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취업 정말 안 하니?
네 번째 회사 : 소기업 D사(2)
D사에는 특이한 사람들이 많았다.
나만 겸업을 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D사 직원들 대부분이 여러 일을 동시에 겸하고 있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쓰리잡이 아니라 식스잡을 뛰고 있었다. 그는 가수, 강사, 유튜버 등의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하도 직업이 많아서 기억이 다 안 난다.) 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서 일하면 가능하다고, 그는 식스잡의 비결을 알려주었다.
특이한 건 그만이 아니었다. 관련 전공자가 아닌데 연기가 좋아 배우를 이제 막 시작하는 사람도 있었고, 문화예술 분야에 뒤늦게 관심이 생겨 안정적으로 다니던 대기업을 그만두고 D사에 온 사람도 있었다. D사는 작은 회사였지만 개성 넘치는 직원들이 많았다.
대학을 나오고, 인턴이나 계약직을 하며 스펙을 쌓고, 결국 좋은 곳에 성공적으로 취업하는, 이 루트가 정석이라고 생각했던 내게 그들의 삶은 새롭게 다가왔다. 주변 사람들(특히 엄마)은 제대로 취업하지 않는 나를 특이하게 보곤 했는데 D사의 직원들과 비교하자니 내 행보는 평범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돈을 벌고 살아가는 방식은 각자 이렇게나 다르구나.
D사를 다니면서 이런 생각이 점점 뿌리를 잡았다. 그래서 엄마가 “취업 준비는 어떻게 돼가니?”라고 물어보면, “그건 모르겠고 이번 달에 n원 벌었어요! 난 이제 벼락부자야!”라는 답으로 시원시원하게 받아칠 수 있었다.
말만 그런 게 아니라 정말 수입이 쏠쏠했다. 외주 비와 D사 월급을 합치니, 통장 잔고는 넉넉하다 못해 풍족해졌다. 어떤 달에는 인턴 했을 때의 월급의 2~3배를 벌 때도 있었다. 이 정도면 D사 계약이 끝나고 몇 달간은 괜찮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외주와 D사는 내 생계를 든든하게 견인하고 있었다.
반면, 글 작업은 전혀 견인해주지 않고 있었다. 몇 달간 준비한 공모전에 뚝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래도 진척은 있었다. 공모전 당선이나 계약은 아직 못했지만 그 전초 단계를 착실히 밟고 있었다. 웹소설 사이트에서 무료 연재를 시작한 것이다.
무료 연재는 아마추어 작가들이 데뷔하기 전에 대체로 거치는 절차였다. 모두가 볼 수 있는 사이트에 연재하며 자신의 작품을 꾸준히 독자들에게 알리고 출판사에 어필하기 위함이었다.
나는 어느 정도 편수가 모였을 때 연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말 놀랍게도 반응은 전혀 없었다! ‘이 전개는 찢었다’라고 생각하며 쓴 글에 달린 댓글은 없었다. ‘이 문장은 미쳤다’라며 쓴 글에도 달린 댓글은 없었다. 내가 일부러 구렁텅이에 빠트려놓았으면서 주인공에 대한 연민을 가득 안고 쓴 글에도 역시나 달린 댓글은 없었다. 도리어 조회 수가 더 떨어지기만 했다. 역시나 인생, 만만치가 않다.
하지만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니 독자가 한두 명씩 천천히 붙기 시작했다. 꾸준히 댓글을 달아주는 분도 새로 생겼다. 너무 재밌다고, 다음 편은 언제 나오느냐고, 독자 한 분이 그리 댓글을 달아주었을 때 느꼈던 전율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 날은 종일 방정맞게 웃고 다녔다. 혼자 살아서 다행이었다. 아무에게도 이 꼴을 보여주지 않을 수 있으니.
나쁘지 않은, 실은 꽤 괜찮은 나날을 보냈다.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날씨가 점점 더워지기 시작했다. 전보다 가벼운 옷차림으로 D사 사무실에 앉아 있을 때였다. 전화가 왔다. 화면 위로 떠오른 이름을 보자마자 반가움이 일었다. 오랜만이었다. 선배님 ‘라’의 연락은. 라 선배님은 나한테 많은 도움을 줬던 사람이고, 그래서 나는 늘 그에게 존경과 감사를 느끼고 있었다.
곧장 사무실을 나가 비상계단에 서서 선배님의 전화를 받았다. 안부 인사가 잠시 오간 뒤로, 선배님이 요즘 어떻게 지내느냐는 물음을 던졌다. 순간 움찔했다. 저번 동기 언니한테 들었던 질문보다 무게가 들어있는 듯했다. 나는 주저하다가 솔직하게 고했다.
