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독 바다청년 Nov 08. 2023

혼자는 너무 외로워!

외국인들과 친해지기


정말 소수를 제외하고는 독일인은 고향을 떠나, 외국인은 타국에서 공부를 시작하게 됐으니 주변에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런 이유로 누군가와 친해지기 위해 처음부터 대단히 많은 노력과 액션을 취할 필요 없이 그저 학교에서 기획된 신입생 환영회라든지, 별도의 그룹 채팅방이 있으면 그곳에 들어가면 모든 게 시작된다. 신입생 환영회를 빠져 처음엔 누가 누군지 모를 수도 있고, 누군가와 친해지고 싶은데 못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런 염려는 할 필요가 없다. 가만히 있어도 대학 자체적으로든, 학생회에서라도 최소 한 두 달은 신입생을 위한 친목도모의 시간을 마련해준다.


이런 사정을 전혀 알 도리가 없었던 나의 경우엔, 어떻게든 사람들과 더 만나려고 친해지려고 노력했다. 어쩌면 그게 그들과 더 친해질 수 있었던 계기인지도 모른다.


몇몇 일화를 간략하게 소개해본다.


1. 신입생 환영회


보통은 학기 시작 전주에 진행된다. 뮌헨공대였지만, 뮌헨에 있지 않고 두 시간 거리에 떨어져 사는 나였기에 뮌헨공대 본교에서 이뤄지는 신입생 환영회에 기차를 타고 두 시간은 꼬박 가야 했다. 운이 좋게 같이 갈 친구들을 만나게 됐다.


처음에 사귄 친구는 이탈리아 커플. 만으로 스물셋 동갑이다. 고교 동창으로 그때부터 사귀어 5년 이상이다. 커플인데 따로 사는 것에 의문을 가졌는데, 들어보니 수업도 같이 듣는데 같이 살기까지 하면 과한 것 같아서 합의하고, 따로 산다고 한다.


피자 이야기가 나오니 아주 신났다. 이곳에서 유명한 피자집이 있는데, 본인들이 가면 특별 서비스를 해준다고 자랑한다. 여자는 집주인의 카페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는데, 이탈리아인이기에 커피 잘 만들 거로 생각해서 고용했단다.


커플 모두 독일어랑 거리는 멀다. 오늘은 Hallo. Servus, Danke, Mit Karte와 같은 단어로 마트에서 주문했다고 자랑한다. 스페인어를 유창하게 하는데, 이탈리아어와 스페인어가 정말 가까운 언어라는 걸 새삼 느낀다. 유럽인으로 태어났으면 기본 3개 국어는 할 수 있겠구나 싶다.


다음은 독일인. 영국에서 학사 졸업하고 바로 왔으니 만으로 스물두살이다. 얼굴이 좀 삭은 듯 하고, 머리숱이 없어서 조금 더 나이가 있을 줄 알았는데, 역시 서양인 나이를 가늠하는 건 쉽지 않다.


집이 좀 산다. 학비가 비싸기로 유명한 영국에서 공부를 한 것도 그렇고, 차가 있고, 소도시에선 거의 제일 비싼 원룸에 살기에. 배경을 들어보니, 아버지가 유명한 담배 Lucky Strike를 파는 회사의 높으신 분이란다. 담배 피는 친구들을 보며, 저 친구들이 팔아주는 담배 덕에 내가 영국에서 공부를 하고, 차를 끈다고 우스갯소리를 한다.아버지 직장 때문에 해외 생활을 오래 했는데, 남아공, 우크라이나 키예프, 영국까지. 굉장히 글로벌하다.


집 이야기가 나와 계약서를 작성해야 한다고 말하니, 놀랍게도 본인이 사는 같은 아파트라고 도와주었다. 재밌는 점은, 세입자와 집주인이 독일어로 Mieter. Vermieter인데 그가 이걸 거꾸로 인지하고 있다는 사실. 그 이후로, 다른 독일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이 친구는 이 두 개를 구분 못한다고, 독일인이 아니고 영국인이라고 매우 놀렸다.



