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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독 바다청년 Nov 07. 2023

매번 놀 수만은 없잖아?!

독일 대학 입학 후기


전역 이후, 아버지는 내게 그동안 모아 놓은 돈으로 1년 정도 외국에서 경험하며 무엇을 정말 하고 싶은지에 대해 고민하라고 독일행을 권유했다. 거기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으니 독일로 갔으면 좋겠다는 점과 그동안 고생했으니 그 정도의 휴식은 취해도 좋다는 게 핵심이었다.


내겐 그 조언이 너무나도 현실성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첫 번째로는 내 나이가 적지 않다는 점, 둘째는 내가 그럴 만한 돈이 충분치 않다는 점, 마지막으로 무엇보다도 내 성격이 그럴 정도로 담대하지 못했다는 점을 꼽고 싶다. 물론 코로나도 한몫했다. 어쨌든, 다른 나라에서 풀을 뜯더라도 어느 조직에 속해야 하지 않겠냐는 게 내 생각이었고, 외국인으로서 제일 선택하기 좋은 점은 역시 대학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건 잘한 선택이었다.


2021년 6월경.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했다. 이는 석사과정에 합격했단 통보를 받고, 갈 날만을 기다리다가 3주 만에 “너희 학교 학위 인정해줄 수 없다.”고 한 일이었다.


사건의 발단은 대략 이렇다.

독일 교육부에서 각국 대학의 등급을 매기는데, H+는 4년제 종합대학, H-는 전문대학, H+/-는 사이버대학 등. 안타깝게도 이유는 모르겠지만, 사관학교는 H+/- 등급이었다. 이 등급, 즉 대학 졸업장에 관한 판단은 각 대학 입학처의 소관인데 경험해보니 케바케.


어떤 대학은 종합대학으로 인정해줘서 석사 입학허가를 주고, 어떤 대학은 “너 전공 이수학점이 모자라.”라고 안 된다고, 어떤 곳은 “지원자가 많아서 너 안 뽑혔어.”라고 한다. 여기까진 당연한 일.


이 사건의 주인공인 대학은 내 모교 졸업장 자체를 인정 못 해준다는 데 문제가 있었다. 독일의 직업학교가 많으니, 그냥 단순히 군대라 생각해서 그런 결정을 내린 건지, 알 수 없다.


그런 이유로, 오기가 생겨서 사관학교 설치법부터 고등교육법까지 번역한 것에, 불쌍한 척하며 사정사정했지만, 안타깝게도 결정이 번복되지는 않았다. 당시 국방부, 교육부, 해군사관학교, 해군본부, 국방무관까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연락을 했지만, 나의 모교에서 말곤 누구도 도움을 주지는 않았다. 사실 생도 때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하진 않았으니, 자조적으로 ‘그래! 고졸로 쳐라.’하고, 개인으로선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학사과정을 지원해 뮌헨 근처로 오게 됐다.


그러고 독일에 도착한 지 2주쯤 지났을까. DAAD. 독일 내 제일 큰 규모의 학술 교류처에서 연락이 왔다. 국군간호사관학교 졸업생이 있는데, 나와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으니 가능하면 좀 연락해보라고.


악몽 같았던 그때의 일이 생각하니, 비슷한 처지란 생각에 경험했던 나의 상황을 소상히 설명해 드렸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주인공은 2년 선배님이시고, 간호사관학교는 아예 독일 교육부 대학 리스트에도 없어서 이를 등록하는 절차를 알아보고 있다고 하셨다.


그리고 웬걸 불과 1주일 만에. 모든 사관학교 등급이 4년제 종합대학에 국립대학으로 등급이 바뀌었다고 연락을 받았다. 선배님은 어떤 행정절차가 있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며칠 전 본인 학교만 4년제 종합대학으로 등록되어서 안타까워서 말을 못 하고 있었는데, 오늘 육해공군 사관학교 모두 4년제 종합대, 국립대로 바뀌었다고 알려주셨다. 나로선 개인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포기했는데, 우리나라도 아니고 느리고 악명높은 행정을 자랑하는 독일의 시스템을 바꿨으니 정말 대단한 일이다.


