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클리셰
확대해석을 경계하다
맨처음 이 레토릭을 접했을 때부터 작위적이고 부자연스러운 레토릭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확대’, ‘해석’, ‘경계’ 모두 일상어로는 잘 사용하지 않는 말이다. 언론의 레토릭, 특히 방송 저널리즘 언어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뜻이다. 동사형을 명사형에 묻은 ‘확대해석’도 대번에 머릿속에서 의미가 파악되는 단어가 아닌데, 그걸 또‘경계’까지 한다니….
일부러 문장을 꼬아 시민들이 뉴스를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 심산이 아니고서야 굳이 저렇게 복잡한 레토릭을 쓸 이유가 없어 보였다. 동사가 마땅치 않으면 그냥 “확대해석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라고 하거나 긍정형으로 "~하라고 말했습니다.”라고 쓰면 될 문장이다. 그런데 해가 갈수록 이 어색한 표현이 줄기는커녕, 외래어종 베스와 블루길처럼 신문과 방송을 가리지 않고 광범위하게 번졌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빅카인즈에 따르면 ‘확대해석’이란 단어는 12,513건의 기사에서 검색되는데, 지난 2003년 400건이 넘어선 뒤 한 번도 그 이하로는 안 내려오고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다. ‘확대해석을 경계’로 검색해도 9,237건 기사가 나와 두 검색어 간 차이가 크지 않았다. 바늘 가는 데 실 가는 것처럼 ‘확대해석’과 ‘경계’라는 단어가 열에 일곱은 목적어와 서술어의 관계로 함께 쓰인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확대해석을 경계하다’야말로 하나의 ‘연판(鉛版)’, 한국 언론의 진정한 클리셰가 되었다. 정치분야에서 주로 쓰이던 이 클리셰는 경제, 법조, 사회, 국제, 스포츠, 연예 등 다양한 분야를 망라하고, 일간지, 방송, 전문지, 지방지, 인터넷 신문 등 매체도 가리지 않고 곳곳에서 쓰이고 있다.
실제로 이 클리셰가 쓰인 기사들을 검색해보면 90년대에는 주로 정치나 권력 기관을 다룬 기사에서 쓰이다가 점차 사회 전 분야로 확대돼가는 양상을 볼 수 있다.
김 대통령 “개혁대상이 개혁 외쳐”
청와대의 한 고위 관계자는 19일 “김 대통령이 추구하는 개혁의 걸림돌이 각 분야에 있다는 원칙론을 언급한 데 불과하다”고 확대해석을 경계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1994.10.20. 한겨레)
“총수불구속’ 사실상 철회” 정태수씨 전격구속 의미
검찰은 그러나 정 회장 구속과 배 전 회장에 대한 사전구속영장 청구가 모든 재벌 총수에 대한 사법처리의 기준으로 확대해석되는 것을 경계했다. (1995.11.30. 조선일보)
“공기업 민영화방식 변화 예고”
하지만 주무부처인 산업자원부는 이날 “애초부터 한중 전체를 해외에 매각한다는 방침을 세운 적이 없다”며 섣부른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1999.12.28. 한겨레)
의학계 “3차 감염도 병원 내 감염…지나친 확대해석 경계”
국내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확진 환자가 25명으로 늘고, 2명은 숨진 가운데 의학계는 3차 감염이 병원 내에서 일어난 것이며, 지역사회로 확산될 가능성은 아직 없다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2015.6.2. 뉴시스)
NYT “美, 확산세 심화로 다음 달 하루 사망자 3천 명”
특히 5대호 주변과 남부 캘리포니아, 남부와 북동부 일부 지역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증가할 것으로 CDC는 전망했습니다. 이에 대해 백악관 측은 '코로나19 태스크포스' 차원의 공식 자료가 아니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습니다. (2020.5.5. YTN)
정은경, 학교 코로나 위험도 낮다는 자신의 논문 “5~7월은 학령기 확진자도 많지 않았던 상황”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이 학교 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험도가 낮다는 자신의 논문에 대해 "(지난해) 5~7월은 지역사회 유행이 크지 않았기 때문에 학령기 확진자도 많지 않았던 상황"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하고 나섰다. (2021.1.26. 세계일보)
