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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독 바다청년 Nov 14. 2023

독일은 축구의 나라?

분데스리가의 일원이 되다


잔디구장이 보여서 그냥 무작정 찾아갔더니 이틀 뒤에 오라 해서 찾아갔다. 리얼 게르만족 밖에 없다. 금발에 키는 큰 것이 피지컬이 다 좋은 것 같으면서도 아닌 것 같기도 해보였는데, 직접 붙어보니 거칠다.


자기들끼리 이야기하는데, 끼어들지 않고 그냥 가만히 있었는데, 한두명이 Servus라며 인사를 건넨다. 이윽고 훈련하는데. 트레이너가 뜀박질을 꽤 시킨다. 끝나고 나니, 패스 연습을 특이한 방식으로 하는데, 다른 말은 모르겠고, Weiter Weiter, Bewegen und Pass 등만 들린다.

대충 계속 진행해라. 패스하면서 움직여라. 뭐 그런 내용이다. 빨리 안 움직이면 소리 지르고, 아무튼 빡세다.


5만 남짓의 조그만 소도시에 축구 클럽이 몇 개 있는데, 그 클럽 중 하나인 이곳에선, 어린 아이부터 청년까지 나이대별로 구분해서 훈련을 진행한다. 클럽 회원비는 직장인의 경우 6개월에 40유로, 학생의 경우엔 6개월에 20유로 남짓, 아주 저렴하다. 거기에 훈련해주는 사람들도 꽤 많으니, 이건 세금이 아니고선 운영될 수 없다는 생각과 함께 독일 사회체육이 얼마나 좋은지 실감하게 된다. 이런 환경에서 축구를 하니, 월드컵 트로피를 들었구나 싶다. 독일에서도 전설적인 축구선수 차범근이 왜 독일 갔다 와서 차범근 축구교실을 만들었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비단 축구뿐만 아니라, 운동할 수 있는 환경이 너무 좋다는 점. 생각해본다.


같이 공을 차기 전까진, 그들이 어떤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공을 몇 번 차고 나니 다가온다. 축구는 만국 공통어랄까. 이름을 물어봐서, 원선이라고 하니까 못 알아들으면서 갑자기 손이라고 한다.

 

그래. ‘손 해라’. 했더니 “흥민 손!” 하면서 자기들끼리 신났다.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좋아하면서 뭐라고 더 말하는데 알아들을 수 없어서 그냥 웃었다. 결국, 나는 그들 핸드폰에 Son이라고 저장됐다. 뭐. 손흥민이 얼마나 위대한 선수인지 실감하게 되는 순간이다. 그가 토트넘을 떠나 바이에른 뮌헨에라도 오게 되면 더 좋은 일이 아닐까.


매번 훈련 시작 전에 모여서 코치가 지난 경기 디브리핑, 앞으로 할 훈련 브리핑과 선수들과 문답하는데, 처음엔 1도 못 알아들었는데, 대충 이제 ‘잔소리 하는구나.’ 혹은 ‘칭찬하는구나’ 하고 겐또로 알아듣는다. 4주가 지났으니, 4달이 지날 때쯤은 좀 더 나아질 테다.




몇몇 클럽 내 독일인 친구들이 나를 배려해준다고 영어를 쓰는데, 이 때문에 벽이 생기는 것 같아 일부러 짧은 독일어라도 하려고 노력한다. 노력이 가상했는지 며칠 전엔 훈련을 마치고 집으로 가려는데, ‘헤이 손, 맥주 한잔할래?’ 해서, 오 끼어주나? 하고 알았다고 했다. 펍에 가는 줄 알았더니 바로 옆 클럽하우스로 간다. 클럽하우스에서 맥주를 먹는데 전형적인 바이에른 아저씨, 할아버지들이 앉아서 아이스하키 경기를 보며 맥주를 먹고 있다.


맥주 한잔하며, 요 몇 주간 승리가 없다며, 클럽 단장쯤 되는 사람이 주말에 경기 잘하자고 이야기한다. 주장은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하는 것 같은데 알아들을 수는 없다.