“저 요즘 D사에서 일하고 있어요.”
“D사? 뭐하는 회사인데?”
“아, 그러니까요. 이런 곳인데요....”
어떤 회사인지, 거기서 내가 무얼 하고 있는지 설명하자 스피커 너머가 조용해졌다. 표정을 직접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라 선배님은 조금 놀란 듯했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D사 단기계약직 업무만 하는 게 아니라고 말했다. 여전히 C사에서도 외주를 받고 있다고, 황급히 덧붙이자 그럼 요즘은 어떤 외주를 받냐는 질문이 즉각 날라 왔다. 이번에도 움찔 어깨를 떨었다. 어쩐지 라 선배님한테 모든 사정을 간파당한 느낌이었다.
현 상황을 좋게 보려 애썼고 그래서 일상을 즐겁게 보내고 있었지만 실상 앞날까지 멀리 바라보면 그리 좋지만은 않은 상황이었다. 이대로 가다간 돈을 벌 수단이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외주를 꾸준히 받고는 있지만 그중 경력에 도움이 되는 작업물은 별로 없었다. 그 말인즉슨 포트폴리오가 쌓일 일이 없다는 것이다. 나이는 점점 차고 있는데 보유하고 있는 디자인 결과물이 대학교 갓 졸업했을 때와 비슷하다니. 곤란했다. 그래서 나도 작년말부터 포트폴리오가 될 법한, 좋은 프로젝트의 업무를 받으려 꾸준히 노력했으나 그게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었다. 그 마음은 외주 의뢰를 주는 C사나 다른 회사에서 정할 일이었다.
D사에서의 업무는 말할 것도 없었다. 경력에 별 도움 안 되는, 만능 잡일꾼으로 거듭나는 중이었다.
글 작업도 마찬가지였다. 전업 작가를 노리기에는 내 글 실력이 그리 뛰어나지 못했다. 무료 연재를 하며 작가라는 꿈을 위해 달려가고 있지만, 그 꿈이 언제 이뤄질지 모르는 일이었다. 설사 이뤄진다고 해도 내 생계를 책임질 수준까지 다다를 수 있는지가 미지수였다.
내 생계를 책임진다고 확신할 수 있는 건 내 전공, 디자인뿐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앞으로의 생계를 위해서는 이제 슬슬 커리어를 쌓아야 했다.
20대에는 짧은 디자인 경험이 용서될 것이다. 지난 몇 개월 동안 겸업 생활을 하면서, 앞으로 몇 년은 어떻게든 돈을 벌 수 있겠다는 싶었다. 하지만 30대에는? 더 나아가 40대에는? 그때에도 용서될까? 지금처럼 일을 받을 수 있을까?
그 나이 때면 여러 경험을 쌓은 베테랑 인재가 내 경쟁자가 될 것이다. 대기업 경력을 가진 자도 있을 것이고, 유명한 에이전시 경력을 가진 자도 있겠지. 나는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는데 말이다. 그런 내게 굳이 외주를 주려고 할까? 나이에 걸맞은, 그럴듯한 경력 하나 없는 내게 구태여 일을 맡길 이유가 무엇이 있을까?
외주가 들어오지 않아 수입이 걱정된다면 지금처럼 단기계약직 일을 구하는 방법이 있긴 했다. 그러나 내가 언제까지 D사 같은 회사들을 전전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언젠가는 한계가 있을 게 뻔했다. 알바 구인 공고에도 나이 제한을 거는 세상이었다.
당장 생각할 문제는 아니니 일부러 저 멀리 치워두었다. 그런데 라 선배님이 던진 고작 서너 개의 질문만으로 숨겨둔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변명과 같은 내 설명을 가만히 듣던 선배님이 다른 질문을 꺼냈다.
“너... 혹시 취업 안 할 거야? 언제까지 그러려고?”
지금까지 주구장창 들어온 말이었다. 이제 익숙해질 법도 한데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세차게 흔들렸다. 라 선배님의 말 한마디는 위력했다. 다잡았던 마음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D사 직원들의 특이한 행보를 지켜보면서 ‘돈을 벌고 살아가는 방식은 각자 이렇게나 다르구나’를 깨우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내가 돈을 버는 방식이 어떻게 남들과 다를 수 있을지가 아직 확신이 서지 않은 채였다.
결국에는 내 실력이 문제였다. 디자인 실력도, 글 실력도 어느 하나 자신할 수 없으니 무경력이란 타이틀 앞에서 당당해질 수 없는 것이다. 내 앞날이 안온하리라고 당당히 확신할 수 없는 것이다. 또다시 모든 게 잘못된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