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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하다 천국 문턱 밟는 줄...

늙은 알바 체험기

by 토보이



결혼 후 6년 만에 첫 이사.

우리 부부가 이사온 곳은 전국에서 유,아동 인구가 가장 많기로 손꼽히는 수도권 소재 신도시다.

이곳은 마치 섬 같다. 그래서 매일 서울로 출퇴근 하는 남편은 육지(서울)로 나가느라 괴롭고, 홀로 섬(이곳)에 남아 시간을 보내는 나는 외롭다.

물론 그 전 살던 동네에서도 친구나 이웃 같은 건 없었다. (자녀가 없는 가정은 이웃을 사귀는 것조차 쉽지 않다.) 그렇지만 그때는 도보 10분 거리에 대형 백화점과 마트들이 종류별로 다 있어, 나는 그곳을 놀이터삼아 그럭저럭 혼자 시간을 보내곤 했는데...

여기는 그 흔한 2마트조차 차를 타고 나가야 갈 수 있다. 주변엔 공원보다 공사 현장이 더 많고, 마트나 백화점 대신 고깃집, 한식뷔페, 프랜차이즈 카페들이 넘쳐난다.

내가 이곳을 섬처럼 느끼는 이유는 그래서다. 내가 갈만한 데가 잘 없다.

일단 신도시의 하루를 나열해 보자.

유,아동 인구가 많은 지역답게 출퇴근 시간이 지나면 다음은 아이들의 등원 시간. 노란색 셔틀이 아파트 단지마다 돌며 아이들을 실어나르고, 그 아이들이 등원을 하고 나면 이번엔 엄마들이 카페로 모인다. 이 시간 상가 지역 카페들은 어딜 가나 삼삼오오 모여든 엄마들로 북새통이다. 나같은 사람은 노트북을 챙겨들고 나갔다간 마땅한 자리를 찾지 못해 빙글빙글 돌기 일쑤. 센터나 구석진 자리 하나쯤은 가끔 남아있기도 하지만, 웃고 떠드는 엄마들 사이에서 홀로 묵묵히 글작업을 하기란 쉽지 않다.

밤이 돼도 마찬가지다. 이번엔 고깃집, 치킨집, 술집 등이 사람들로 북적이는데 가보면 열에 여덟, 아홉은 부부 동반 술자리. 거의 예외없이 테이블마다 부부가 데리고 온 아이들도 보인다. 어떨 땐 각 집의 아이들이 한 테이블에 모여앉아 각자 핸드폰이나 테블릿pc를 갖고 노는 진풍경도 볼 수 있는데...

엄밀히 말하면 사실 내가 외로운 건 이 지역이 섬 같아서가 아니라 젊은 부부와 유,아동이 많은 이 지역에서 내가 섬 같은 존재라서다.


그래서 나는 알바를 하기로 했다.

가계에 보탬이 되면서 인적교류도 하고 글감까지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 이 좋은 걸 왜 여태 안했나 싶을만큼 순식간에 반드시 하겠단 열의로 가득 찼는데...

그 덕일까. 이력서를 넣자마자 2,3군데서 연락이 왔다. 사실 파트 타임이긴 해도 주5일을 하거나 두 군데를 동시에 할 생각은 없었는데, 상황이 이렇게 되고 보니 나도 모르게 [불러주시면 감사하죠^^].

게다가 운좋게 한 군데는 월,화,수 한 군데는 목, 금 낮시간 알바를 구인 중이라, 잘만 하면 주 5일을 부담스럽지 않게 옮겨 다닐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나이스~


- 한 날 오전 오후로 잡힌 프랜차이즈 빵집과 동네 돈까스 맛집의 면접 후기.-


빵집 :

업주는 젊은 신혼 임신 중인 아내 vs 나는 업주보다 열 살쯤 많고 늙고 후덕한 알바생

그건 그렇고, 평소 나는 진열돼 있는 빵만 봐도 행복한 사람. 그런데 진열돼 있는 빵의 이름을 다 외워야 한다고 생각하니 머리가 복잡해진다. 여기다 음료 레시피, 통신사 할인 항목, 포스기 사용법, 대망의 오픈 당일 행사까지.