주장 옆자리에 앉아서 짧은 독일어를 하는데, 3주 만에 이 정도면 훌륭하다고 격려해준다. 본인은 학교 졸업하고, 바이에른에 살다 보니 영어 쓸 일이 없어서 다 까먹었다고 한다. 주장한테 여기서 얼마나 뛰었냐고 물으니, 5살 때부터 축구 했다고 한다. 90년생이니, 26년간 이 클럽에서 뛰었던 셈이다. 특출난 건 아니지만, 오래 있다 보니 주장까지 하는 올드맨이라고 소개한다. 처음 왔을 때부터 서글서글 웃어주는 게 사람이 좋아 보였는데, 훈련할 때 같은 조로 몇 번 뛰다 보니, ‘손, 잘했어.’하고 엄지척을 날려줬다. 성은이 망극하다.


나보고 어느 팀 좋아하냐고 해서, 원래는 아니었는데 여기 와서 뮌헨 팬 한다고 했더니 웃으며 ‘난 뮌헨 너무 정 없어서 안 좋아하고, 도르트문트 좋아해,’라고 한다. 그러면서 원래 어디 팬이냐고 해서 첼시라고 하니까, ‘첼시 작년에 UCL 우승하고 잘나가잖아. 거기 좋은 코치 있지, 토마스 투헬.’ 이라고 한다. 투헬이 알고 보니 바이에른 출신이더라. 무튼, ‘저 루마니안 우리 코치보다 좋아?’ 하고 했더니 ‘둘은 좀 결이 달라.’하고, 서로 웃었다. (2년 전이라 업데이트가 안 됐다. 현재 투헬은 바이에른 뮌헨 감독이다.)


얼마 전에 바이에른 숲 갔다 왔다고 하며 나 산 타는 거 좋아한다고 하니까 ‘그럼 너 암벽등반도 하니?’해서 그건 안 해봤다고, 쫄보라 무섭다고 했다. 그러더니 본인이 알려준다고 다음에 같이 가자고 한다. 좀 무섭지만, 그의 말에 의하면 안전하다고 한다. 그동안 갔던 산들을 보여주는데 많이도 다녔다. 독일 산쟁이다.


11시쯤 되니까 가려고 하길래 ‘손, 너도 갈래?’해서 얼른 바이에른 할저씨들을 뒤로 하고 빤쓰런했다. 그리고 어떻게 가냐고 하길래 자전거 있다고 하니까, ‘너 술 먹었으니까 내가 데려다줄게.’ 한다. 차는 BMW. 모델은 모르겠지만 좋다. 바이에른인들은 BMW 좋아해서 이 차 타냐고 하니, 그냥 할아버지가 추천해줘서 탄다고 한다. 차 태워줄 때, ‘우리 팀은 최고의 주장이 있어서 좋아.’라고, 다소 정치적인 멘트도 했다. 앞으로 이곳 생활이 조금 수월해지길 기대해본다.




독일에 온지 4주가 되는 날, 독일 축구 리그에 데뷔했다. 알고 보니 오늘이 길고 긴 Winter Break가 있기 전 마지막 경기라고. 차마 당일에 가지 않았으면 반 년 넘게 경기를 못 뛸 뻔했다.

코치는 10부리그에서 4번째 위치에 있다고 잘하고 있다고 하면서, 팀 전체적으로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격려한다. 마지막 경기를 승점 3점을 가져오자고 파이팅을 외친다. 루마니안 코치가 하는 말이 이젠 조금 들린다. 옆에 있는 독일인 친구에게 뭐라고 한 거냐고 물어서 더 많이 이해한다. 사실 어젠 10% 이상으로 알아들었다. 거진 3~40%.


Weiter Weiter는 물론이고,

Aufpassen, Raus, außen, Mittellinie, Kommt Posititionen,


템포조절 할 땐, Ruhig, 경기가 과열돼서 시비 붙을 때도 Ruhig라고 한다. 진정하라는 거다.


상대편이 공 잡았을 땐 못 돌아서게 하라며 nicht umdrehen 한다.


압박할 때 좋은 방향이면 Ja Son! Ja Ja. 계속 가라고 한다.


공 잡으면 반대로 전환하라고 Andere Seite라고 소리 지르고, 좋은 방향으로 패스 주면 Ja richtig, so. 뭐 이런다.


귀에서 피날 정도로 제일 많이 듣는 건 Bewegen und Spielen, nicht Ball tragen, 움직이고, 빨리 패스하고 공 끌지 말라는 거다.


