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와 가장 멀리 떠나와 가장 길게 보낸 여행이 끝나가고 있었다.
먹고, 걷고, 구경하며... 아름다운 것엔 함께 감동하고, 신기한 것엔 함께 감탄했던 우리.
여행이 좋은 건 일상(내 주변)에선 좀처럼 보지 못했던 아름다운 것들 신기한 것들에 대해, 함께 발견하고 떠들 수 있어서다. 눈에 보이는 것들이 많아지니 수다거리도 느는 느낌이랄까.
설령 그게 실없는 농담이나 장난일지라도, 여행에선 주고받는 그 자체가 즐거움이다. 일상에 지쳐 마음의 여유가 없을 땐 대꾸조차 귀찮던 농담도, 짜증만 부르던 장난도, 마음의 여유가 생기니 웃음이 났다.
그러면서 잊고 있던 두 가지가 떠올랐는데…
'똥보이는 원래 이렇게 실없이 웃고 떠드는 걸 좋아했던 남자다. 그리고 나는 그 모습이 좋아, 그를 사랑했던 여자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나도 그의 실없는 농담과 장난에 그 전처럼 반응해 주지 못했다. 피곤해 했고 간혹 짜증도 냈다. 나 역시 일상에 지쳐 있었던 게 분명하다.'
그리고 이걸 깨닫게 해준 권태기 여행이다.
그는 전처럼 많이 떠들었고, 나는 그의 그런 모습을 다시 좋아하게 됐다.
어쩌다 한 번씩 동선이 꼬이거나 일정에 지쳐 서로 내 마음 같지 않다고 느낄 땐 살짝 부딪히기도 했지만, 어쨌든 우리는 여행에 있어서만큼은 안 맞는 것보단 잘 맞는 게 더 많은 부부. 즐겁고 더 없이 행복했으며, 소중한 추억들이 한가득 생겼다. 평생 여행만 다니면 권태기 같은 건 얼씬도 못하겠다 싶을 정도로, 신혼 여행 같은 권태기 여행을 보냈는데...
(어쩌다 한 번이니 여행이지, 평생이 여행이면 그건 도로 일상. 그건 그것대로 또 문제가 생기겠지.)
그렇게 하루하루가 아쉬움 속에 사라지고, 마침내 귀국일.
와서 지낸 날보다 남은 날이 줄어들기 시작할 무렵부터, 이미 벌써 똥보이는 돌아갈 걱정에 한 번씩 한 숨 섞인 푸념들을 늘어놓곤 했다.
"하. 진짜 돌아가기 싫다. 도살장 끌려가는 소 같아. 이제 뭘 보고 살지? 우리 여기 다시 올 수 있을까?"
그런데 그와 달리 나는 돌아갈 게, 아니 돌아가는 자체가 그냥 또 걱정였다.
다행히 시드니행 비행기에선 무탈했지만, 귀국행 비행기에서도 그럴 수 있을지, 다시 하나부터 열까지가 다 걱정되기 시작했는데... (지연, 멀미, 난기류 기타 등등...)
마침내 귀국일 아침. 아니나다를까 그동안 무탈했던 걸 한 번에 다 뒤집기라도 하듯, 생각치도 않던 일들이 줄줄이 발생했다.
첫째, 숙소가 있던 마스코트 역에서 공항까지 가는 버스를 잘못 탔다. 그 바람에 우리는 국제선이 아닌 국내선 청사에 도착을 했고, 체크인 카운터에 가서야 그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무랴무랴 길을 물어 다시 국제선 청사로 가야만 했는데...
그러고보니 마스코트 역 버스 정류장에서 함께 버스를 기다리던 중국인 관광객들이 막상 버스가 와도 올라타지 않은 덴 이유가 있었다. 그들은 알았고, 우리는 몰랐다. 그 버스가 국제선 청사로는 가지 않는다는 걸.
둘째, 시드니 공항의 국내선 청사와 국제선 청사는 생각보다 가깝지 않았다. 쉽게 일본 공항 정도를 생각한 나는 셔틀만 타면 3분 이내로 국제선 청사에 도착할 줄 알았다. 그런데 공항을 벗어나 아예 다른 공항으로 가는 느낌. 고가를 타고 달려 달려, 체감상 족히 15분은 달려, 간신히 국제선 청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셋째, 국제선 청사에 도착하자마자 일정 중엔 단 한 번도 내리지 않던 비가 갑자기 퍼붓기 시작했다. 각자 큰 트렁크를 하나씩 끌고 비를 맞으며 서둘러 청사 안으로 들어가야만 했는데...
넷째, 국제선 청사 안은 그야말로 시장통, 전쟁통을 방불케했다.
체크인을 하고자 하는 탑승객은 넘쳐나는데, 체크인을 도와주는 직원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그 대신 키오스크 앞으로 길게 늘어선 사람들만 보였다.
