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백 대신 마트 장바구니를 선물하는 부부.
해외여행을 가면 열쇠고리나 냉장고 자석 대신 그 나라 마트의 장바구니를 수집하고, 관광지 맛집보다 숙소 근처 마트 음식을 더 자주 먹고, 여행의 피날레는 공항 면세점이 아니라 마지막 날 마트라고 생각하는 사람.
나 그리고 남편 똥보이, 우리 부부다.
최근엔 본의 아니게 신혼권태기가 찾아와 잘 맞는 것보단 안 맞는 걸로 많이 부딪히긴 했지만, 우리는 여행 스타일만큼은 찰떡 같은 부부다. 그래서 여행을 하는 동안은 늘 대체로 즐겁고 행복하다. 그리고 그걸 잘 알기에 잦은 다툼이나 서로에게 지치고 힘들 땐, 주로 어딘가로 떠났는데...
이번 호주 여행도 그 연장선. 그리고 그 중심엔 역시 마트가 있었다.
"호주 마트는 크게 두 군데야. Coles와 Woolworths. 대략 한국의 이마트와 홈플러스라고 보면 돼."
그 어떤 관광지 설명보다 쉽고 빠르게 와 닿았던 똥보이의 마트 설명. 실제 가보니 역시 그랬다.
그리고 호주는 매주 목요일이 주급일이면서 쇼핑데이! 이날만큼은 일찍 문을 닫는 까페나 식당도 밤늦게까지 영업을 하고, 마트들은 각종 물건들을 평소보다 더 큰 폭으로 할인을 한다고 했는데...
이 부분에 큰 기대를 안고 마트 털이의 큰 그림을 그렸던 우리는 주중 내내 양대산맥인 콜스와 울월스를 드나들며 우리가 살 물건들의 가격을 모니터링 하다가, 목요일 한꺼번에 쇼핑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아쉽게도 예상이 빗나갔다. 목요일이 주급일이면서 쇼핑데이인 건 맞지만, 그것관 상관 없이 숙소 주변 가게들은 늘 늦게까지 영업을 했고, 그것관 상관 없이 마트들은 늘 대체로 세일을 했다. 그러다 보니 막상 목요일은 참았던 쇼핑욕구를 터뜨려 도파민을 폭발시키기엔 어쩐지 좀 부족하고 심심하단 생각도 들었는데..
심지어 어떤 품목은 목요일이면 좀 더 세일을 하지 않을까 싶어 애써 안사고 버텼건만, 정작 목요일엔 세일도 하지 않아 실망을 안겨주기도 했다.
이러면서 또 한 가지를 배우고 다짐한 부부. 물건은 무조건 보일 때, 마음 먹었을 때, 세일할 때 사는 게 맞다. 더군다나 그것이 10불 안팎의 저렴한 물건이라면 더욱! 필히! 그래야 한다. 1,2불 더 아끼자고 기다렸다간 물건이 품절될 수도 있고, 까딱하단 사더라도 제 값을 주고 사야될 수 있으니 말이다.
이것이 마트 여행을 즐기는 우리 부부가 내린 결론인데...
말이 나왔으니 마트 여행에 대해 좀 더 이야기를 하자면, 누군가에겐 단순히 필요한 물건을 사는 장소가 누군가에겐 여행의 장소가 되기도 하는 이유. 가는 나라마다 마트의 모습도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내가 호주 마트에 처음 들어섰을 때 제일 놀라고 신기했던 건 바로 이것!
'어쩜, 과일이나 채소가 이렇게 예쁘고 깨끗하고 싱싱할 수가 있지?'
콜스나 울월스 어느 한 군데만 그런 게 아니었다. 가는 마트마다 족족, 판매대 위에 과일이나 채소가 깨끗하고 가지런하게 진열돼 있었다.
이상한 것이 한국에선 당근도 세척한 것 대신 흙당근만 일부러 골라 사는 나도, 여기선 어쩐지 알록달록 깨끗하게 진열돼 있는 과일을 색깔별로 종류별로 다 골라담고 싶었는데...
예쁘고 깨끗하게 진열돼 있는 상품들이 소비자를 깎듯하게 맞는 당연한 일인 것처럼 느껴지게 했던 호주의 마트들. 어쩌면 광택을 내느라 더 안좋은 무언가를 썼을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보는 것만큼은 갓 나온 빵을 둘러볼 때처럼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인상깊었던 또 한 가지.
호주 마트엔 아이들을 위한 OOOO OOOOO 이 있다?
바로 정답을 공개하자면, 아이들을 위한 Free Fruit 이다.
말그대로 엄마아빠와 함께 쇼핑 온 아이들이 바로 꺼내 먹을 수 있게 과일들을 종류별로 가져다 놓은 건데. 사진을 찍은 날은 사과 밖에 없었지만, 바나나도 있고 그때그때 종류도 다양하다. 가격은 물론 공짜.
어찌보면 우리나라의 시식 코너와도 비슷하지만, 다른 거라면 이건 철처히 아이들 전용이다. 그러다보니 여기서 전해지는 느낌은 <먹여(어)보고 사세요> 가 아닌 <아이들에게 그냥 주세요>.
어른들은 맛볼 수도 없고, 맛봐서도 안되며, 실제로 슬쩍 가져가는 어른은 단 한 명도 못봤다. 이런 것 하나도 선진국에 걸맞는 선진시민 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좋은 점은 한국의 마트들도 좀 배워보면 어떨까.
그나저나 세일 항목도 많지 않고 폭도 크지 않아 실망을 하면서도 주섬주섬 담다보니 어느새 300불이 훌쩍 넘어버렸다.
그렇지만 괜찮다. 가족들에게 나눠줄 선물이니까. 꿀을 식빵에 발라 맛있게 드실 시어머니와 비싼 화장품보다 영양제를 더 좋아하는 엄마를 생각하니, 양손 가득 든 마트 장바구니가 무거윤 게 뿌듯하기만 했다.
"우리집 건 울월스 백에 담고, 어머니 드릴 건 콜스 백에 담자. 오빠~“
해외여행을 다녀오면 면세점에서 산 명품백 대신 마트 백을 가져다드리는 아들 며느리. 바로 우리 부부다.
쇼핑데이를 끝으로 우리의 시드니 여행도 점점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