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보니 내가 N잡러가 될 수 있도록 토대가 되었던 건 재택근무였다. 2004년부터 13년 동안 온라인 학습지 교사, 사이처로 일했다. 사이처란 사이버(Cyber)'와 '티처(Teacher)'를 합성한 신조어로 온라인 학습매니저를 말한다. 지금은 온라인 학습사이트의 비율이 방문학습지를 추월하고 있지만 내가 일하던 2004년도에는 너도나도 방문학습지를 하던 때였다.
정신없는 두 아들을 두고 일자리를 찾아 헤매던 끝에 '심봤다'를 외치며 찾은 것이 온라인학습지 교사였다. 방문학습지와 다르게 근무형태가 재택이었고 주말뿐만 아니라 달력의 빨간 글씨는 다 쉴 수 있기에 아이들과의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1년 정도 지나자 전체적인 일의 흐름도 잡게 되고 목표도 생겼다. 무엇보다 오전시간을 활용할 수 있어 좋았다.
처음 몇 년은 오전시간을 집안청소와 빨래, 장보기, 아이들 간식 만들기로 활용하다가 점차 운동(에어로빅, 헬스, 수영, 요가 등)으로 바꿔 나갔다. 조금씩 온라인 학습지 교사의 일이 시들해지자 다른 일을 찾기 시작했다. 그때 동네 놀이방에서 오전시간만 도와줄 교사모집글을 보게 되었다. 관련 보육교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었기에 바로 출근제의가 들어왔다. 그렇게 3개월 정도 오전에 보육교사로 일하다가 그만두었다. 체력적으로 두 가지 일을 병행하기엔 힘들었기 때문이다.
온라인 학습지 교사로 10년이 넘어가면서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 재택근무 입문서를 써 보기로 한 것이다. 교사로 사내강사로 관리자로 일하면서 '왜 같은 시간을 일하는데 급여의 차이는 이렇게 많이 날까?' 그 부분을 살펴보니 두드러진 것이 목소리였다. 우리가 하는 일은 주로 전화상담으로 이뤄진다. 방문학습지처럼 대면상담으로 진행되지 않기에 귀로 듣는 목소리는 더 민감할 수밖에 없다.
연봉의 차이가 바로 목소리의 차이였다. 상대방에게 신뢰감이 느껴지는 친절한 목소리는 그냥 나오지 않는다. 그 내면에는 교사로서의 자부심과 자신이 상담하는 상품에 대한 자신감이 탑재되어야 한다. 그만큼 상담 전 상대방에 대한 사전 조사가 충분히 이루어졌고 오늘 상담 시 어떤 내용으로 대화를 이끌어 가야 할 지에 대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집에서 일할 수 있어 공간과 시간적 활용이 좋고 높은 연봉을 받을 수 있는 온라인 학습교사 사이처 분야는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코로나 이후 대면학습에서 온라인 학습으로 대폭 이동이 되었고 부모도 온라인학습에 대한 거부감이 호감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한 예로 재택근무입문서 <나는 집에서 일하고 4000만 원 번다>는 2017년에 출간했는데 관심은 그로부터 3년 후에 더 많이 생긴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50대에 N잡러로 활동할 수 있었던 것도 13년 동안 재택근무로 수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가장 지출이 많이 되던 시기에 안정적 수입으로 금융에 대한 기초체력을 키웠기 때문에 고정수입이 들어오지 않는 프리랜서 N잡러의 길을 즐겁게 할 수 있었다. 또한 디지털 세상으로 거부감 없이 들어올 수 있었던 것도 온라인 학습 교사로 활동했던 경험이 도움이 되었다.
재택근무는 40대 전업주부로 아이들을 돌보며 경제력을 키우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오로지 아이들 학원비, 대학 등록금과 서울에 내 집 마련을 위한 수단이었다. 하지만 그 시간이 후회되지 않는다. 그만큼 치열하게 열심히 살았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일을 찾을 때 삼미 즉 재미 흥미 의미가 있는지 살펴보라고 한다. 현재 나에게 낭독은 삼미를 두루 갖춘 분야가 되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나의 영역을 점점 확장하고 있는 N잡러의 일상이 점점 기대가 된다. 세상이 원하는 걸 들여다 보기 보다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집중하고 배워가는 지금의 시간이 즐겁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