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 전 연재] 5평 집에서 뭐 하고 지내?
“장판 색깔 맘에 안 드는데 이걸로 덮는 거 어떻게 생각함?”
입주를 앞둔 친구가 인테리어 자문을 구한다. 나는 자취생의 여러 이미지 중 비루한 부분을 담당하는지라 인테리어에는 영 젬병이다. 전세 1억에 6평인 신축 원룸 입주를 앞두고 있는데, 장판이 도무지 마음에 안 든다고 ‘오늘의 집’ 제품 링크를 보냈다. 바닥에 퍼즐 맞추듯 까는 조립식 데크 타일이다. 첫 독립이자 스스로 처음 구한 집이다 보니 완벽한 방을 위한 차질 없는 계획을 세우는 모양이다. 나는 그저 음 오 아 예··· 로만 대답할 수밖에 없다.
원룸은 감성의 불모지였다(고 생각한다). 원룸살이는 갖추지 못한 채로 그냥 살아가는 이미지가 있다. 생김새도 그렇다. 신축 오피스텔이 아니고서야 원룸은 오래된 아파트에서 옷장이나 다용도로 쓰는 관리 안된 방 한 칸을 뚝 떼온 것 같다. 체리색 또는 거무튀튀한 몰딩과 나무무늬 장판, 노르스름하거나 무늬 있는 흰색 벽지(깨끗한 흰색처럼 보여도 가까이서 보면 꼭 무늬나 반짝이가 있다), 어울리지 않는 싱크대 색. 이런 집에서 늘 살았다.
예쁘지 않은 집에 그냥 살았다. 체리색 몰딩에 나무 블라인드가 있는 집에 초록색 포인트를 주고 싶어서 초록색 쓰레기통을 사고, 이불은 집에서 가져온 핑크색, 그릇은 노란색이다. 총체적으로 어울리지 않았지만 아무렴 상관없었다.
대체로 상관없었으나 아주 엉망인 건 또 아니었다. 작은 낭만과 로망을 기억한다. 벽에 예쁜 엽서와 시를 붙이고, 햇살 잘 드는 창가에 앉아 갓 구운 토스트를 먹으며 아침을 보내고 싶었다. 로망을 실현하기엔 처음 구한 3평 집이 너무 작았다. 인테리어란 자고로 공간에 대한 애정과 상상력이 필요한 일인데, 애정도 상상력도 3평에서는 그저 궁핍했다. 예쁜 가구를 사도,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는 싱크대 하부장 색을 바꿔도 이사 가면 그만이지 않은가.
원룸은 벽에 못 하나 박는 것도 부담인데, 언제부턴가 원룸에 어떤 규칙이 생기기 시작했다. 다른 말로 감성이라고 부른다. 감성 포차, 감성 카페, 감성 캠핑, 감성 타투, 감성돔. 대 감성시대에 걸맞게 ‘감성 원룸’이 스멀스멀 보이기 시작하더니 나 빼고 다들 감성 원룸에 살기 시작했다. 나는 원룸에 도래한 감성의 원인이 인테리어 플랫폼 ‘오늘의 집’에 있다고 생각한다. 원룸은 기껏해야 술 취한 친구나 애인 정도만 들락이는 지극히 사적인 공간이다. 오늘의 집은 사적인 자기만의 방에 조회수와 스크랩 수를 붙여 욕망을 자극했다. 벽에 못을 박지 않아도, 큰 공사를 하지 않아도 분위기를 살릴 수 있는 감성 소품이 이렇게 많은지도 처음 알게 됐다. 오늘의 집에서 사랑받는 K-원룸은 몇 가지 핵심적인 특징이 있다.
- 하얀 벽지와 튀지 않는 몰딩
- 따뜻한 컬러의 조명. 이케아 제품이면 가산점 추가
- 분위기 있는 러그
- 모노톤 기반의 통일된 컬러에 포인트가 되는 우드 가구
- 컬러와 디자인 짝이 맞는 식기
- 레이스 커튼, 또는 레이스 식탁보
이 정도만 지켜줘도 반은 성공한다. 옷과 수건이 널린 빨래건조대와 짝이 맞지 않는 그릇, 체리색 몰딩, 색이 짝짝이인 침구류는 보이지 않도록 치워두길 바란다.
최근 독립한 다른 친구도 인스타그램에 집 사진을 자주 올리는데, 흰색 테이블에 작은 조명을 두고 ‘우드 플레이트’에 아보카도를 담아 찍었다. 이번에 이사하는 친구도 비슷한 분위기의 집을 구상하는 모양이다.
오늘의 집이 혼자만의 공간에 대한 로망과 이상을 확 올려놓기 전, 그러니까 돈도 없고 감성도 없는 비루한 자취생이 되는대로 살아갈 때도 나름의 감성은 있었다. 모든 ‘굳이’를 뚫고 살아남은 로망이자 감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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