웃는 얼굴로 손님들을 맞고, 카드 계산 좀 하고, 쓰레기 좀 치우다, 끝나면 남는 빵을 챙겨 총총총 집으로 되돌아오는 알바생을 꿈꿨던 나는... (그래 새로운 도전은 두렵고 남의 돈 벌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지. 암)

그래도 유니폼이 폼 난다. 알바생 혜택도 탐 난다. 합격하면 해야지!


돈까스 맛집 :

도보권도 아니고 버스로 10분 거리.

가게 주변도 허름, 심난한데 가게 안은 세월만큼 두껍게 내려앉은 돈까스 기름 때로 공기까지 끈적끈적


십 여년 동안 그 안에서 튀긴 돈까스만 얼마야. 그럴 만도 하지.

그런데 첫 인사에 대꾸도 없이 자기 할 일만 하다 불쑥 주방 밖으로 나온 50대 업주. 남자 사장님.

"언제부터 나올래요?"

"이번 주도 가능해요!"

얼러벌레 통과, 얼떨결에 승낙.


결론 :

그래도 집에 돌아와 생각해보니 역시 나는 돈까스보다는 빵!

(나는 이미 빵집 알바가 된 걸로 생각하고) 퇴근해 들어온 남편과 나란히 누워 빵집 알바 후기 검색.

그러다 난데없이 남편 왈,

"빵 성분표나 통신사 할인 항목 같은 거 보면 깨알 글씨 많잖아. 안경은 상시 착용해야겠다. 아 왜 마트 여사님들 보면 안경에 줄 달아서 목에 걸고 일하시잖아. 안경줄부터 하나 살래?"

이걸 죽여 살려... 그러고 있는데 빵집에서 연락이 왔다.

"혹시 낮에 말고 저녁 마감도 가능하신가요? 대부분 지원해주신 분들이 엄마들인데 낮 시간에만 몰려서..."

업주가 자신의 임신 사실을 밝히며 나에게 자녀 여부를 물었는데, 없다고 했던 게 사단이었을까.

애 없는 나는 저녁 시간도 한가할 거라 생각한 거겠지. 쳇!

"아뇨. 저도 저녁 시간은 좀 어려울 것 같아요."


해서 나는 결국 돈까스로 고고. 목요일 드디어 첫 출근을 했다.

따지고 보면 정형화 된 프랜차이즈 빵집보다 삶의 체험 현장 같은 돈까스집이 좀 더 휼륭한 글감을 물어다 줄 것 같았다. 돈까스 기름 때를 푹 녹여내면 기가 막힌 컨텐츠도 하나 나올지 않을까. 나는 꺾이지 않는 마음과 부푼 기대를 안고 식당 홀 알바 일을 시작했는데...


"저 죄송한데요. 오늘만 하는 걸로 해주세요. 저는 이 일 도저히 못할 것 같아요."

사실 출근하자마자 진작에 갖다 버렸어야 할 빗자루 하나를 건네받고 가게 바닥을 쓸 때부터 나는 땀 한 바가지를 흘리며 허리 디스크가 도지는 느낌을 뭉근하게 받았다.

그러나 그 정돈 시작에 불과했다. 11시 오픈과 동시에 쉴새없이 밀려드는 주문. 경로도 다양하다. 배민, 요기요, 전화, 홀... 사방에서 너도 나도 '요기요" "저기요"

알고보니 그 집은 보기와 달리, 생각보다도 훨씬 더 그 동네 대박 맛집였다. 그 근처 관공서, 은행, 병원 종사자는 물론이고 그냥 길 가던 사람들도 다 들어와 밥을 먹는 듯한 그런 곳.