여기서도 돋보인(?) 호주의 Contactless다. 트렁크 손잡이에 수화물 표를 달다가 스티커가 잘못 붙어버리는 바람에 지나는 직원에게 도움을 청했는데, 손으로 스티커를 뗐다가 도로 붙이는 시늉만 해보이곤 금세 사라져버린 직원. 내가 일정 중 유일하게 내뱉은 영어 "Can you help me?"가 메아리가 돼 돌아왔다.
다섯째, 그러고 부랴부랴 면세 구역 안으로 뛰어들어갔는데 이번엔 지연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11시 30분 출발이던 비행기가 12시 30분, 1시 , 1시 30분... 계속 지연 싸인이 떴는데...
급기야 1시가 넘어가자 탑승구 앞 지상직 직원이 밀쿠폰을 나눠주기 시작했다.
그 순간 애써 추억으로 묻었던 과거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때는 코로나가 유행하기 직전인 2019년 겨울. 우리 부부는 난생 처음 연말 여행이란 걸 하기 위해 일본에 갔다. 연말 = 성수기인지라 평소 같으면 여행 같은 건 엄두도 안내는데, 이때는 뭐 때문인지 특가 항공권이 있었고 우리는 운좋게 그걸 손에 넣었다. 일루미네이션도 보고 온천도 하고 일정 내내 순탄하고 행복하기만 했는데, 갑자기 돌아오는 날 지연씨를 만났다. 그때도 지금처럼 처음엔 한 시간쯤 밀려 예삿일로 생각했던 지연이 그 뒤로도 30분, 1시간... 계속 밀려... 결국 우리는 그날 비행기를 타지 못했는데...
이유는 하루 종일 인천을 뒤덮었던 미세먼지 탓에 우리를 태우고 갈 비행기가 일본에 오지 못했고, 가까스로 그 비행기가 일본에 도착했을 땐 일본 항공법 상 비행기 이착륙 시간이 오버돼 버리는 바람에 우리가 탄 비행기가 출발을 할 수 없었다.
그 탓에 비행기에 탑승까지 하고도 도로 하기를 해 공항 청사 밖에서 노숙을 해야만 했던 우리 부부. 항공사 직원에게 건네받은 매트를 바닥에 깔고 입고 있던 패딩을 이불 삼아, 부부가 나란히 누워 본의 아니게 크리스마스 올나잇을 했더랬는데...
그때 내가 농담삼아 했던 말,
"우린 이젠 웬만해선 못 헤어지겠다."
"갑자기 무슨 말야?"
"아니 이런 추억을 공유하기가 어디 쉬워? 헤어지려고 하면 계속 생각날 거 아냐."
그랬는데...
"설마 그때같은 지연이 또? 그때도 밀쿠폰 나눠준 게 어쩐지 좀 불길하지 않았어?"
"설마 그러겠어. 아 그리고 그럼 안되는데? 그럼 진짜 나 너랑 못 헤어지는데???"
다시 또 실없는 농담으로 지연에 지친 나를 웃게 하는 똥보이다. 어이가 없어 실소가 터졌다.
그리고 일정 내내 돌아가고 싶지 않아 몸부림 치던 똥보이도, 비행기 탑승이 두려워 벌벌 떨던 나도, 이때부터는 제발 오늘 안에만 비행기에 탑승해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기도했는데...
다행히 세 시간 남짓 지난 오후 2시 30분. 마침내 보딩 싸인이 떴고, 우리는 무사히 한국행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다시 일상, 이제 한국이다!
여행에서 돌아온 직후, 부부의 근황 입니다.
저는 이제 더이상 장거리 여행이 두렵지 않아요. 10시간 남짓, 조금 더 힘을 내보면 그 이상도 이제는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추억이 된 시드니도 다시 한 번 가보고, 못 가본 유럽이나 미국도 기회가 되면 가보려고 해요.
그리고 남편 똥보이는... 사실 아직도 좀 그렇습니다. 나아지는 게 어디 그리 쉽나요. 여전히 왕복 서너 시간의 출퇴근을 하고 있고, 힘들어 하는 건 지금도 마찬가지 입니다.
어느 날은 시드니 여행의 추억으로 버티는 것 같다가, 어느 날은 도리어 그 추억 때문에 더 우울해 하는 것도 같고.
사실은 그 사이 부부가 잠시 호주 이민을 생각해 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나이 제한 때문에 바로 포기했구요,
그 대신 차선으로 다음 여행지를 바로 결정해 버렸습니다.
똥보이*토보이 부부, 다음엔 호주 브리즈번으로 갑니다.
요즘 남편 똥보이는 그 기대와 설렘으로 버텨요. 이건 마치 다 죽어가는 사람 여행으로 계속 심폐소생 시켜놓는 느낌인데, 근본적인 해결 없이 이게 맞나 싶기도 하지만...
그나마 여행이라도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은 들어요. 길게 쉬어가진 못하지만, 중간중간 쉬엄쉬엄, 그렇게 또 잘 지내보려고 합니다.
그러다보면 아내의 갱년기도 남편의 번아웃도 이 또한 지나가겠죠.
이상 입니다.
그동안 별 거 없는 긴 이야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