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
1991년은 한글과 우리말에 있어서 중요한 한 해였다. 어찌 보면 이율배반적이라고 할 수 있는 두 가지 굵직한 일이 동시에 일어났다. 한글날이 국경일 및 법정 공휴일에서 제외됐다. 그리고 국립국어연구원이 개원했다. 새로 설립된 국어연구원은 그해 의욕적으로 외부와 협업에 나선다. 그중 하나가 조선일보와 공동으로 “우리말을 바르고 아름답게”란 시리즈 기사를 기획해서 ‘조선일보-국어연구원 제정 표준어법안’을 마련한 것이다.
그중 누군가를 부를 때 쓰는 호칭어와 지칭어를 정리한 대목에 ‘어르신’이라는 낱말이 나온다. 이 기사에 따르면 ‘어르신’은 ‘아버지의 친구’를 가리키거나 ‘친구의 아버지’를 부를 때 쓴다. (특기할 점은 ‘어머니의 친구’나 ‘친구의 어머니’를 가리킬 때는 쓰지 않는다) 또는 처음 만난 사람이 나이가 아주 많으면 ‘어르신(네)’이라고 쓸 수 있다고 권고했다. (이 경우에는 남녀 구분이 없었다)
또 국어연구원은 그해 신세계백화점의 의뢰를 받아 매장에서 사용하는 판매용어와 기본호칭들을 어법에 맞는 우리말로 개선했다. 5월 1일부터는 신세계백화점 전점에서 ‘할아버지’ 대신 ‘어르신’으로 쓰기로 한 것이다. (역시 할머니 얘기는 없었다) 두 사례에 따르면 ‘어르신’이란 ‘아버지의 친구’, ‘친구의 아버지’이거나 처음 만난 노인, 또는 할아버지를 일컫는 말이다.
세월이 흘러 현재 국립국어원이 운영하는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어르신’의 정의가 이렇게 나와 있다.
1. 남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높여 이르는 말. =어르신네.
2. 아버지나 어머니와 벗이 되는 어른이나 그 이상 되는 어른을 높여 이르는 말.
‘어르신’. 요즘 노인을 지칭하며 행정기관과 언론에서 흔히 쓰이고 있는 레토릭이다. ‘어르신’은 아주 오래된 말이지만, 90년대까지만 해도 저널리즘 리토릭으로는 거의 쓰이지 않았다. 1883년~1960년까지 기사를 모아둔 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나 1920~1999년까지의 중앙 일간지 기사를 모아둔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에서 ‘어르신’을 검색해보면 달랑 2건이 나오거나(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 나오더라도 대부분 일간지 연재소설에 쓰인 경우였다.(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독자 투고 글이나 인용의 형태가 아니라면 언론이 기사에서 노인을 어르신이라고 명명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한편, 90년대까지 언론에 드물게 나왔던 ‘어르신’은 사전적 의미와 다른 독특한 지칭이었다.
지도자와 국민
“우리의 영도자는 누구이신가? 두말할 것도 없이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으로 오늘 취임 일주년을 맞이하신 우남 이승만 박사 그 어르신인 것이다.”(1949.7.27. 조선일보)
국군의 장래
“이 성전의 완수를 창도하신 어르신이 국부 이승만 박사이시니”(1955.1.14. 경향신문)
“집안서 나 하나면 충분” 노 대통령 결정적 쐐기
박 장관에 대한 어지간한 외부의 모함에도 끄떡 않던 청와대 측이 박 장관을 다시 보기 시작한 것은 최근 ‘떠오르는 태양’, ‘어르신’ 발언 파동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는 것. 지난달 11일 나창주 의원이 소브체크 레닌그라드시장 초청세미나에서 박 장관을 ‘떠오르는 태양’으로 부른 것이 언론에 보도되고 월계수회 내부에서 박 장관을 ‘어르신’으로 호칭한다는 얘기가 나돌자 노 대통령은 박 장관을 불러“그러면 지는 태양을 누구냐”며 심한 질책을 했다는 후문 (1991.4.7. 경향신문)
각각 50년대 전후와 90년대 언론 기사에서 ‘어르신’이란 말은 정관계에서 사실상 대통령, 또는 그에 준하는 권력자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 것을 알 수 있다. 오죽했으면 다음과 같은 비판이 언론 내부에서 나왔다.