주문이 시작되자마자 영혼까지 털려 손님 백 명쯤 받았다 싶었을 때 슬쩍 포스기에 뜬 시간을 봤는데, 고작 11시 40분. 영업 시작하고 40분이 지난 시각이었다. 그리고 그 뒤로도 내 체감 상 그 날 런치에만도 약 200 여명의 손님은 다녀간 것 같은데... (순전히 그냥 내 느낌이지만)

어떻게 나는 골라도 이런 대박 맛집만 쏙 골랐을까. 나중에 들으니 50대 사장님은 자식 둘과 아내를 해외에 보내 공부시키고 있는 기러기 아빠란다. 한 자리에서 줄곧 십 년. 그 동네 터줏대감으로 불리우는 게 괜히 그런 게 아니었다. 사장님이 목에 건 금목걸이가 유난히 크고 묵직해서 고개를 조금만 숙이면 돈까스랑 같이 튀겨지지 않을까 염려스러웠는데, 그것 역시 예사 물건이 아니었던 게지...


그런데 내가 하루만에 두 손 두 발 다 들고 그곳을 나온 이유는 단지 몸이 힘들어서가 아니다.

요즘 식당은 주문을 받는 경로가 너무 다양하다. 예전 이자카야에서 알바하던 시절, 홀 주문만 받던 때랑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모바일 주문, 전화 예약 주문, 홀 주문... 포장, 배달, 서빙... 여기다 1인 상으로 음식이 나가는 가게 특성상 주문하는 메뉴마다 나가는 반찬들도 각양각색... 이 모든 걸 홀 담당인 내가 맡아서 처리해야 한다는 게, 도저히 엄두가 안났다. 물론 이 날은 전임자가 있었지만, 사실 이게 더 문제다. 전임자가 있었어도 이 지경인데, 당장 다음 주부터 진짜 혼자가 되면 그땐 어떤 사달이…

주문 미스 엄청 나고 대박 사장님 쪽박 사장님으로 만들어 유학 간 자녀들 일시에 귀국시키는 건 어쩌면 일도 아닐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알아서 먼저 그곳을 관뒀드렸다.

관두겠다고 하니 그런 일쯤은 한 두번도 아닌 듯 쿨하게 점심이나 먹고 가라는 사장님.

마음 같아선 메뉴 중 제일 먹음직스러웠던 17,000원짜리 특선 모듬까스를 부탁드리고 싶었지만, 어찌 그런 본능에만 충실한 짐승같은 짓을 하랴. 나는 그냥 7,000원짜리 냉모밀을 부탁드렸고, 그조차 나는 앉은 자리가 불편해 마시듯 후루룩 집어삼키고 도망치듯 가게를 빠져 나왔다.


집으로 돌아오니 통장에 들어와 있는 그 날의 알바비 52,000원.

나는 그걸로 치킨과 맥주를 주문했고, 퇴근해 돌아온 남편에게 그 날의 격렬했던 4시간을 장황하게 읊어댔다.


며칠 후.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나의 늙은 알바 체험기.

그 뒤로 나는 식당 알바 대신 1회성 좌담회 알바를 알게 됐고, 또 운좋게 커피 맛 테스트를 하는 조사에 패널로 선정돼 참석하게 됐다.

평소 빵과 곁들이는 커피는 누구보다 좋아하고, 한 시간 정도 할애해 커피를 마시고 설문에 답하는 일이라면 가볍게 나들이삼아 가보자, 했는데...

아뿔싸! 한 시간 동안 커피 맛을 평가하는 일인즉슨, 다시 말하면 짧은 시간 안에 다량의 카페인을 섭취해야만 하는 일. 그 어떤 일보다 순식간에 몸이 망가지는 힘든 알바였다.

그 날 나는 한 시간 동안 커피 9잔을 마시고 집에 와, 그 다음 날 난생 처음으로 이석증을 마주했다.

난데없이 빙그르르 도는 천장. 쉴새없이 올라오는 구토...

지나고 나서야 이석증은 귀에 걸리는 감기 같은 거고 치료만 잘 받으면 큰 병은 아니라고 알게 됐지만, 경험해 보지 못한 증상과 고통으로 당시엔 진짜 제목처럼 천국의 문턱이라도 밟는 줄 알았다.

커피 맛 테스트 하고 봉투에 받은 돈 20,000원은 이석증 진료비 200,000원에 보태 썼다. ㅜㅜ

이런 게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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