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뒤로 정말 라 선배님을 나를 전폭적으로 도와주었다. 인맥을 통해 여러 회사에 내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뿌려줬다. 그 회사 안에는 누구나 아는 대기업도 있었고, 유명한 중소기업도 있었고, 내실이 탄탄한 스타트업도 있었다. 경력직을 찾는 자리에도 ‘얘가 참 잘하는 친구야’라며 내 이력서를 들이밀었다고 했다.
나를 추천해주는 건 사실 라 선배님한테 리스크가 있는 일이었다. 라 선배님의 말만 믿고 나를 채용했는데 내 수준이 그 기대 이하면 어떡하겠는가. 그들은 나를 욕하면서 동시에 라 선배님도 욕할 것이다. 내 평판이 라 선배님의 평판까지 영향을 끼칠 수 있었다. 라 선배님도 그 사실을 알고 있을 텐데, 서슴없이 이곳저곳에 나를 추천해주고 다녔다. 너무나도 감사한 일이었다. 사실 감사한 걸 넘어서 감동까지 받았다. 급격히 취업 전선에 뛰어드는 바람에 내 마음이 영 개운치 않은 것과는 별개로 말이다.
그로부터 며칠 지난 후, 한 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라 선배님이 돌린 내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봤고 그 내용이 마음에 들어서 연락했다고, 통화 상대는 말했다. 그리고는 대뜸 질문했다.
“혹시 언제 시간 되세요? 한번 얼굴 보고 이야기 나누면 좋을 거 같은데."
나는 얼떨떨하게 비어있는 시간을 말했다. 그러자 상대방이 장소를 정해주었다. 어쩌다 보니 면접이 잡히게 됐다.
연락을 준 회사는 E사로, 광고대행사였다. 내 B사 인턴 경험과 포트폴리오를 좋게 본 모양이었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는 회사였지만 E사는 업계에서 유명했다. 센스 있는 광고를 많이 만들었으며 매년 여러 광고대상에서 상을 탔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E사를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솔직히 시인하자면 E사를 알게 된 데에는 그 유명세만이 들어 있지 않았다. 항간에 떠돌아다니는 소문 때문도 있었다. E사의 근무환경이 꽤 혹독하다는 소문 말이다.
얼마나 그 소문이 광고 업계에서 자자했냐면 한때 광고 공모전을 함께 준비했던 친구에게 E사 면접을 보게 되었다고 말하니 바로 그가 반대할 정도였다.
"헉 안돼!"
그는 그냥 말리는 것도 아니고 엄청나게 말렸다.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E사에 관한 이야기를 알려주었다. 덕분에 등골이 서늘한 감각을 오랜만에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잡플래닛(*직원들이 쓰는 회사 리뷰 사이트)에도 그가 했던 말과 비슷한 내용의 후기들이 많았다. 난 그렇게 무서운 이야기만 가득 찬 회사 후기는 처음 보았다. ‘과로로 인해 E사 재직 중 생명의 위협까지 느꼈습니다.’ 어떤 후기에는 그런 말이 적혀있기도 했다. 그 후기를 읽자마자 그냥 사이트를 껐다. 차라리 아무것도 안 보는 게 정신건강에 더 이로울 것 같았다.
E사를 조사하는 내내, 마치 악성 사이트에서 마구잡이로 튀어나오는 경고창을 마주하는 기분이었지만 애써 무시하며 면접장 안으로 발걸음을 떼었다. 악의 소굴처럼 묘사된 E사는 실제 가서 둘러보니 전혀 그런 느낌이 나지 않았다. 지극히 평범했고 깔끔했다. 규모가 크지는 않았으나 D사만큼 작지도 않았다. 적어도 화장실 수도가 얼 일은 없어 보였다.
나는 조금 마음을 내려놓으며 면접에 임할 수 있었다.지금까지 잘 본 면접 TOP 5안에 선정될 만큼 면접을 잘 보았다. 그들의 질문에 막힘없이 술술 답변을 내놓았다. 그 때문일까, 철석같이 붙었다. 붙고 말았다. 그것도 정규직 사원으로. 얼떨결에 취업을 해버린 것이다.