2. 여러 술자리 중 하루


같이 술 먹을 때마다 독일인 친구는 피곤해하며, 집에 가고 싶은 티를 팍팍 낸다. 오후 열시쯤 되자 눈치를 보기 시작하더니, 내일 아침에 수업 있다고 갈 거라고 한다. 그래서 “너 어리잖아. 내가 너 나이 땐 말야, 새벽까지 마시고 다음 날에 쪽잠 자고 출근했어.”라며 라떼를 시전했다. 그러더니 옆에 있던 친구들이 포복절도하며, 한국인들 장난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한국인의 매운 맛을 보여주고 있나? 여기서 꼰대 노릇을 하고 있구나 싶다.


누구는 ‘일본인 친구를 좀 아는데, 일본인들은 술 잘 못 먹던데~’ 하니, ‘같은 아시아라고 같이 생각하면 안 돼. 우린 새벽까지 술 먹고 다음 날 바로 출근하는 게 일상’이라고 말해줬다. 그러면서 술은 멘탈, 정신력이라고 덧붙였다. 정말 술 잘 먹는 한국인이 왔다면 볼 만 했을 테다.

새벽 두 시가 돼서 Irish Pub이 문을 닫자 남은 최후의 6인이 본인 집 가서 한 잔 더 하자고 한다. 이제 피곤해서 가려고 하니까, ‘헤이. 네가 술은 멘탈이라고 했잖아.’라고 꾀어낸다. 4시쯤 되니까 4시간 후에 있는 아침 수업 생각에, 가야겠다고 하니, 또 멘탈 이야기를 한다. 후회할 소리를 했다. 자승자박이다.


독일인들은 아무래도 자기들끼리 뭉쳐있으면 독일 말로 한다. 그러면서 옆에서 내가 듣고 있으면, 독일어로 말해서 미안하단다. 난 독일어 수업 듣는 것처럼 좋다고 하며, 10퍼센트 정도 이해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음식 주문하는 걸 보며 ‘너 독일어 잘한다.’ 한다. ‘난 이거 밖에 못해~’ 하고, 옆에 있는 독일어 까막눈 이탈리안 커플에게 ‘봐, 내가 너희보단 좀 낫지?’ 하며 놀려준다. 그때부터 독일인 친구는 독일어를 쓸 때마다 ‘헤이 원선, 10퍼센트 정도 이해했어?’라고 하면, 지금은 20프로쯤 된다며 그들이 말하는 단어를 따라한다.


바이에른 지방의 시골이다 보니, 특히 억양, 사투리도 좀 있다. 다른 독일 지방에 살다 온 사람이 이곳에 처음 오면 하나도 못 알아먹는다고, 독일어가 아니라 바이에른어를 배우는 것과 똑같은 거라고 이야기한다.


3. 독일식 홈파티


등산갈 때 처음 봤던 친구 두 명이 사는 쉐어하우스에서 술판이 벌어졌다. 뭐 그래봐야 보통 맥주를 먹으니 훅 가지는 않는다. 가자마자 독일식 술게임을 하는데, 독일인들이 규칙을 마음대로 만드는 듯하여, ‘지금 상대편이 코리안이랑 이탈리안이라고 너희 마음대로 정하는 거 아냐?’ 항의하니, 영국에서 학교 졸업한 독일인이 ‘헤이, 이거 영국에서도 이렇게 해. 인터네셔널 룰이야.’ 한다.

거의 이십 명쯤 됐던 것 같다. 준비된 술이 떨어지고, 다들 알딸딸해지자 노래 틀어놓고 고성방가하며 춤춘다. 서양식 음주가무다. 한국 사람만 떼창하는 게 아니구나 싶다. 옆집에서 안 찾아온 게 신기할 정도다.


저 나이 땐 다 저러고 놀았지, 싶다. 한국에선 이미 몇 년 전에 꼬리표를 뗀 술게임과 음주가무를 여기서 다시 하게 될 줄이야. 체력이 20대 초반 같지는 않고, 마음도 예전 같지는 않지만 매번 모임에 불러주고 끼워주는 친구들이 고맙다.


더 오랜 기간 머문다고 완전히 그들과 동화되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나름의 방식대로 그들을 더 폭넓게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이전 03화 매번 놀 수만은 없잖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