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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독 바다청년 Nov 15. 2023

가끔은 기대고 싶은 곳이 있다.

천주교 미사


이 조그만 도시에도, 600년 넘는 유구한 역사의 성당이 있다. 성당 크기가 제법 웅장하다. ‘Albrecht Dürer’라고 뉘른베르크 출신의 유명한 화가가 있는데, 그 사람이 그린 스테인드글라스도 있다. 제대 위에 있는 황금 조각상은 예전에 뉘른베르크 성당에 있었는데, 이 성당이 개신교 교회로 바뀌면서 슈트라우빙 성당 공동체가 샀다고 한다. 제법 흥미로운 역사다.


평생 우리말로만 미사를 보다가, 영어도 아니고, 독일어로 미사를 보려고 하니 쉽지 않지만, 가톨릭 미사 전례는 어딜 가나 똑같은지라, 대충 알아들을 수는 있다. 뭐 10% 정도?


현지 독일인 친구가 알려준 덕에, 독일어로 된 미사 전례를 찾을 수 있었다. 신부님이 미사 집전 중 조금씩 기도문을 바꿔서 말하는 덕에 가끔 헤매기도 했지만, 얼추 따라갈 수 있었다. 이렇게 몇 달이 지나고, 또 1년이 지날 땔 즈음엔 기도문이 없어도 따라갈 수 있겠지 싶다.

이곳에선 역시나 성당 가는 게 Old-fashioned한 일이기에, 젊은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 물론 우리나라도 점점 그렇게 변해가고 있지만, 서양에선 이미 그런 과정을 수십 년간 걸쳐왔기에 그 경향이 뚜렷하다. 하지만, 성당 다니는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내가 간다고 절대 옆 사람에게 같이 가자고 하진 않는다. 이곳에서도 마찬가지. 높은 확률로 나만 계속 성당에 갈 듯하다. 독일인 친구는 이런 나를 보며 신기하게 여긴다. 그럴 법도 하다.


말씀 전례가 시작할 때 귀를 쫑긋 열고 들으니, 다니엘과 마르코였는데, 우리나라 매일미사를 보니 동일하다. 미사 전례가 한 국가에서만 같은 줄 알았는데, 로마 가톨릭 전체가 똑같은 전례로 미사를 본다는 걸 오늘 깨달았다. 놀라운 사실이다.


또, 신부님은 강론 중에 오늘이 전례력으로 마지막 날이라고 이야기한 것 같았는데, 살펴보니 다음 주가 마지막이다. 연중이 마지막이라고 한 것이었을까. 어찌 됐든 유일하게 이해한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잘못 이해한 걸 보니 아직 갈 길이 멀다.




어느날, 전날 과음 후 다소 잠이 덜 깬 채로 미사에 참석했다. 유난히 신부님의 강론 말씀이 길었다. 독일 생활 2년 차지만 지금까지 귀가 뚫리지 않은 관계로 하는 이야기의 8할 정도는 그냥 지나간다. 2할 내지는 3할 정도의 알아듣는 단어로 어떤 이야기를 하는가 보다 하고 유추할 뿐인데, 오늘 신부님은 길고 긴 강론의 마지막을 세 가지 단어로 요약했다. Glauben, Mutig, Geduldig. 첫 두 단어의 의미는 알고 있었다. 신앙과 용기. 세 번째 단어는 무엇일까. 까먹기 싫어서 혼자 두세 번 되뇌었다.


미사가 끝났다. 나는 핸드폰에서 Geduldig를 찾아봤다. 영어로 Patience, 즉 인내다. 많이 들어본 단어고 여러 번 오며 가며 봤을 텐데 게을러서 제대로 익힐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옆에 앉은 친구는 내게 곱씹으려고 한 게 아니라 몰라서 되뇌었냐며 핀잔을 주었다. 부끄럽지만 사실이라 반박하지 못했다. 이어서 ‘그럼 마지막에 신부님이 한 농담도 못 알아들었겠네?’라고 한 마디를 덧붙인다.


나로선 복음이 씨뿌리는 사람에 관한 것이었으니 나는 길고 긴 강론 끝에 믿음과 인내를 강조한 것으로 생각했는데, 미사가 끝날 때 신부는 길고 긴 강론을 들은 형제자매 여러분의 인내심이 훌륭하다고 좋은 주말을 보내라고 했다고 했단다. 많은 이가 대성당의 엄숙한 분위기 속 신부의 유머에 웃음을 지었는데 이를 나는 모른 셈이다. 이젠 독일어로 된 기도문도 같이 응답하고 예전보단 들리는 것도 많다고 하지만 갈 길이 멀고도 먼 셈이다.


종종 독일인들과 이야기할 때 정말 기본적인 이야기를 하는데도 못 알아먹을 때도 있다. 예를 들면 한국 사람이 외국인에게 밥을 먹었냐고 물을 때, ‘식사하셨어요?’ 혹은 ‘밥 드셨어요?’ 혹은 ‘밥 먹었냐?’ 뭐 이런 이야기를 할 때 똑같은 표현을 매번 쓰는 게 아니니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나도 비슷한 경우다. 책으로는 당연히 아는 표현인데 출신 지역에 따라 말투나 억양도 다르고 쓰는 표현도 다르다. 예전보다 눈치는 느는 것 같은데 그렇다고 전반적인 언어 능력의 향상은 거의 없다.


한 번 어떤 수업에서는 외국인이 독일에서 오래 살아도 ‘인터내셔널 버블’ 속에서만 산다고 하는데 안타깝게도 이렇게만 살아가면 나도 그 버블에 머무를 것만 같다. 공부가 더 급하다고, 실제로 그렇기도 하지만, 이를 극복하기 위해 큰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이곳에서 계속 정말 외국인 중의 외국인으로만 남지 않을까 싶다.


다시 씨뿌리는 사람 이야기로 돌아가자. 오늘 신부의 이야기처럼 용기와 믿음을 갖고 인내심을 가진다면 수십배, 백배의 수확도 이룰 수 있다는 걸 가슴 깊이 새긴다. 그 뿌리를 잘 내릴 수 있게 일희일비하지 않고 인내심을 갖고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가도록 다짐해본다. 그러면 나도 어느 날 귀가 뚫려 다음 유머를 이해할지도 모를 일이지.


아무쪼록 이 웅장한 성당에서 미사를 보고, 파이프 오르간 소리를 들으니, 마음의 정화가 되는 듯하다. 가끔이 아니라 자주 기대고 싶을 때 힘이 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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