라 선배님한테 합격 소식을 전했다. 그는 축하한다는 말을 전해주었다. 광고업계를 잘 아는 친구에게도 E사에 합격했다고 말했다. 그는 떨떠름해 하면서도 축하해주었다. 엄마에게도 말했다. 엄마의 반응은 앞 둘과는 영 달랐다. 소식을 전하자마자 엄마는 걱정에 찬 말부터 쏟아냈다.
E사라니 거기가 대체 어디냐, 뭐하는 회사냐, 정말 괜찮은 곳이 맞느냐, 왜 또 광고대행사냐... 등. 엄마의 부정적인 질문은 끝없이 이어졌다. 생각과 전혀 다른 반응에 당혹스러웠다.
“나 정규직으로 취업한 건데, 안 기뻐?”
“글쎄. 기쁘긴 하지만....”
엄마는 내 물음에 한참 목소리를 끌다가, 마저 답을 이었다.
“난 네가 덜 고생했으면 좋겠어.”
제때 출근하고, 제때 퇴근하고, 일 스트레스는 적고, 그러면서도 고용 안정성이 있고, 내 전공과 관련된 일까지 할 수 있는, 그런 직장에 들어가기를 바란다고, 엄마는 뒤이어 말했다. 나는 엄마가 너무 이상적인 바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별말 붙이지 않고 순순히 긍정했다. 그리고 부러 쾌활하게 굴었다.
“괜찮을 거야. E사가 바로 그런 회사일 수 있잖아?”
때마침, 주 52시간 근무제 전면 도입을 앞둔 시기였다. 제아무리 일 많기로 유명한 E사라 할지라도 전 회사가 지켜야 하는 노동법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내가 해당 법 도입까지 언급하니, 그제야 엄마는 안심하고 내게 축하한다는 말을 전하였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D사를 퇴사했다.
D사 퇴사로 깨달은 건 하나였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의 적절한 공존이 어렵다는 것. 그 사이에서 줄타기를 잘해야 한다는 교훈도 덤으로 얻었다.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아가면 당장은 행복하겠지만 현실에서 멀어지게 된다. 다 큰 성인으로서 마땅히 책임져야 할 부분까지 놓치고 마는 것이다. 반면, 해야 하는 일만 좇고 살아가면 내 행복은 사라진다. 일상이 피폐해지고 나의 이상이 사라져 간다.
그간 쓰리잡을 통해서 줄타기를 아슬아슬하게 유지했으나 1년이 다 가도록 완전한 균형점을 찾지를 못했고, 끝내 정규직 취업이란 선택지를 고르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지난 시간이 의미 없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도리어 가장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나날이었다. 이렇게 바쁘게 지내면서도 하루하루 즐겁게 보내본 적은 대학 졸업 이후에 없었던 것 같다.
게다가 나는 아직 완전히 줄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비록 D사 퇴사와 함께 프리랜서 생활도 청산했으나 글만큼은 내려놓지 않을 생각이다. E사에 들어가고 나서도 계속 쓸 것이다. 뿐만 아니라 B사 때처럼 무식하게 내 건강을 해쳐가며 일하지 않을 것이다. C사를 막 그만두었을 때처럼 하기 싫은 건 하지 않겠다고 말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런 다짐을 안고 E사에 출근했다. 이로써 다섯 번째 입사였다. 정규직으로서는 첫 번째 입사였다.
소기업 D사 계약직 후기
한 줄 평 : “굿바이 비정규직!”
-주변 식당 ** (회사 주위에 맛집이 너무 없었다.) -시설 ** (열약했던 내 생애 첫 자취방의 시설도 D사만큼은 아니었던 것 같다.)
-복지 **** (D사 대표님이 단기계약직 직원들에게 최대한 많은 복지를 주려고 해서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