김동완 “에릭과 오해 풀어...신화 무대 지킬 것”
이어 "제 인생의 절반 이상을 신화로 보냈고 신화 멤버들은 그 시간을 함께한 친구이자 가족이다"라며 "그 긴 시간 동안 멤버 모두가 언제나 사이가 좋았던 것도 아니고 언제나 사이가 나빴던 것도 아니었다"고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2021.3.16. 아주경제)
“삼성과 LG가 협력한다고? 뭉쳐야 산다…재계가 주목하는 ‘삼엘동주’”
삼성전자 관계자는 LG디스플레이 임원진을 만난 것은 맞다”면서 “완제품 기업과 부품사 간 회동일 뿐이며 너무 확대해석은 경계해 달라”고 말했다. 정호영 LG디스플레이 대표 역시 “드릴 말씀이 없다”며 침묵으로 일관했다. (2021.4.27. 매일경제)
위 사례 중 어떤 기사에는 ‘확대해석’ 앞에 ‘너무’, ‘지나친’, ‘섣부른’이란 말까지 덧붙이는 아이러니를 보였다. ‘확대해석’이 별 뜻 없이 쓰는 클리셰다 보니 확대해석 자체에 ‘지나치다’는 뜻이 담겨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식어를 또 달게 된다. 지나치게 해석하는 것을 확대해석이라고 하는 것이니까, ‘지나친 확대해석’을 풀이하면 ‘지나치게 지나친 해석’이 된다. 아니 그러면 ‘적당한 확대해석’도 있다는 말인가. 모든 확대해석은 과도하고 섣부른 것이 아닌가.
때로는 ‘확대해석’이 사실은 확대해석이 아니라 진실에 가깝기에 이런 레토릭의 촌극이 빚어진다. 레토릭의 비중이 다른 다양한 상황과 기사에서 함부로 쓰다 보니 의미도 명료하지 않게 돼버려, 받아들이는 독자에 따라 행간의 의미를 저울질해야 한다. ‘확대해석을 경계했다’는 대부분의 경우, 아무개는 ‘부인했다’, 또는 ‘아니라고 말했다’, 또는 ‘~라고 밝혔다’라고 긍정문으로 처리해도 문제가 없어 보인다.
특히 5번째 예로 든 연합뉴스의 외신기사의 경우를 보자. 이 기사가 인용한 뉴욕타임즈는 자신들이 입수한 질병통제예방센터(CDC)를 비롯한 정부의 내부 자료에 따르면 미국 내 코로나 확산세가 계속 심화하면서 6월 1일쯤에는 하루 3,000명의 사망자가 발생할 것이라고 썼다. 백악관의 반응은 대통령 코로나바이러스 TF가 만들거나 보고받은 자료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연합뉴스는 백악관의 반응을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백악관 측은 '코로나19 태스크포스' 차원의 공식 자료가 아니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습니다.”
연합뉴스가 인용한 뉴욕타임즈 기사 원문을 찾아보았다.
"The White House distanced itself from the projections, saying the document, dated May 2, was not produced by or presented to the president’s coronavirus task force, which does its own modeling. “The data is not reflective of any of the modeling done by the task force or data that the task force has analyzed,” Judd Deere, Mr. Trump’s deputy press secretary, told reporters on Monday." (2020.5.4. New York Times)
백악관의 저드 디어(Judd Deere) 부대변인은 뉴욕타임즈가 입수했다는 데이터와 관련해 그저 백악관 TF의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고, 뉴욕타임즈는 그 주장을 전하는 서술어로 아주 작고 명료한 단어 “told”(말했다)를 선택했다. 굳이 ‘확대해석을 경계하다’와 비슷한 뉘앙스를 찾자면 첫 문장 “distanced itself from”(거리를 뒀다)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한국 기사에서는 백악관의 반응에 대해 “확대해석을 경계했다”고 쓰면서 확대해석(?)했다.
필자가 과문한 탓에 잘 몰랐는지, 과거 신문기사를 뒤져보니 ‘확대해석을 경계하다’라는 클리셰에는 꽤 오랜 역사가 있었다. 거의 60년 전인 1963년 9월 18일 자 ‘재야정당 비상조치강구’라는 제목의 마산일보 1면 기사이다.
