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중국인 침술원, 문화 차이와 이질감
부산에서 한 달가량 매일 침을 맞는 동안 안정되었던 걸음걸이가 다시 나빠졌다. 재활 훈련은 꾸준히 계속하고 있지만 몸이 오히려 몇 달 전으로 되돌아간 것 같다. 운동요법의 재활치료 외에 뇌신경과 병원에서는 이렇다 할 치료나 처방을 해 주는 것도 없다. 민수 한의사님, 백동진 원장님, 서 원장님 말씀대로 뇌 혈류 개선을 위해서도 가능하면 침을 많이 맞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수소문 끝에 집에서 전철로 한 정거장 떨어진 곳에 있는 '중국침구전문원(中国鍼灸専門院)'이라는 곳을 알게 되었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원장님이 중국인 여자분이다. 규(邱) 원장님은 1983년 중국 중의대학 의학부(中国浙江省中医大学医学部)를 졸업했고, 임상 경험이 40년이라고 한다. 다행이다. 정통 한의사를 찾은 것 같다. 한방이 활성화되지 않은 일본에서, 그것도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임상 경험 40년의 선생님께 침을 맞을 수 있는 곳이 있다니 정말 감사한 일이다.
쉽지 않았지만, 전화로 예약을 하고 침을 맞으러 갔다. 天仁이 신의 경지에 계신다고 생각하고 있는 백동진 원장님과 비교할 수는 없는 것 같지만 꾸준히 맞으면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감히 天仁이 한 번 만나 본 한의사 선생님을 판단할 수는 없지만 느낌이 그렇다. 天仁의 병증, 몸 상태로는 한 번 침을 맞는다고 큰 변화를 느끼기 쉽지 않다. 그래서 한 번 더 맞아 보기로 했다.
그런데, 다음 예약을 잡으려니 역시 쉽지가 않다. 병원이 평일인 월, 목은 쉬고, 화, 수, 금, 토요일 4일만 문을 연다. 天仁은 월, 수, 금 3일 오전에 재활훈련이 예정되어 있고, 평일 오후에는 사무실에 나가야 하니 시간 맞추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결국, 재활 치료사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여 재활 훈련을 하루 쉬기로 생각하고 예약했다. 재활을 하루 빠지기로 했는데도 열흘 뒤에야 예약이 잡힌다.
두 번째 침을 맞으러 갔더니 비효율 적인 병원의 운영 모습이 보인다. 커튼으로 가려져 있지만, 침을 맞을 수 있는 배드가 모두 5개 놓여있다. 원장님 혼자서 5개 배드의 환자를 모두 다 보신다고? 원장님이 너무 바쁘시겠다. 아니나 다를까, 天仁의 시침 중에 옆 배드의 타이머가 울리니 잠깐 기다려 달라고 하시더니 다른 배드 환자의 침을 빼 드리러 달려가신다. 시침 중이었는데 빠뜨린 침은 없는지 불안하다. 다시 돌아오시니 다음 환자가 또 오셨다. 이번에는 새로 오신 환자에게 기다려 달라고 양해를 구한다. 여쭈어 보았더니 혼자서 일을 하신다고 한다.
치료비는 초진료 1천 엔을 포함해 9,100엔(한화 약 9만 원), 두 번째 이후에는 8,100엔이라고 한다. 의료보험이 적용된 뇌 MRI 검사 비용과 비슷한 금액이다. 일본에서는 침, 한방치료에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치료비가 비싼 것이니 어쩔 수 없다. 규(邱) 원장님은 일주일에 한 번만 치료를 받으라고 한다. 한국에서는 침을 매일 맞았는데 좀 더 자주 맞으면 어떻겠느냐고 했더니, 꼭 더 맞고 싶으면 한 번은 전신, 한 번은 경색이 있었던 머리에만 침을 놓는 두침(頭鍼)을 맞도록 해 보자고 한다. 그런데, 조금 특이한 말씀을 하신다.
"두침을 맞으려면 2시간 전에 샴푸를 해야 합니다."
"예약시간 2시간 전에 병원에 와서 샴푸를 하고 침을 맞아야 한다고요? 두피 마사지나 다른 치료도 함께 받는 것인가요?"
"아닙니다. 침만 맞습니다."
"그럼, 샴푸는 왜 하는가요?"
"혹시라도 생길 수 있는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서입니다."
중국어 4성의 영향인지 발음이 조금 어설프기는 하지만 일본말도 곧잘 하시는데, 무슨 뜻인지 언뜻 이해할 수가 없다. 다시 물었다.
"병원에서 샴푸는 왜 하는가요?"
"아닙니다. 샴푸는 병원에서 하는 것이 아니고 2시간 전쯤 집에서 하고 오셔야 합니다."
무슨 말씀이지? 일본인들이 대부분 저녁에 목욕을 하지만 출근하는 남성들은 아침에 당연히 샴푸를 하거나 머리를 손질하고 집을 나선다. 땀을 많이 흘려서 샴푸의 양을 조절해 가면서 매일 아침에 샴푸를 하고 있는 天仁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지금까지 수없이 침을 맞아 봤지만 머리를 감고 오라는 주문은 처음이다. 규(邱) 원장 선생의 말씀이 완전히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시간이 없어서 더 이상 질문을 하지 않고 그냥 돌아왔다.
사무실로 돌아와 오래전부터 중국과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일본 친구에게 물어보았더니 “중국사람들이 머리를 잘 감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지난 북경 올림픽 때 '머리 감기 캠페인'을 한다던 기사를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유인즉슨 머리를 자주 감는 중국인이 20% 정도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문화의 차이를 느낀다.
아무튼 이 침술원은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몇 가지 있다. 평일 5일 중 월요일과 목요일 이틀은 휴진하면서 간호사나 보조원도 없이 원장 선생님 혼자서 침도 놓고, 빼고, 치료비도 받는다. 혼자서 북에 장구까지 치셔야 하니 많은 환자를 볼 수가 없다. 종이 진찰권에 진료 기록을 적어가며, 열 번 맞으면 한 번은 무료로 침을 놔준다고도 한다. 天仁의 생각이 고리타분한 지는 모르겠으나,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대단히 모양 빠지는 일이다. 보험 적용 여부를 떠나서 침 치료비도 너무 비싸다. 경영관리 측면에서 보면 간호사나 아르바이트 생 한 사람만 둬도 훨씬 효율적으로 침술원을 운영할 수가 있어 더 많은 환자를 치료하며 치료비도 낮출 수 있을 것 같다.
병원이 왜 평일에 이틀이나 휴진을 하는지 속 사정은 알 수 없지만, 만만디(慢慢的) 정신이 없는 한국 사람으로서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무료 기능재부까지는 아니더라도 의사는 사람을 치료한다는 사명감으로 의술을 베풀고, 사회에도 공헌해야 하는 분들이 아닌가. 더 많은 환자들이 의료 혜택을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天仁의 몸 상태를 생각하면 계속해서 침을 더 맞고 싶은데 예약하기가 너무 어렵다. 인연이 닿지 않는 것인지, 안타깝다. 우선 두침을 맞아보고 계속 다닐지 말지 결정할 생각이지만 다른 침술원을 더 알아봐야 할지 고민이다.
주) 이 글은 天仁의 뇌경색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기록한 것입니다. 중국인이나 침술원을 비하할 의도가 없으니 표현에 부족함이 있더라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