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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독 바다청년 Nov 01. 2023

석달만에 돌아갈 수는 없어!

우당탕탕 행정업무


독일에서 오자마자 해야 하는 급한 일들.

거주지등록. 은행계좌 개설, 보험가입, 핸드폰 개통. 거주허가(비자).


사실, 어느 하나 쉬운 게 없다. 독일로 떠나기 전부터 많은 후기를 보고 나름 준비를 했다곤 하지만, 계속 나오는 돌발 상황에 적잖게 당황했었다. 30년 가까운 삶을 한국에서 살았던 내게 유럽의 행정이 쉬울 리가 만무하다. 오랜 시간이 지나 돌이켜보니 이 시스템이 이해는 간다. 다만 절대 합리적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어쩌면 이게 독일의 큰 문제 중 하나인지도.


행정업무를 해결하기가 어려운 이유는 이 모든 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일단 먼저 집이 있어야 거주지등록을 하고, 계좌를 만들고, 보험 가입을 할 수 있는데, 말도 어눌한 외국인이 집을 며칠 만에 구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랴. 또, 휴대폰을 개통하려면 은행이랑 연결되어야 하고, 은행 계좌를 열려면 휴대폰 번호가 있어야 하는 등등. 하나의 뫼비우스의 띠다.


뭐 이런 이유로 도착하자마자 에어비앤비 숙소로 거주지등록을 했다.


거주지 등록(Anmeldung). 그야말로 전입신고다. 예약 당일, 독일 관공서가 악명이 높다고 하여 이런저런 걱정을 했다. 부랴부랴 시간에 맞춰 도착하니 직원이 서류가 미비하다며 양식에 맞춰 다시 작성하여 오라고 한다. 식은땀을 흘리며, 다시 창구 예약을 잡아야 하냐고 조심스럽게 물으니, 당일은 다시 예약하지 않고 그냥 오면 된다고 이야기한다.


서류를 작성해서 다시 가니, 거주허가증, 비자를 받는 절차까지 잘 알려준다. 독일어가 어눌하니 영어로 알려준다. 뭐랄까. 일단은 역시나 짧은 독일어라도 하는 게 좋은 인상을 준다. 본인들 문화에 적응하려고 하는 노력을 가상하게 보는 듯하다. 우리나라도 소도시에 가면 지역 상품권을 주듯, 이곳도 도시 내부에 있는 가게에 할인권 및 사은품도 준다. 어딜 가나 시골은 비슷하다.

그다음 은행 계좌를 개설하러 가본다. 이 또한 얼마나 성가신 일인지, 직접 방문하여 예약을 잡고 다음 주에 다시 찾아갔다. 한 시간을 꼬박 안 되는 독일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직원과 이야기한 끝에 계좌를 만들었다. 아무래도 보안이 취약하다는 온라인 뱅킹보다는 독일 내 유명한 은행을 주 계좌로 쓰는 게 좋다는 생각이었는데, 돌이켜보면 잘한 선택이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한국에선 창구 방문 한 번에 끝날 일이거늘, 계좌 아이디/비밀번호, 체크카드/카드 비밀번호, 인터넷 은행 개설을 위한 QR 코드 총 다섯 개의 편지가 몇 주에 걸쳐 따로 온다. 마치 드래곤볼을 모으듯... 와중에 하나는 2주를 기다렸는데도 오지 않아 직접 다시 가서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이것이 내가, 그리고 사람들이 이미지로 그리는 독일인가 의심스럽다.



다음은 보험.

우리나라에도 건강보험 제도가 있듯이 독일에 체류하는 모든 사람은 보험에 가입되어 있어야 한다. 사실 이 보험제도는 150여 년 전, 최초의 ‘통일 독일’의 지도자였던 비스마르크의 유산이다. 약자에 대한 배려가 이렇게도 좋은 나라인 독일, 이렇게 좋은 보험제도이지만 그 이면이 존재한다.


