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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진우 Aug 17. 2022

16. 내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나?

C사 퇴사 이후의 일상(1)

 시원섭섭하게 C사를 퇴사한 그 다음 날이었다. 오래간만에 여유로운 아침을 보내고 있는데 느닷없이 핸드폰이 울렸고, 느닷없이 시간 될 때 연락을 달라는 메시지가 화면 위로 떠올랐다. 발신자는 C사 팀장님이었다. 머릿속에 물음표만 가득 띄우며 전화 버튼을 눌렀다.


통화가 연결된 팀장님과 근황을 주고받을 것도 없었다. 불과 이틀 전에 만났으니까. 그녀는 잘 지냈냐는 안부를 짧게 건넨 후,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저희 회사에서 프리랜서로 일해보실래요?"


 어..., 음..., 아.... 이 세 가지의 외마디를 거듭하며 내 심정을 대변했다. 설마 팀장님한테서 이런 제안을 받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역시 사람 깜짝 놀라게 하는데 일가견이 있는 분이었다.


당혹감만 드러내자 팀장님은 급한 일이 아니라며 여유롭게 생각하고 답해달란 말을 했다. 그러면서도 내심 내가 받아들일 거라 생각했는지 벌써부터 C사 프리랜서가 되면 어떤 프로젝트를 주로 맡는지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우선 오후에 확답을 주겠노라 말하고서 전화를 끊었다. 나는 팀장님이 알려준 정보들을 한데 정리해보았다.


내용을 들어보니 인턴 때의 월급보다 (물론 적어졌지만) 그렇게 크게 금액 차이가 나지 않았다. 또 다른 장점으로는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집에서도 편히 작업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어찌 되었건 커리어를 계속 쌓을 수 있었다!


이렇게 여러 장점이 꽤 있는 제의였지만, 쉽사리 프리랜서 일을 하겠노라고 답할 수 없었다. 바로 얼마 전에 내가 탈락한 사유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많이 들었기 때문일까? 모르겠다.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속에서 먼지 같은 게 표류하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끈적한 찌꺼기가 들러붙은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하여간 찜찜했다.


 결국, 다시 핸드폰 전원을 켰다. 이번에는 고등학교 동창이자 내 사정을 잘 아는 친구한테 전화를 걸었다. 나 혼자서는 답을 못 내리는 고민이었다. 친구는 내 이야기를 듣자마자 “하지 마. 하지 마.”란 말만 연발했다.


 "왜?"

 "야. 그건 좀 아니지 않아?"


 즉, 친구의 말을 이러했다. 본인이 떨어트려 놓고 퇴사 다음 날 바로 프리랜서 제안하는 그 심보가 뻔뻔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친구의 단호한 말을 들으면서도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당장 확신이 서지 않았다.


 전화를 끊고 나서 장단점을 나눠 생각해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무직자의 신분으로는 꽤 괜찮은 조건 같았다. 친구가 말한 감정적인 부분만을 빼면 거절할 이유가 딱히 없었다. 나는 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자 메신저 창을 열었다.


 [네. 말씀해주신 그 프로젝트에 저도 함께하고 싶습니다. 계약서 내용은 언제 자세히 볼 수 있을까요?]


 전송 버튼만 누르면 됐다. 하지만 보내려고 하는 순간 마음속이 꿈틀거렸다. 여러 가지 장점이 있었음에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퇴사 전날, 아쉽게 됐다며 그저 위로만 건넸더라면 나는 기꺼이 프리랜서 제의를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정규직 사원으로는 불필요한 인재인데 프리랜서용 인재로는 그냥저냥 적합하다'라는 속뜻을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냈고, 나는 그걸 못 본 척하고 넘어가기에는 자존심이 이미 상할 대로 상해있었다. 끝내 충동적으로 거절 문자를 보냈다.


 [죄송하지만 프리랜서 제의는 거절하겠습니다.]


 이 소식을 고민 상담해준 친구에게도 전해주었다. “그냥 하기 싫어서 거절했어.” 그러자 그녀는 깜짝 놀라 했다. 내가 무조건 프리랜서 제안을 받아들일 줄 알았다면서 말이다. 친구의 다소 격한 반응에 나도 덩달아 놀랐다.


 "왜 그렇게 생각한 거야?"

 "네가 그냥 하기 싫다면서 일을 거절하는 경우는 처음 봤거든.“


 그렇기는 했다. 하기 싫다고 해도 장점이 있으면, 하다못해 그럴듯한 이유가 있으면 늘 했으니까. 당장의 감정보다는 매번 앞일을 생각하며 행동했다. 친구의 말대로였다. ‘그냥’이란 말을 앞세워 결정을 내려본 건 정말 이번이 처음이었다. 작년의 내가 알게 되면 기함을 할 일이었다. 왜 이렇게 철이 없어? 라며 비난을 보낼 수도 있겠다.


그래도 내가 잘못된 선택을 했단 생각은 들지 않았다. 불편했던 속이 차차 풀리기 시작했다. 부유하던 먼지도, 끈적한 찌꺼기도 모조리 사라져 갔다. 어린아이같이 구는 거 제법 괜찮을지도 모르겠다. 의외로 인생, 가뿐하게 사는 지름길이지 않을까?


 이렇게 시작한 돌발행동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계속 이어졌다.



-여기까지 미리보기입니다-
 혹시 나머지 내용이 궁금하시다면, 책<과로사 할래? 퇴사 할래?>에서 감상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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