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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독 바다청년 Nov 29. 2023

이제야 조금 익숙해져..

새로운 발걸음의 시작


처음 외국에 살아보니 참 많은 게 달랐다. 여행은 많이 다녀봤지만 외국에 산다는 건 다른 차원이었다. 많이 찾아봤고 준비도 많이 했다고 생각은 했지만 역시나 부족한 부분이 한둘이 아니었다.


돌이켜보면 처음 이곳에 왔을 땐, 새로운 사람에게 너무나도 개방적이었다. 모든 사람과의 대화 하나하나가 내게는 꽤 특별한 경험이었다. 생김새만 다른 게 아니라, 생각도 참 달랐다. 대부분 나보다 어린데도 배울 점이 참 많았다. 새로운 걸 마구 흡수하는 게 좋으면서도 학부생이라는 신분이 썩 달갑지 않았다.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만 18세 친구들의 철없는 모습이 수업 시간에 나올 때마다 적잖게 화가 났다. 배우는 것도 많았지만, 내가 기대했던 수준은 아니었다고 느꼈다. 그렇게 욕심이 나서 다른 길을 찾아봤다. 그 길을 한 달 만에 알게 됐고, 그때부터 대학원 과정 지원을 다시 준비했다.


그러면서도 신나게 놀았다. 무엇보다 정말 좋은 친구들과 좋은 시간을 보냈다. 각지를 돌아다니며 그동안 꿈꿔왔던 유럽에서의 생활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내게 퇴짜를 줬던 학교로부터 합격 소식을 받았다.


생각해보기를. 물론, 처음에도 준비한다고 열심이었지만, 나 스스로 생각했을 때도 부족했던 점을 많이 느낀다. 만약 그대로 원하는 학교에 바로 덜컥 갔으면 방황까지는 아니더라도 꽤나 어려움을 겪었거나, 다양한 측면에서 사고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는 없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가고 싶은 곳을 선택할 수 있는 건 참으로 행복한 고민이었다. 이 고민이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았던 것이 진로 탐색이 길었고 이젠 시행착오를 하기엔 시간도 그렇고 경제적인 고려도 있었고, 더이상 새로운 진로탐색을 하고 싶지 않았다.




고민은 다음과 같았다.

무엇을 하고 싶고, 무얼 잘하고, 앞으로 우리 사회에 무엇이 필요할지.


돌아보니 많은 변화가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해군에 들어가서 다른 길을 하겠다고 그걸 그만두고 지구 반대편에 와서 다시 공부를 하고 있으니… 공부를 하다 보면 느낀다. 예전에도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하면 할수록 모르는 게 너무나도 많고 해도 해도 끝이 없다는 것을.


그런 면에서, 1년을 돌고 돌아 이제야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 오솔길은 내게 큰 자양분이 되었다고 확신한다. 그전에도 내가 모른다는 생각과 막연한 두려움은 있었지만, 무얼 모르는지 몰랐기에, 이제는 무얼 모르고, 어떤 걸 해야하는지 그 전보다 훨씬 명확하게 알고 있기에 그것만으로도 이 1년이 값지다는 생각을 한다.


결과론적으론 길고 길었지만, 이곳에서 대학원 공부를 하게 되었다. 제일 좋은 건 대학원 과정을 가게 되었다기보다도, 내 삶을 통틀어 처음으로 하고 싶은 뭔가를 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점이다. 때때로 시작하기 전에 하고 싶었던 일이, 막상 하고 나면 적성에 맞지 않는 경우도 더러 있다. 결과론적으로 그렇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서른을 앞두고 있는 지금 이 시점에서 또다른 인생의 변화를 갖기엔 위험부담이 큰 것이고, 진로 탐색은 그동안 충분히 하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하지만 우습게도 그 진로 탐색은 끝이 없다는 걸 깨닫는다. 다만 그 시선이 적어도 예전보다는 현명하고, 그 탓에 혼돈 속에 차 있던 최초의 나보다는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는 역량이 생겼다고 믿는다. 이런 게 익숙해지고 적응이라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바다.


이렇듯 돌아보면 내 삶은 10여 년 전보다 훨씬 발전했다고 느끼는데, 앞으로의 세상이 밝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기후변화 관련된 공부를 하면 할수록 느낀다. 마음이 무겁다.


개인은 개인의 삶을 살아가는 수밖에 없는데, 나는 조금이나마 스스로, 그리고 다음 세대에게 떳떳하고자 노력하고자 한다. 그런 노력이 우리 사회를 조금이나마 밝게 할 수 있다면 기쁠 따름이다.


고민은 끝났다. 이것이 내가 앞으로 걸어갈 발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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