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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진우 Aug 20. 2022

18. 불법 프로그램을 쓰는 회사

그런 반전 있는 회사 / 네 번째 회사 : 소기업 D사(1)

 새해가 밝았고 나의 쓰리잡 시대가 도래했다. 내 일과는 작년에 비해 좀 더 빠듯해졌다.


오전 7시부터 오전 9시까지 프리랜서 업무 보기 또는 글쓰기.

오전 9시부터 7시까지 D사 출퇴근 및 D사 업무보기

오후 7시부터 자정까지 프리랜서 업무 보기 또는 글쓰기.

(마감이 급할 경우에만) 새벽까지 프리랜서 업무 보기


대충 이런 일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D사에 있을 때를 뺀 나머지 시간에는 프리랜서 업무를 했고 글을 썼다. 세 가지 일을 동시에 하려니 죽을 맛이었다. B사와 C사에서 바쁘게 인턴을 하던 때가 생각났다. 그래도 그때보다는 지금이 훨씬 좋았다. 프리랜서 업무도, 글을 쓰는 것도 내가 자발적으로 한 일인 까닭이었다. 강제성이 빠지니 야간작업에 대한 분노와 억울함이 예전만큼은 아니었다. 신기한 변화였다.


게다가 다행스럽게 D사에서는 야근할 일이 없었다. 만약 하게 되더라도 1시간 정도만 더 일하면 됐다. 그건 내 기준 야근의 축에 속하지도 않았다. (광고대행사 B사의 기준으로는 ‘칼퇴’라고 보지 않을까?)


또한, D사는 직급 체계가 명확하지 않았다. 대표님, 본부장님과 같은 직급이 있긴 했으나 창립 구성원을 뺀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다 같은 직급이었다. D사의 전 직원은 고작 15명 남짓이었고, 그중 정규직은 10명이 채 되지 않았다. 그러니 대리, 차장, 부장, 팀장, 파트장 등으로 직급을 세세히 나누기는 어려울 것이다. 위아래가 없는 덕분에 편안하게 D사를 다닐 수 있었다.


 그렇지만 D사한테 단점이 아예 없다는 건 아니다.


 먼저 시설이 매우, 몹시, 심각하게 열악했다.

화장실 수도가 빈번히 얼었고 보일러가 자주 고장 났다. 나는 이렇게 춥고 건조한 사무실은 생전 처음 겪어보았다. 사무실 안에서도 롱패딩을 벗지 않고 일을 할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D사에 처음 출근한 그 다음 날부터 나는 바로 집에서 가습기 두 대와 핫팩, 목도리, 그리고 기모 후드를 챙겨왔다. 이대로면 얼어 죽거나 말라 죽거나하겠다는 우려와 무사히 살아남고 싶다는 생존 본능에 의해서였다.


 시설만이 안 좋지 않았다. 장비도 아주 끝내주게 열약했다.

컴퓨터는 무슨 내가 중·고등학생일 때 썼을 법한 구식 모델이었고, 더 나아가 포토샵이나 일러스트레이터와 같은 기본적인 디자인 프로그램이 깔려 있지도 않았다. 아, 깔려 있기는 했다. 불법 프로그램이지만.


그 사실을 알게 된 건 D사에 온 지 몇 주 지났을 때였다.


어느 날 갑자기 D사 직원, ‘김’이 내게 다가와 물어보았다. 사내 컴퓨터에 설치된 디자인 프로그램의 가격은 얼마 정도 되냐고. 그건 D사가 예전부터 쓰고 있던 이었다. 내가 구매자도 아닌데 왜 그걸 나한테 묻나 싶었다. 그래도 토 달지 않고 순순히 어도비 사이트에 들어가서 두 프로그램의 견적서를 보여줬다.


 “이 정도 가격대예요."


 김은 깜짝 놀라 했다.


 “왜 이렇게 비싸요?”


 비싸고 자시고 예전에 돈을 이미 지급했을 터인데 왜 새삼 놀라는 걸까? 그 의문을 그대로 바깥으로 끄집어냈다.


 “알고 계신 거 아니었어요?”

 “아니요.”

 “전에 구매하셨잖아요. 그때 결재하셨을 텐데 왜....”

 “글쎄요?


 어째 대화가 자꾸 맞물리지 않았다. 대체 뭔가 해서 D사 컴퓨터 앞에 앉아 전원을 켰다. 나는 출근 첫날을 제외하고는 계속 내 개인 노트북을 지참하여 작업하고 있었다. 구식 모델인 D사 컴퓨터보다는 비교적 최신에 산 내 노트북의 속도가 훨씬 빠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 불법 문제를 뒤늦게 눈치챘던 것 같다. D사 컴퓨터의 포토샵에서도, 일러스트레이터에서도 실행할 때 이런 문구가 떠올랐다.


