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 이런 일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D사에 있을 때를 뺀 나머지 시간에는 프리랜서 업무를 했고 글을 썼다. 세 가지 일을 동시에 하려니 죽을 맛이었다. B사와 C사에서 바쁘게 인턴을 하던 때가 생각났다. 그래도 그때보다는 지금이 훨씬 좋았다. 프리랜서 업무도, 글을 쓰는 것도 내가 자발적으로 한 일인 까닭이었다. 강제성이 빠지니 야간작업에 대한 분노와 억울함이 예전만큼은 아니었다. 신기한 변화였다.
게다가 다행스럽게D사에서는 야근할 일이 없었다. 만약 하게 되더라도 1시간 정도만 더 일하면 됐다. 그건 내 기준 야근의 축에속하지도 않았다. (광고대행사 B사의 기준으로는 ‘칼퇴’라고 보지 않을까?)
또한, D사는 직급 체계가 명확하지 않았다. 대표님, 본부장님과 같은 직급이 있긴 했으나 창립 구성원을 뺀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다 같은 직급이었다. D사의 전 직원은 고작 15명 남짓이었고, 그중 정규직은 10명이 채 되지 않았다. 그러니 대리, 차장, 부장, 팀장, 파트장 등으로 직급을 세세히 나누기는 어려울 것이다. 위아래가 없는 덕분에 편안하게 D사를 다닐 수 있었다.
그렇지만 D사한테 단점이 아예 없다는 건 아니다.
먼저 시설이 매우, 몹시, 심각하게 열악했다.
화장실 수도가 빈번히 얼었고 보일러가 자주 고장 났다. 나는 이렇게 춥고 건조한 사무실은 생전 처음 겪어보았다. 사무실 안에서도 롱패딩을 벗지 않고 일을 할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D사에 처음 출근한 그 다음 날부터 나는 바로 집에서 가습기 두 대와 핫팩, 목도리, 그리고 기모 후드를 챙겨왔다. 이대로면 얼어 죽거나 말라 죽거나하겠다는 우려와 무사히 살아남고 싶다는 생존 본능에 의해서였다.
시설만이 안 좋지 않았다. 장비도 아주 끝내주게 열약했다.
컴퓨터는 무슨 내가 중·고등학생일 때 썼을 법한 구식 모델이었고, 더 나아가 포토샵이나 일러스트레이터와 같은 기본적인 디자인 프로그램이 깔려 있지도 않았다. 아, 깔려 있기는 했다. 불법 프로그램이지만.
그 사실을 알게 된 건 D사에 온 지 몇 주 지났을 때였다.
-여기까지 미리보기입니다- 혹시 나머지 내용이 궁금하시다면, 책<과로사 할래? 퇴사 할래?>에서 감상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