“청산 없인 개혁 없다”
아직도 우리 관료사회, 특히 특권을 행사하고 특혜를 누리는 고급 관료사회에는 ‘어르신’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통하고 있다. 왕과 신하 사이의 윤리관이다. 왕명을 받들거나 왕의 깊으신 뜻을 헤아려 최선을 다하면 그만이다. (1991.2.22. 경향신문 정동 칼럼)
이처럼 노인을 가리키는 공식적인 행정용어나 언론용어로는 거의 안 쓰던 ‘어르신’이 갑자기 언론에 자주 등장하기 시작한 때는 1998년, 사회복지협의회가 유엔이 정한 ‘세계 노인의 해’를 일 년 앞두고 노인을 대신할 새 호칭을 현상 공모해 ‘어르신’을 당선작으로 뽑은 뒤부터다. 당시 사회복지협의회는 “노인은 단순히 늙은 사람을 뜻해 이들의 사회적 기여도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라면서 ‘어르신’이 노인의 경륜과 연륜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뜻을 내포하고 있어 훨씬 좋은 호칭”이라고 밝혔다. 빅카인즈에서 1997년까지는 두 자릿수(29건)에 그치던 ‘어르신’이란 단어를 사용한 기사 수는 1998년부터 세 자릿수(100건)로 뛰었고 이후부터는 매년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지금은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단어를 써야 할 기사 문장에서도 ‘노인’으로 써야 마땅해 보이는 자리까지 ‘어르신’이 차지하게 됐다. 호칭어와 지칭어가 다르고, 일상생활에서 쓰는 말과 언론에서 쓰는 말은 다른데도 말이다. 다음 기사를 보자.
7년간 실종자 44명 찾아낸 인명 구조견 2마리 동시 은퇴
제우스는 지난해 9월 경북 구미시 산속에서 실종 하루가 지난 88세 어르신을 수색 시작 2시간 만에 무사히 찾아내 주목을 받았다. 전날 집을 나섰다 들어오지 않았던 어르신은 발견 당시 탈진 상태였지만 큰 이상은 없었다. 제우스와 민국은 7년여 동안 500여 차례 출동해 44명을 찾아냈다. 구미 어르신처럼 무사히 구조한 경우도 있지만 때로는 숨진 채 발견하는 안타까운 일도 많았다. (2021.7.25. 한국일보)
단순 실종 사건을 기술한 기사이기 때문에 ‘노인’으로 쓰면 적절한 문맥에서 ‘어르신’이라는 극존칭을 쓰니 문장이 어색하다. 언론 기사는 존칭을 쓰지 않는다. 존칭에는 ‘가치’가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다. 대통령 기자회견 때 질문하는 기자는 “대통령님”이나 “대통령께서는”이라는 존칭을 붙이기도 하지만, 기사에서는 존칭을 쓰지 않는다. 대통령은 공인 중의 공인이고, 언론은 주권자인 시민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어르신’은 극존칭으로서 가치평가가 현저하게 포함된 레토릭이다. 만일 이 단어에 가치평가가 들어있지 않다면 ‘어르신 범죄’나 ‘어르신 강도’ 같은 표현을 써도 어색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어르신’이란 말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노인들의 사회 공헌과 경륜, 원숙함에 대해 마음에서 우러나온 존경의 마음을 담아 일상생활에서 ‘어르신’이라고 부르는 것은 좋은 일이다. 오히려 화자의 존경이나 예우가 깃든 말 ‘어르신’을 마땅히 쓸 곳에 제대로 써서 명실상부하게 대접했으면 좋겠다.
그러나 ‘노인’이라는 정확하고 객관적인 지칭어를 써야 할 언론 레토릭의 세계에서 ‘어르신’이라는 극존칭으로 분식(粉飾)한 완곡법은 과유불급이고 과잉 배려이다. 특히 아동, 청소년 등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약자 배려 차원에서 노인에게 사회가 마땅히 제공해야 할 복지를 다루는 기사에도 정서적이고 윤리적 차원의 레토릭인 ‘어르신’을 사용함으로써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노인이라 해서 ‘덮어놓고’ 어르신이라고 부르는 것은 오히려 현실과 직면하는 것을 회피하고 노인 계층을 소외시키고 차별하는 것이다. 젊은이라고 해서 다 젊은이다운 것은 아니듯이, 노인이라 하여 다 어르신 같은 것은 아니다.
국립국어원 언어정책과장을 지냈던 사회언어학자 김하수는 직업의 명칭이 운전수->운전사->기사로 바뀌고, 청소부->환경미화원으로 바뀌었지만, 그저 이름만 바뀐 것 같다면서 “의미의 변화가 없이 말 껍데기만 슬쩍 바꾸는 포장술로는 사회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것은 사회적 위선, 아니 자기기만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거리의 언어학』)
한글문화연대대표 이건범도 2014년부터 시행한 ‘기초연금’제도가 “그 성격을 정확하게 밝히려 든다면 ‘노인 연금’이라는 표현이 더 적당”한데 “정부가 ‘노인’이라는 말을 피하고 싶어서 뜻이 바로 닿지 않는” 기초연금이라는 말을 선택했다고 주장한다. (『언어는 인권이다』)
실제로 보건복지부의 기초연금 홈페이지에 가보면 기초연금이란 무엇인지 용어 설명부터 대문짝만하게 실려 있다. 그리고 그 설명은 애당초 ‘노인연금’이라고 명명했으면 설명할 필요도 없었을, 뻔한 내용이다.
그렇다면 ‘노인’을 ‘어르신’으로 명명하면서 실제로 노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달라졌을까? 달라졌다면 어떻게 달라졌을까? 트렌드21 코퍼스의 연도별 공기어 분석을 통해 알아보았다. 그 결과, 2003년에 ‘어르신’이라는 단어와 함께 많이 쓰인 공기어(共起語)는 노인 > 복지관 > 대회 > 봉사 > 사회 > 동네 순이었다면, 10년이 지난 2013년에는 연금 > 암 > 마을 > 노인 > 기초 > 봉사 > 건강 > 보험 > 복지 순이었다.