먼저 독일 내 보험에는 공보험과 사보험이 있는데, 공보험은 매월 나가는 돈이 많은 만큼, 병원에서 진료를 받더라도 거의 모든 부분을 추가로 지급하지 않는다면, 사보험은 매월 나가는 돈은 적지만 보험보장이 제한되어 있다. 유의할 점은 한번 사보험을 선택하면, 공보험으로 다시 바꾸는 게 굉장히 어려우므로 결과론적으로 대부분 공보험을 선택하라고 조언한다. 근데 이 공보험료가 한 달에 15만 원 꼴로 나가니 가난한 학생에게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리고 이 보험료가 나이 및 소득에 따라서는 이 돈의 적어도 두 배 내지는 네 배 가까운 돈을 내야 하기도 한다. 뭐가 됐든, 본인은 독일에서 병원 한 번 제대로 가본 적도 없지만, 공보험에 가입해 돈을 꼬박꼬박 내고 있다.


보험 가입 절차는 비교적 쉽다. 학교 입학 당시, 이를 설명해주는 시간이 꼭 배정되어 있고, 그 담당자에게 메일만 보내면 비교적 이른 시간에 해결해준다. 이도 마찬가지로 주소가 있어야 하고, 그 주소에 편지가 와서 인증하는 절차를 거치긴 하지만.



거주허가증.

거주 등록과 어떤 점이 다르냐고? 거주 등록은 그야말로 전입신고고, 거주 허가는 불법체류자가 안 되려면 해야 하는 절차다. 서류가 까다로운 게 제법 있다. 예컨대 출생증명서. 한국에 살면서 단 한번도 본 적 없는 서류가 이곳에서는 필요하다. 메일로 문의하고 답변을 받아도 명확하지 않아서 결국 서류 번역을 위해 담당 영사관인 프랑크푸르트에 한번 가야만 했다. 바이에른 지방으로 순회영사가 계획되어 있었는데, 전날 새벽 고주망태가 되어 기차를 놓쳐버렸다. 결과론적으로는 가지 않아도 해결할 수 있었다. 결국은 이 모든 건 직접 겪지 않고, 인터넷 후기로만 준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워낙 도시마다 상황이 케바케인지라.. 직접 부딪치고 깨지는 시행착오가 필요하다.


그로부터 한 두달여쯤, 독일 관청으로부터 거주 허가가 나왔다. 그전까지만 해도 독일 밖을 나갈 수 없는 몸이었는데, 이젠 합법적으로 출입국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리고 독일 입국한 지 4달 후, 운전면허가 나옴으로써 거의 모든 행정업무가 끝났다. 한국 운전면허에 영사관으로부터 번역 공증한 서류를 제출하고, 독일 것으로 교환했는데, 대부분의 우리나라 사람들은 한국으로 돌아가서 운전면허 분실했다고 다시 발급받는다고 한다. 고백하자면, 나도 그랬다.


4달이 지난 시기에도, 이곳의 신호체계나, 중앙선도 흰색이라 적응이 안 되는 건 물론이고, 고속도로에 가로등 하나 없고, 길도 잘 모르는 데다가 21세기가 훌쩍 지난 지금에도 스틱 차가 대부분인 것도 기가 막힐 노릇이다. 무엇보다 돈이 없어서 운전할 일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4달 전, 처음 도착했을 땐, 여러 행정업무에, 집 알아본다고 영어 안 쓰고 독일어만 써서 좀 늘었나 싶었더니, 마트랑 음식점 갈 때를 제외하곤 독일어를 쓸 일이 거의 없으니, 오히려 퇴화했다. 오랜만에 관청에 가서 뭔 소리인지 못 알아먹고, 바보가 되었다. 이렇게 생활하다가는 몇 년을 살아도 까막눈의 수준에서 못 벗어나지, 싶다.

아무튼.

무비자 체류 기간인 석달 만에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이곳에 살기 위한 행정업무는 이 정도로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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