 [크랙 파일이 손상되었습니다. 정품 인증을 해주세요]


 대체로 이런 문구는 불법적인 경로로 프로그램을 설치했을 경우 뜨는 것이었다. 뒷목이 은근하게 당겨왔다. 현기증을 느끼며 김에게 사정을 물어보았다. 그러자 우리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D사 정규직 직원 중 ‘최’가 대신 답해주었다.


 “맞아요. 정식으로 산 거 아니에요.”

 “네?”

 “전 디자이너분이 워낙 그런 쪽에 밝으신 분이더라고요. 혼자서 야무지게 뚝딱 설치하던데요.”


 오히려 최는 불법을 저지른 전 디자이너를 칭찬했다. 나는 조금 고민하다가 슬쩍 의견을 내보았다.


 “정식으로 사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자 이런 질문이 날라 왔다.


 “얼마인데요?”


 최에게도 김에게 보여줬던 프로그램 견적서를 보여주었다. 내용을 확인하자마자 최는 즉각 고개를 저었다. 너무 비싸다는 이유에서였다.


구매에 인색한 건 디자인 프로그램만이 아니었다. 폰트나 사진과 같은 기본적인 소스도 구매할 수 없게 했다. 그러니까 D사는 디자인 분야에 전혀 투자할 생각이 없는 회사였다.


그런 분위기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디자이너로서의 내 입지는 점점 좁아졌다. 그들은 나를 디자인 전문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이것저것 일을 시켜야 하는데 웬만하면 디자인도 하면 좋을 잡일꾼으로 보고 있었다.


 예를 들자면 이런 일들이 있었다.

첫째, 매주 청소했다. 최가 내 손에 밀대를 쥐여주며 아침에 사무실을 청소하라고 말했을 때 나는 내 두 눈과 두 귀를 의심했다. ‘응? 내가 왜?’ 절로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우선 시키는 대로 했다.


둘째, D사가 주최하는 행사가 열릴 때마다 스태프가 되었다. 카운터에 앉아 관객들을 상대했다. 표를 끊어주고, 자리에 안내하고, 분실물을 맡아주고, 사진을 찍어주었다. ‘이것도 내가 왜 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지만 우선 행사 기간동안 열심히 서비스직에 종사했다.


셋째, 잡스러운 일이란 일은 다 했다. 얼어붙은 수도를 녹이고, 짐을 옮기고, 소품을 포장하고, 페인트칠하는 등 내 직무와 하등 상관없는 일들을 했다. D사에서 그래픽 작업을 하는 시간보다 잡일을 하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아졌을 때 나는 생각이란 걸 더 하지 않기로 했다.


 겨울을 벗어나 봄이 된 무렵이었다. 통창 유리를 닦으라는 최의 지시에 따라 의자 위에 서서 걸레질을 하고 있었다. 걸레 수건이 더러워지고, 창에서 뽀득뽀득 소리가 날 때까지 열심히 닦다가 문득 이런 상상을 가져보았다.


 미대에 보내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준 엄마, 함께 디자인에 관해 논했던 내 대학 동기와 선후배님들, 졸업반일 때 계속 대학원에 오라고 꼬셨던 지도교수님... 그 모두의 앞에 내가 힘차게 선언하는 것이다.


 ‘오늘부로 저는 디자이너를 은퇴합니다.’


 비아냥이 섞인 상상은 아니었다. (좀 웃기긴 해서 웃음이 섞여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저 현 상황을 그대로 인지한 것뿐이었다. 실로 난 프로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D사에 온 것이 아니었다. 프리랜서 생활로 인해 불거진 엄마의 걱정과 나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서였다. 고정수입... 즉, 돈을 넉넉히 버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였다.


이왕 돈 벌 거, 내 경력에 도움도 되고 내 전공과도 연관된 분야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뭐, 현실이 그러지 못하는데 어쩌겠는가. D사에 들어온 당초의 목적을 달성한 것만으로 나는 만족하기로 했다. 잡일꾼이어도 상관없단 마인드를 가지니 사무실을 더 열심히 청소할 수 있었다.


의자에 내려와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창이 반짝반짝 예쁘게 빛이 났다. 뿌듯한 마음을 안으며 화장실로 가서 걸레를 빨았다. 사무실로 돌아오자 내가 청소한 결과물을 확인한 최가 잘했다고 칭찬했다. 나는 흐뭇하게 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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