이젠 공식적으로 모든 학교에서 인정받는 국제대졸이 된 셈이다.


이렇게 되고, 프라이부르크 대학 거절 서류를 보니, 공식 항의 기간이 1달인지라, 이는 물 건너갔다.




이렇게 앞서 언급한 행정절차보다 사실 이게 더욱 힘든 부분이다. 입학 원서를 쓰고, 입학허가를 받고, 등록하는 절차까지 쉽지 않았다. 온갖 서류를 요구하는데, 지구 반대편의 나라 대학 나온 나를 증명하는 절차라고 생각하고 어려움이 있어도 이해했다. 원서를 열 군데 정도 써보니 감이 잡혔다. 학교와 전공에 따라 자소서를 바꾸는 것도 이젠 익숙하달까. 아쉬운 점이라면, 그땐 몰랐는데 똑같은 학교에 여러 전공을 지원해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는 점. 그랬다면 확률이 훨씬 높지 않았겠냐는 후회 가까운 푸념도 해본다. 사실 옆에 있는 석사생들이 다 그렇게 해서 이곳에 왔더라는 사실.


그나저나 다른 대학도 같은지는 모르겠지만, 엄청나게 많은 기회가 있다. 교환학생은 물론이고, 갖가지 연구 프로젝트, 학생활동 등. 그중 눈에 띄는 건 언어 강좌인데, 한국어도 있다. 또, 뮌헨 올림픽 경기장을 이용하는 것부터 해서, 매우 다양한 스포츠를 학기당 10유로로 이용가능하다. 아쉬운 점은 내가 살던 분교에서 뮌헨까지 꼬박 두 시간은 가야하고, 이곳엔 변변찮은 대학 체육시설이 없다는 점. 대신 자연에서 즐길 기회는 많다. 천연잔디에서 하는 축구, 도나우강에서의 카약 등등,

내가 사는 분교, Straubing. 뮌헨공대 내에서도 지속가능성이라는 주제를 다루는 캠퍼스다. 시골이어서 아쉬운 점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곳에서 진행되는 이 주제와 관련된 여러 활동, 세미나 등은 아주 흥미롭다. 돌이켜보면 총 교직원 포함 1000명도 안 되는 이 조그만 캠퍼스에서 교수님들까지도 끈끈한 커넥션을 지닐 수 있었던 건 참 좋은 경험이다.


그럼에도 독일에서도 부자 도시인 뮌헨. 이 아름다운 도시에서 살지 못한다는 게 다소 아쉽다. 독일을 처음 갔을 때만 해도 소도시가 좋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멋진 도시에 가니 생각이 바뀐다.

뮌헨공대 본교. 뮌헨 중심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몇몇 건물은 오래되긴 했지만, 전통과 역사가 느껴진다. 캠퍼스가 미로 같다. 팬데믹 때문에 1년 전에 입학한 선배님들도 학생 건물을 잘 모른다. 물어봐도 별로 도움이 안 된다.


신입생 환영회를 위해 편도 두 시간 기차를 타고 가서 고작 한 것이 굿즈를 받은 것이 전부. 일반적인 굿즈도 있지만, 피임기구도 있다. 문화 충격이다. 이곳에선 이게 일반적인가 보다 싶다.


이곳에서의 수업은 일부는 온라인, 대부분은 대면 수업을 한다. 빨리 졸업하고 싶은 마음에 수업을 꽤 많이 신청했고, 미리 당겨서 듣는 것도 있는데, 그랬더니 석사생들과 수업을 같이 듣는다. 속도보단 방향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마음속 깊이 새겨본다. 학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수업을 들으니,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점에 만족한다.


완벽하진 않아도 자질구레한 일들이 마무리되었으니 공부를 딱! 하고 시작할 수 있을 듯하다.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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