2003년과 달리 ‘어르신’이란 말이 본격적으로 널리 퍼지기 시작한 2013년 무렵에 가장 많이 쓰인 공기어들은 (기초)연금이나 암, 보험, 복지 등 결국 경제적인 이슈와 맞물려 있다. 명명한 쪽에서 애초에 의도했던 것처럼 노인에 대한 사회적인 시선이나 대접이 나아졌다기보다는 오히려 연금수혜자나 보험가입자 같은 특정한 대상으로서 바라보는 편향성이 나타난 것이다.
‘노인’ 또는 ‘늙은이’라는 말 자체도 원래 부정적인 어휘가 아니었다. 어린이, 젊은이와 마찬가지로 중립적인 단어일 뿐이다. 방정환 선생은 홀대받고 하대받는 아동을 위해 ‘젊은이’, ‘늙은이’와 대등한 의미에서 ‘어린이’란 용어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신문이고 방송이고 ‘어르신’이란 말을 함부로 써대니 언어의 인플레가 발생해 ‘노인’이란 말은 마치 폄하하는 말처럼 들린다.
아래 네 문장 기사에는 ‘어르신’이라는 단어가 5번이나 나온다. 그중 두 번은 구청 행정부서 명칭에 아예 ‘어르신’을 집어넣었기 때문에 불가피했다.
“나 같은 사람도 호캉스”…어르신 열대야 쉼터로 변신한 호텔
저녁 8시가 가까워지자 이날 호텔에 머무르기로 한 40여 명의 어르신이 대부분 입실을 완료했다. 호텔에 들어오는 어르신을 안내하고 안부를 묻느라 정신없던 구청 직원들도 그제야 한숨을 돌리기 시작했다. 안혜경 노원구청 어르신복지과 어르신친화도시팀장은 “희망하는 어르신들의 숫자가 수용 인원을 웃돌고 있다. 객실이 모자랄 것을 대비해 다른 호텔과도 쉼터 운영을 계약했다”며 “재이용률도 높아 코로나19가 종식돼도 호텔 쉼터 운영은 계속할 것 같다”고 말했다. (2021.7.22. 한겨레)
‘노인’과 ‘어르신’의 불편한 동거는 우리 사회가 노인을 바라보는 시선과 대하는 태도만큼이나 위선적이고 어정쩡하다. 기초자치단체의 노인 관련 조직과 정책, 사업 등의 명명하기를 들여다봤다. 먼저 서울 종로구청이다.
종로구청은 ‘어르신가족과’에서 ‘어르신복지’와 ‘어르신일자리’를 챙기는데, ‘종로노인종합복지관’을 통해 ‘노인돌봄 종합서비스’를 제공하고, 주요사업으로는 ‘어르신 식사배달’과 ‘노인 여가시설지원’을 펼치고 있다. 관내 ‘노인여가복지시설’로는 ‘노인교실’과 ‘실버대학’,‘시니어 아카데미’가 있다.
다음으로 ‘어르신친화도시’를 선언한 서울 노원구청이다. 노원구청은 위 기사에도 나오듯이 주무 부서인 ‘어르신복지과’ 아래에 ‘어르신친화도시팀’과 ‘어르신시설관리팀’,‘어르신생활지원팀’이 있다. 이들은 ‘노인교실’과 ‘노인복지기금’을 관리하는 한편 ‘어르신복지시설’의 사회복무요원도 관리한다. ‘실버스포츠센터’와 ‘실버축구단’을 운영하고 ‘노인주거시설’과 ‘경로당’도 관리한다. 또한‘기초연금’을 지급하고 관리한다. ‘저소득노인 무료급식’사업도 펼치는 데 급식대상은 ‘저소득어르신’이다. 일자리 관련 사업은 ‘어르신일자리 전담기관’인 ‘노원시니어클럽’이나‘노원어르신일자리지원센터’의 몫이다. “‘노인’들의 복지 증진을 위하여 지역 ‘어르신’을 대상으로 한” “노인교실”을 운영한다. 관내 ‘노인복지시설’로는 ‘시립노원노인종합복지관’과 ‘구립공릉어르신복지센터’가 있다.
‘노인’과 ‘어르신’, ‘실버’, ‘시니어’까지 뒤죽박죽이다. 무슨 기준으로 노인을 쓸 때와 어르신을 쓸 때를 구분하는지 알 수가 없다. 심지어 한 문장 안에서 ‘어르신’과 ‘노인’이 함께 쓰이는 웃지 못할 상황마저 나온다. (‘노인들의 복지증진을 위하여 지역 어르신을 대상으로 한’)
이것이 ‘어르신’이란 말의 현주소이다. 적어도 언론은 시민들에게 존경을 강요하지 말라. 정직한 언어, 존경을 강요하지 않는 언어에서 진정한 존경이 싹틀 수 있다. 그것이 ‘노인을 위한 나라’의 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