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9년 간의 해군생활을 마치고 독일을 온 지가 이제 3년이다. 인생에서 아주 긴 시간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3년 전엔 불투명했던 모든 것이 이젠 뚜렷해졌다.
먼저 독일 생활 첫해를 요약하자면, 해군사관학교에서의 학사 졸업장이 독일 교육부에서 4년간의 정규 교육과정으로 인정되지 않았던 이유로, 뮌헨공과대학교에서 학사과정을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련의 과정이 해결되어 1년 후, 석사 과정에 진학하게 됐다. 여러 선택지 중 독일 남서부 프라이부르크로 오게 됐다.
프라이부르크.
검은숲의 수도이자 독일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환경 도시로 명성이 높은 곳이다.
인구는 23만, 한국으로 치면 중소도시겠지만, 독일 내에선 제법 규모도 있는 편이다. 적어도 한 시간 거리 내에 있는 도시 중에선 제일 커서 검은숲에 사는 이들 중 나름 커리어를 쌓고자 하는 욕심이 있는 자들이 모이는 곳. 마치 우리로 따지면 중소도시에 사는 이들이 광역시로 나와서 산다고 하면 비슷한 개념일까. 서울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으니..
내가 뮌헨공대에서의 학업을 이어갈 수 있음에도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크게 세 가지 정도였다. 먼저, 학과 프로그램이 더 공학적이었다는 점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외국인으로서 완벽하지 않은 현지 언어로, 경영학과 내지는 융합 학문의 전공만으로 경쟁력을 가질 것이라는 확신이 없었다. 아무리 지속가능성이 중요하고 그쪽 분야가 커진다고 한들, 경영 과목의 한계는 뚜렷하게 느껴졌다.
다음은 프라이부르크 도시만의 매력이었다. 이미 1년 간 살아본 바이에른에서의 삶보다는 새로운 곳에서의 삶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고 이곳은 다른 도시와 다르게 그저 말만 지속가능성을 외치는 게 아니라 도시부터 시민까지 실천에 옮긴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고민을 할 당시엔, 이곳의 삶이 인류가 나아가야 하는 방향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컸다.
마지막으론 현실적인 이유일 수도 있는데, 이곳 대학과 연계한 연구소에서의 취직이 용이하다는 사실이었다. 그 연구소가 유럽 내 최대 태양에너지 연구소라는 점, 그런 이유로 학생 인턴 자리를 구하는 게 쉬울 거라는 누군가의 이야기 때문이었다.
이런 장점과는 별개로 마지막까지 망설이게 만든 한 가지 요인이 있었는데, 이는 단순히 대학교의 네임벨류 때문이었다. 독일 내 최고 대학이라고 항상 분류되는 뮌헨공대에서 10위권의 프라이부르크로 가는 것, 그리고 10위권이긴 하지만 공과대학은 그다지 명성이 높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이 모든 게 한국적인 사고방식이 아닐 수 없는데, 하지만 적어도 뮌헨공대 학생들은 본인들이 항상 독일 최고 대학을 다닌다는 자신감 내지는 자부심이 너무 강했기에 그것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면 거짓이겠다. 하지만 앞서 상기한 이유와 이 프로그램만큼은 뮌헨공대보다 나을 수도 있지 않겠냐는 생각을 하며 프라이부르크에서의 삶을 시작했다.
이제 이곳에서 있었던 일을 차근차근 살펴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