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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다니엘 Aug 12. 2024

독일 내륙에서의 피서

정말 더운 날이다.


날씨도 날씨지만, 계속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삶에 열정은 점점 식고, 나는 알고 있었다. 지쳤다는 사실을. 정말 지겹다는 생각이 자꾸 맴도는 와중에 최악의 경우엔 하루 죙일 투자를 한 결과물이 진전이 없을 때도 있었는데, 사실 그보단 그렇게 붙잡고 있다 보면 무언가 진전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또 어떤 날은 꽤 생산적인 방향으로 생각지도 못한 발전을 이루기도 했다. 그리하여 내가 논문을 시작하며 최초에 계획했던 모든 것 중 단 한 가지만 남겨놓았다. 이건 처음부터 교수가 제안했던 수학적 방식이었는데, 며칠 전까진 안 하고 그냥 마무리 지으려는 안일한 생각에서, 까짓거 도전해보자는 생각으로 마음을 바꿔 잡았다.      


지난 월요일부터 생각보다 꽤 많은 진전을 이뤘는데, 이틀 사이, 생각보다 결과물이 나오지 않아 우울해진다. 이것만 마무리되면 이제 일주일 정돈 바람 쐬러 갔다가 글쓰기를 시작하려 했건만, 마지막 순간에 이뤄지지 않았다. 화가 났다.      


그렇게 식빵을 굽다가 마침내, 목요일. 하루가 끝나기 한두 시간 전쯤, 나의 멘토 박사생과 수학을 씨름하고 토론 끝에 합리적인 결과물을 얻어냈다. 그에게 ‘난 조금 지쳐서 일주일 정도만 바람 쐬고 와도 될까?’ 하니 얼마든지 그러라고 한다. 불쌍하다고 생각했을까.      


이제 두 달 남았는데, 도출한 결과물로 글을 쓰면 이 석사 과정은 모두 마무리된다. 이제 뭐하지? 완전히 정해진 선택지는 없지만, 휴가 때 몇몇 선택지들을 정리하고 찾아보기로 하자.      


이렇게 나름 휴가로 생각하고, 이제 당장 어딘가 떠나기로 했다. 막상 급하게 가려다 보니, 멀리 가는 건 마땅치 않고, 집앞 검은숲으로 다시금 떠났다.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였는데, 대중교통 차편을 아쉽게 계속 놓치는 바람에 계획으로부터 많이 지연됐다. 최초에 계획했던 폭포 투어에서 호반 산행으로 일정을 변경했다.      



Schluchsee.      

1년 반 겨울에 잠깐 방문했던 게 전부였던 곳이다. 이 검은숲에서 제일 유명한 호수라면, 티티제 (Titisee)인데, 내 주변의 독일인들은 관광지화된 티티제보다 이곳, Schluchsee가 훨씬 낫다고 평가하곤 했는데, 난 그 평가에 그다지 공감하지 못했다. 겨울에 방문했던 이곳은 황량하고 죽은 마을처럼만 보였거늘, 이번에 방문한 이곳은 그동안 갔던 여행지 중 손에 꼽을 정도로 참으로 아름다운 휴양지였다. 극적으로 바뀐 나의 평가의 지분은 역시 전적으로 방문 시기를 꼽을 수밖에 없다. 눈이라도 왔으면 나았으려나. 그러고 보니, 이곳엔 군데군데 스키 슬로프도 있는데, 지난 2년 사이 겨울엔 스키장을 운영할 만큼 제대로 된 눈과 낮은 온도였던  적이 없다. 이것도 기후변화의 여파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한편, 호수를 낀 짧은 산행에도 지치는 건 나의 떨어진 체력 때문일까 아님 날씨 때문일까. 두 시간 남짓의 산행에도 탈탈 털려버린 체력에 내려와서 역시나 맥주를 마신다. 원래는 이걸 바이에른 알프스에서 하고 싶었지만, 이곳도 나름대로 좋다. 물론 알프스의 풍경 대신 검은숲의 호수에 바이에른 맥주 대신 이곳의 맥주이긴 하지만.      

돌아오는 길, 해발 900미터의 이 깨끗한 물에 몸을 적시고 싶었지만 수영 가능 지역을 지나버리는 바람에 기회를 놓쳤다. 아쉬운 대로 발만이라도 적시는데 물이 얼음장 같다. 한여름에도 차가운 물이다. 꼭 저 멀리 바다까지 가지 않아도 이게 독일 내륙에서 즐길 수 있는 피서가 아니겠는가.      

다만 더운 날씨에 돌아오는 대중교통 편에서부터 더위를 먹었다. 최고기온 30도를 훌쩍 넘는 날씨에 작렬하는 직사광선을 맞으면 어쩔 수 없는 듯하다. 이번 여름, 유난히 더운 날이 없었는데, 요 며칠 사이가 최대 고비가 될 듯하다. 물론, 연이은 폭염이 이어지는 한국에 비하면 아침저녁으로 선선하니, 고비라고 보기에도 어렵겠으나.      


이런 이유로, 오늘은 아침 일찍 선풍기를 사러 갔다. 워낙 에어컨을 필요로 안 하는 이곳 독일 사람들에게 한국에서 쓰는 것과 같은 대형의 에어컨은 아주 낯선 장비일 듯하다. 사실 더운 날도 한국에 비하면 훨씬 적고, 습기도 적다 보니 더운 날에 그늘에만 있어도 훨씬 나은 것도 사실이고, 이 습기가 적단 건 일교차가 더 유동적으로 변할 수 있단 걸 의미한다. 즉, 아침저녁으로 날이 선선한 셈이다. 하루 중 제일 더운 시간이 세시부터 다섯 시쯤이라고 했을 때, 35도까지 올라가는 일이 있더라도, 최저 기온은 20도 안팎으로 머무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니 단열이 잘 되어 있는 건물이라고 한다면, 아침저녁으로 환기를 잘하고, 이 햇살이 강한 시간에만 블라인드를 내린다면, 에어컨 없이도 실내온도를 25도 내외로 유지할 수 있다. 한국 기준으로 ‘뭐 25도? 더워, 에어컨 틀어야지.’라고 할 수도 있는데, 습기도 적으니 견딜 만하다.      


여기서 나는 우리가 이 냉방 개념에 대해 효율적으로 접근하지 못하고 있는 건 사실을 꼬집고 싶다. 전기세뿐만 아니라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는 접근 방법에 대해 생각해볼 법한 일이다.      


여기에 덧붙여 이곳의 몇몇 공공건물은 지열 냉난방 시스템을 이용한다. 땅 아래의 온도는 연중 온도 변화가 대기온도보다 훨씬 적으니, 상대적으로 차가운 지하의 온도를 이용해 냉방하고, 겨울엔 상대적으로 따뜻한 온도로 난방을 하는 셈이다. 이외에도 건물 자체의 질량을 이용한 냉난방 시스템 등도 있다. 우리나라에도 분명 있는 개념이다.


그나저나 이 선풍기 하나만으로도 참 행복하다.      

이것도 어디까지나 올해 이야기인데, 기후변화로 독일 날씨가 앞으로 이탈리아와 같이 변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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