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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보이 Sep 24. 2024

시드니 중식당 고인턴.

여행에선 꿍 하면 짝 하는 부부.

시드니는 늘 같은 모습으로 한 자리에 있지만, 시대가 바뀌고 유행이 변함에 따라 시드니를 즐기는 관광객의 모습은 계속 바뀐다.

예전엔 오페라 하우스를 구경하고 코알라와 사진을 찍기 위해 시드니에 갔다면, 요즘은 본다이비치 아이스버그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고 블루마운틴 절벽에서 그림 같은 카톡프로필을 남기기 위해 시드니에 간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사진이나 방송에서 숱하게 봐 왔던 오페라 하우스나 코알라는 사실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 그보다 내가 더 기대를 했던 건, 시드니를 다녀온 친구의 카톡 프로필에서 보고 '뭐 저런 데가 다 있나?' 생각했던 산호초 빛깔의 아이스버그 수영장과 블루마운틴였는데...


본다이비치 아이스버그 수영장.

결론부터 말하자면 계절 탓에 아이스버그 수영장에선 수영을 하지 못했고, 날씨 탓에 블루마운틴 투어는 취소가 돼 버렸다.

8월의 호주는 겨울이라고? 천만의 말씀! 어제는 겨울 같다 오늘은 여름이고 내일은 또 겨울일지 모르는 게 호주다. 심지어 변화무쌍한 날에는 하루에도 사계절을 다 맛볼 수 있는 게 8월의 호주다.

그 덕에 겨울일 줄 알았던 곳에서 시원한 바닷 바람을 맞으며 수영을 즐기는 사람들을 구경할 수 있긴 했지만,다 벗고 있으면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이 이상하게 보이는 매직?! 어쩌면 구경을 당한 건 어울리지 않게 겨울옷을 입고 있던 똥보이와 토보이. 우리 부부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런가하면 계속 바뀌는 기상예보 탓에 시드니에 갈 때까지도 예약을 못했던 블루마운틴 투어는 결국 전날 모객 부족이 되는 바람에 가질 못했는데...




시드니 여행의 굵직한 이벤트가 빠져 아쉽기만 한 그 자리를 대신 채운 건, 타롱가 주(Taronga Zoo)!

서큘러키 역에서 페리를 타면 10분이면 갈 수 있는 곳이라 쉽게 선택을 하긴 했지만, 시티를 벗어나 외딴 섬처럼 아니 그림처럼 펼쳐져 있는 그곳은 어쩌면 최선보다 더 좋았던 차선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동물도 동물이지만 그림같은 풍경에 압도됐던 곳! 그림같다는 말밖에는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현실감이 없는 풍경들이었다. 눈앞에 보이는 아름다움 풍경이 도무지 믿기질 않아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 봤지만, 실제보다 아름다운 사진은 단 한 장도 건지지 못했다.

 

타롱가 주.


풍경에 시선을 빼앗겨서일까. 정작 동물에 대한 감흥은 별스러운 게 없었다. 물개쇼와 버드쇼는 생각보다 소박했고, 실물을 처음 보는 코알라와 캥커루는 자고 있어 그다지 특별하지 않았다.


그보다 좋았던 건 아이들이다. 동물보다 아이들. 우리가 동물원을 찾았을 때가 평일 오전이고, 동물원이 오픈을 하자마자 소풍을 나온 현지 유치원생들과 함께 우리도 입장을 했는데, 팜플렛에 적힌 쇼 시간표를 보고 이동을 해서일까, 가는 곳마다 아이들과 마주쳤다.

그리고 때마침 쇼가 시작되기 직전이었던 아이들의 점심시간. 자리를 잡고 앉은 아이들이 각자 싸 온 점심 도시락을 꺼내 식사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놀라웠던 건, 생각보다 단촐했던 아이들의 도시락! 소풍이면 이때다 싶어 김밥이며 맛난 간식들을 잔뜩싸 가는 한국의 아이들과 달리, 여기 아이들은 소풍이라고 해서 특별히 먹는 게 따로 없었다.

제각각 도시락이지만 대부분 싸온 건 샌드위치나 과자 아니면 약간의 과일 정도. 샌드위치라곤 해도 식빵에 무심하게 바른 잼 정도가 전부이고, 예쁘게 모양을 내 자른 각종 과일? 웬걸. 씻었으면 다행이다 싶은 아이의 주먹만한 사과가 눈에 띄었다.

그리고 아이들의 점심 식사보다 더 이색적이었던 건 인솔교사의 점심 식사.

활동하기 좋은 레깅스 차림에 5,60대로 보이는 인솔교사가 점심 도시락으로 준비해 온 건 시판 살사 소스 한 병과 야채다. 말 그대로 집에서 먹던 살사 소스를 병 채로 들고 와, 썰어 온 샐러리와 당근을 맛나게 찍어 먹었는데...

선생님이 어찌나 맛나게 잡수시던지, 귀국길에 나도 같은 살사 소스 한 병을 사들고 갈까 싶은 생각에 어깨 너머로 병에 붙은 라벨을 유심히 살폈다.(뭐 돌아서자마자 까먹었지만)

   

동물보다 귀여웠던 아이들.

그리고 동물보다 아이들, 아이들보다 풍경이 더 인상깊고 감동적이었던 곳, 타롱가 주를  뒤로 하고 다시 페리를 타고 나와 우리가 향한 곳은 차이나타운.

여행을 오기 전에 여행카페에서 추천을 받아 미리 알아뒀던 <해피쉐프누들>에서 뜨거운 국물 국수를 맛봤다.

반복되는 브런치 식사와 마트 음식에 슬며시 질려가던 차, 뜨거운 국물이 목구멍을 적시자 목욕탕 안에 몸을 담군 아버님처럼 "시원~~~하다"소리가 절로 입밖으로 튀어나올 뻔 했는데...

허름한 푸드코트 음식이라고 보면 15-20불인 국수가 저렴하다곤 할 수 없지만, 시원한 국물에 각종 해산물이 넉넉하게 들어간 국수만 놓고 보면 그 값이 아깝지 않았던 맛.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해피 쉐프 누들 15번?

그런데 시드니 중식당에도 고인턴이 있다???

마늘을 까다가 손님이 오면 주문을 받는 카운터 여 종업원이 TV 속 아이슬란드 한식당 <서진이네>를 눈을 떼지 못하고 보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호주 중식당의 고인턴 같아, 한참을 재밌게 지켜본 우리.

   

"근데 TV에 눈 두고 보지도 않고 마늘 까는 솜씨나..

손님이 와 주문을 받을 땐 단 1초도 놓칠 수 없다는 듯 대형TV를 리모컨으로 컸다 켰다 맘대로 하는 게,

종업원은 아냐."

"그럼?"

"해피 쉐프의 딸이지”


블루마운틴은 못 가 봤지만, 살사소스 선생님과 중식당 고인턴(?)을 만나 나름 추억의 한 페이지를 가득 채웠던 하루.

남들 다 가는 맛집, 남들 다 가는 관광지도 좋지만 예측불허 우연한 만남이 더 좋기도 했던 우리 부부는 이번에 못 가본 블루마운틴은 다음 시드니를 위해 남겨두기로 했다.


(그때까지 부디 잘 살아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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