사실 하는 말이 매번 비슷하고 이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사실 외국인이 독일어 하는 걸 알아듣는 것보다 독일인끼리 하는 독일어를 알아듣는 것이 훨씬 어렵다. 걔네라고 우리가 우리말하면 누가 알아듣겠나 싶다. 백날 강좌 등록해도 일상 속에서 쓰는 말은 다를테니.




날이 정말 좋았다. 몇 달 만에 축구하러 갔는데, 팀 동료들을 보니 반갑다. 인사를 좀 하고, 이내 스몰톡을 하는데, 역시나 내가 알아듣는 건 정말 한정되어 있고, 대화에 당최 끼기 쉽지 않다. 잘 대해주긴 하는데, 그들과 언어의 장벽이 있다는 걸 느낀다.


오랜만에 온갖 훈련을 한다. 미니게임도 하는데, 훈련임에도 빡세다. 경합 상황이 있었는데 태클이 깊숙이 들어왔다. 발등을 꽤 강하게 밟혔는데, 그 순간 느낌이 좋지 않았다. 상대방에게 ‘괜찮아.’라고 하고, 속으로 ‘미친놈이 훈련인데 태클을 이렇게 한다고?’ 하면서 온갖 욕을 다 했다. 뭐, 그러고서도 한 시간 가까이를 더 뛰었다. 학교 애들이랑 살살 하다가, 클럽에 와서 하니 압박의 강도도 너무 강하고, 빡세게 몸싸움을 해서 쉽지 않다.


이내 운동 마치고 집에 가서 공부하려 했더니, ‘손, 경기 끝나고 분데스리가 볼 건데 안 갈래?’라고 물어본다. 그래서 ‘분데스리가를 직접 보러 간다고, 지금?’하고 물으니, 저기 클럽하우스에서 본단다. 클럽하우스에 가니, 오크통에 담긴 공짜 맥주가 있다. 공짜 맥주와 공짜 파스타까지, 오늘 계 탔다 하고, 잘 먹고 마시며 축구를 본다.


중계방송은 한 경기만 틀어주는 게 아니라, 주요장면이 있을 때마다 이 경기 저 경기 왔다 갔다 하면서 보여주는데, 갑자기 화면이 바뀌더니 웬일로 바이에른 뮌헨이 승격팀을 상대로 몇  분사이로 세 골을 먹히고 4대 1로 지는 거다. 너무나도 흥미로워서 ‘이야 뮌헨도 지는구나?’ 하고 웃으면서 말하니, 마주 앉아 보고 있는 축구 코치가 정색하며 ‘헤이 손, 어디 그런 말을 하냐.’라길래 바로 급공손하게 사과하니, 다들 ‘괜찮아.’ 하며 웃는다. 난 ‘맨날 이기다가 어쩌다 한 번 지는 건데, 뭐.’라고 생각했는데, 본인들이 응원하는 팀이 지는 게 그렇게도 싫은가보다. 나로선 언더독이 챔피언을 시원하게 두들기는 모습을 보니 흥미로웠다.


또, 옆에 있는 친구한테 ‘여기 다 뮌헨 팬이냐’고 물으니까 ‘다 그렇지.’라길래 ‘주장은 도르트문트 팬이라는데?’ 하니까, 옆에 친구는 쾰른 팬이라고 한다.


또, 프라이부르크와 마인츠 경기가 잠깐 나왔는데, 어 ‘저기 한국 선수 두 명이나 있어.’라고 하니까 ‘정? 맞나 하면서 원래 뮌헨이었잖아 한다.’ 오 독일인이 정우영 선수도 알다니, 그리고 마인츠엔 누구냐고 물어서, ‘Lee, 한국인 절반 이상이 Lee, Kim, Park 셋 중에 하나야.’라고 했다. 무튼, 이렇게 한국선수가 독일 분데스리가에 선발 출전하고, 독일인이 그 이름을 아는 것까지 참 국뽕이 차올랐다.


집에 돌아오니 발이 퉁퉁 부어있다. ‘아 독일인 XXX.’ 누구였는지 생각도 안 난다. 오랜만에 얼굴 보니까 다 비슷하게 생긴 애들이 이름도 거기서 거기다. 침 맞고 싶은데 없어서 아쉽다. 이럴 때면 집 생각이 난다. 팀에서 머플러를 만들어서 줬다. 독일어는 못해도, 유니폼도 있고, 팀의 일원으로 대해주어 고마운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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