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 전 연재] 5평 집에서 뭐 하고 지내?
곰팡이 스미는 방
집 떠나온 기러기들이
종이바르며 덮어온 집
곰팡이의 역사는 깊었고
먼지는 삶을 잠식했다
거주와 체류 사이
- 하견, 『灰 ; 숨』, 23(2015), 64p
하견은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니까 우리가 사는 곳은 체류에 가깝다. 혼자 살기로 한 어느 시점부터 방에서 방으로 이동한다. 이 방은 언제나 다음 방을 위해 잠시 머무르는 곳이다. 집주인, 은행, 정부의 정책 등 여러 의지와 무의지가 모여 나갈 시점을 못 박아두고 산다. 짧게는 1년, 일반적으로 2년을 살고 보따리 싸서 나와 다음 방으로 간다.
나는 꿋꿋하게 집이라고, 방이 아니라 사람이 사는 집이라고 얘기하지만, 집주인과 공인중개사를 제외한 바깥사람이 보면 영락없는 방이다. 하견의 방 사정도 비슷했는데, 다른 점이 있다면 8평 방 한 칸에서 하견은 6년을 살았단 것이다. 6년이면 잠시 머무르기로 했던, 체류지이자 임시거처였던 방이 엄연한 거주지가 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그 집에서 하견은 뭉, 율과 같이 살았다. 뭉, 율이는 어미 길고양이가 베란다에서 낳은 새끼 중 입양처를 찾지 못한 형제다. 뭉은 율보다 덩치가 크고 우다다 소리를 내며 과감하게 궁둥이를 들이미는 반면, 율은 자주 숨어있다가 집사 무릎에만 슬그머니 앉는다. 어미 고양이가 새끼를 낳은 베란다와 연결된 집에 사는 지인의 부탁으로 방문한 하견은 임시 보호차 두 마리를 데려왔다. 임시 보호가 이제 9년이 됐다.
하견이 6년을 살았던 집은 낡은 주택의 1층이다. 하견은 산 지 5년이 넘었을 무렵부터 건물에 있는 어떤 것들이 점점 아래로 내려와 바닥부터 퇴적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체취와 책과 곰팡이 같은 것들이 원룸을 점점 짓누르기 시작해 이제는 질식할 것 같다고.
“조소과 학생들은 삼 개월 동안 자기를 갈아 넣어서 작품을 만들어. 그리고 작품전이 끝나면 자기 손으로 부숴. 둘 공간이 없거든. 교수님는 모든 작품을 보관하거나 기록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데, 원룸에 애증의 덩어리를 보관할 수 있겠어? 공들이고 부수고 지치고 하는 걸 반복해. 부수면서 어떤 연습을 하는 것일 수도 있어”
집에 깔려 뭉개지겠다고 느낄 때쯤 뭉, 율이와 함께 하견은 4평 오피스텔로 급히 이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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