국민의당은 18일 상오 대통령선거법의 후보자비방금지조항을 확대해석함으로써 가뜩이나 제약된 선거운동을 더욱 암흑화시켰다고 지적하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현명한 재고를 촉구하였다.
또 약 35년 전인 1986년 4월 8일 자 경향신문은 아예 사설 제목을 “解放神學(해방신학)의 확대해석을 警戒(경계)함”이라고 뽑았다
‘확대해석을 경계하다.’ 강산이 세 번 바뀌고 세대가 바뀌었는데도 털어내지 못하고 있는 고루한 레토릭이다. 대단히 훌륭한 표현이면 모를까, 일상적이거나 일반적인 표현이 아닌데도 아버지 기자가 쓰던 어려운 한자식 표현을 신조어가 난무하다시피 한 시대에 굳이 아들 기자까지 지겹도록 우려먹고 있는 것이다.
‘확대해석을 경계하다’라는 클리셰는 사실 항상 취재원의 말을 인용한 뒤에 기자의 해석을 덧붙이는 형태로 쓰기 때문에 안 써도 무방한, 아니 필자가 보기에는 쓰지 말아야 하는 레토릭이다. 이 클리셰는 기자가 독자들에게 취재원 말의 의도까지 친절하게 떠먹여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오히려 취재원의 말을 주관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의미를 왜곡시킬 여지가 크다. 이런 표현은 취재원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슬쩍 흘려놓고 여론의 추이를 보는데 도구로 악용될 여지도 크다. 부풀리거나 폭넓게 해석하도록 아궁이에 불을 지펴 놓고는 겉으로는 그런 말이 아니라고 부인하는 것이다.
또한 ‘확대해석을 경계하다’라는 클리셰는 어떤 사안에 대한 특정한 시각 자체를 ‘확대해석’이라고 규정짓고 들어간다. 이는 부지불식간에 편향된 시각을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이 클리셰를 쓴 거의 모든 기사에는 확대해석의 주체가 누구인지가 명확하게 나오지 않는다. 기자의 추측인지, 취재한 것인지, 오다가다 들은 말 수준인지, 세간의 풍문인지 명료하지 않다. 따라서 확대해석함으로써 이익이 가는 쪽의 시각을 그대로 담고 있거나, 이를 경계하는 쪽의 이해관계에 복무할 가능성도 다분해 보인다. 혹세무민, 침소봉대하기 쉬운 말이다.
이완수와 박재영은「방송뉴스의 언어와 표현」이라는 논문에서 방송뉴스의 정확성과 객관성을 해치는 지표 중의 하나로 ‘직접 인용구의 주관적 술어’를 들었다. “강조했다”, “열변을 토했다”, “넌지시 말했다”, “한숨 지었다”같은 표현은 극도로 자제해야 하는 감정개입적인 표현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최종 술어로 “했다”, “말했다”, “밝혔다”, “덧붙였다” 4개만 쓰는 것을 제안한다. 취재원의 발언이 어떻게 기사에서 마무리되는가에 따라 기사 내용은 물론 정보 가치가 달라지기 때문에 미국 등 선진국 언론들은 특별한 경우를 빼고는 거의 규범적으로‘said’(말했다)를 쓴다는 것이다.
‘확대해석을 경계하다’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이밖에도 언론이 사용하는 이런 종류의 클리셰로는 ‘선을 긋다’, ‘잘라 말하다’, ‘말을 아끼다’처럼 취재원의 입장에 우호적인 언어들이 있다. 우리는 부시가 얘기했던 ‘악의 축’(axis of evil) 같은 레토릭은 확실히 은유로 보지만, 이처럼 서술어에 ‘묻어있는’ 메타포는 은유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객관적인 서술어로 바라보기 쉽다. ‘아끼다’에는 절약의 메타포가 숨어 있다. ‘말을 아끼다’라는 레토릭을 보거나 들은 우리의 무의식은 이를 은유가 주고자 하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정확한 지적에 말문이 막힌 취재원이 대답을 회피하는 것을 완곡법으로 면죄부를 주는 레토릭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시청자나 독자들은 언론에서 이런 레토릭을 접하게 되면 과연 진짜로 선을 그은 건지, 잘라 말한 게 맞는지, 말을 아낀 건지, 그냥 안 한 건지 눈여겨 봐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