손에 들어온 선물이었다.
구체적인 계획을 하고 사직서를 낸 게 아니었다. 막상 하루 24시간의 자유시간이 주어지니 뭐부터 해야 할지 막막했다. 마침 그해 둘째가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했다. 직장 때문에 첫째에게는 못 해줬던 ‘1학년 엄마’ 역할을 둘째에게는 온전히 해줄 수 있어서 좋았다. 둘째는 딸이라서 그런지 엄마인 내가 하교할 때 데리러 와주는 걸 유독 좋아했다.
방과 후에 교문 앞에서 둘째를 만나면, 학원을 가지 않는 아이들과 함께 자연스럽게 놀이터로 향했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동안 같은 반 엄마들과도 친분이 조금씩 쌓여갔다.
그중 한 아이는 할머니가 주 양육자였다. 아이 엄마는 외국에 유학 중이라 할머니가 손녀를 돌보고 계셨다. 손녀가 1학년에 입학했으니 이것저것 궁금한 게 많으실 텐데, 엄마들 사이에 끼기가 쉽지 않으실 것 같았다. 나 역시 어릴 때부터 할머니와 함께 살아서인지, 그분을 보면 늘 마음이 쓰였다. 학교생활에 대한 이런저런 정보를 알려드리거나, 혼자 계시면 챙겨드리곤 했다.
할머니는 엄마들끼리 독서 모임을 하자고 제안할 정도로 책을 무척 좋아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 항상 챙겨줘서 고맙다며 책 한 권을 선물해 주셨다. 그 책이 바로 켈리 최 회장의 『파리에서 도시락을 파는 여자』였다.
마침 자기 계발 도서를 찾아서 읽고 있던 중이었고, '파리'가 들어가는 제목부터 끌렸다. 아이들이 잠든 후 바로 책을 펼쳤다. 첫 문장부터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지중해의 한없이 평화롭고 잔잔한 파도에 넘실대는 요트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본다. 밤하늘에 촘촘히 박힌 별들이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린다. 남편의 꿈이었던 ‘가족과 함께하는 1년간의 요트 세계 여행’도 어느덧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다.
첫 페이지의 이 장면은 내가 오랫동안 꿈꾸던 자유롭고 충만한 삶의 모습과 똑 닮아 있었다. 바다를 좋아하고 바닷속 들여다보는 걸 즐기는 내게, 요트를 타고 세계를 여행하는 상상은 그 자체로 가슴 벅찬 일이었다.
켈리 최 회장은 일반 고등학교조차 갈 수 없었던 가난한 소녀였고, 마흔이 넘은 나이에 사업에 실패하고 빚 10억을 떠안게 되었다. 이후 프랑스에서 도시락 사업으로 성공해 6년 만에 연 매출 4,000억을 달성했다. 우리나라 여성 사업가가 실제로 이룬 성공담을 책으로 접한 건 처음이었다. 특히 학창 시절부터 해외 생활에 대한 로망이 있던 내게, 그녀의 스토리는 더욱 강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이 책의 마지막 내용이다.
당신이 어디에 있건, 어떤 학교를 나왔건, 나이가 몇 살이건, 어떤 일을 하고 있건 누구나 꿈을 꿀 권리가 있고, 기적과 만날 자격이 있다. 기적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이제는 당신만의 미라클 여정을 만들어가길 기원한다. 행운을 빈다.
마지막 부분을 읽고 나니 도파민이 과도하게 분비됐는지 얼굴에 열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평소엔 머리만 대면 금세 잠드는데, 그날은 미래에 대한 상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좀처럼 잠들 수 없었다.
교직을 내려놓은 뒤 구체적인 계획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던 내게, 이 책은 마치 인생의 방향을 제시해 주는 내비게이션 같았다. 그날 밤 결심했다.
그전까지는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생각이다. 온라인 사업으로 성공한 동생을 지켜보면서도, 부자는 ‘그들만의 리그’라고만 여겼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는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켈리 최 회장은 책 속에서 한결같이 이렇게 말했다.
그 말이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그래서 책에서 소개한 ‘사업 공부를 위한 책 100권’을 구해 하나씩 읽기 시작했다. 나는 원래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아니었다. 어릴 때도 책 읽는 걸 좋아하지 않았고, 교사와 엄마가 된 이후에는 교육과 육아 관련 서적만 간간이 읽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켈리 최가 추천한 책들은 나를 점점 깊이 빠져들게 했다.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가짐이 달라졌고, 새로운 깨달음이 차곡차곡 쌓여감을 느꼈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설레는 순간이 많아졌다. 어떤 날은 흥분이 가라앉지 않아 밤잠을 설치며 책에 몰두하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세상에는 이유 없는 인연은 없는 것 같다. 내가 할머니에게 베풀었던 작은 다정함이 결국 내 인생을 바꿀 책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그 할머니가 아니었다면, 나는 평생 이런 책을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한 권의 책이 한 사람의 삶을 완전히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지난 7년의 내 삶이 증명하고 있다. 마흔에 만난 인생 책은 단순한 성공담이 아니었다. 꼭 필요한 순간 내게 찾아와, 새로운 삶을 향한 용기와 가능성을 일깨워준 그 책이 지금도 늘 고맙다
그런데 이 모든 변화의 시작에는 또 다른 중요한 깨달음이 있었다. 바로 내 안에 깊이 뿌리 박힌 돈에 대한 부정적인 무의식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그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나눠보려고 한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진짜 변화의 핵심이었을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