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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다니엘 Nov 23. 2024

꾸준함, 버팀의 미학

나는 누구 여긴 어디?

흔히 이공계 대학(원)생들은 일자리 (파트타임)를 학업과 병행하곤 한다. 졸업하자마자 어떠한 경력도 없이 풀타임 직장을 갖기란 굉장히 어려운 일이기에.. 이러한 인턴 자리는 적어도 독일에선 ‘필수’라고 여겨진다.


늦깎이 대학원생인 나도 예외는 아니다. 이력서에 연구실 경력이라곤 하나도 없는 나였기에.. 그런 기회는 더더욱 중요했다. 그래서 업무에 대한 지식이 없더라도 나만의 당당함으로 빨리 배울 수 있다고 상사에게 어필하였다.


그렇게 4월부터 시작한 두 번째 학기, 되돌아보건대 정말 힘들었는데...

먼저 새로 시작한 일의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내가 제대로 하는 건지 의문이 든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고, 그런 이유로 아직 내가 실력이 부족한데 그냥 일자리를 얻겠다고 무리를 한 건 아닌가 자책하기도 했다.


같은 일을 하는, 같은 과 3년 선배이자 실질적인 사수였던 L의 도움이 아니었으면 그 어떠한 일도 주도적으로 할 수 없었다. 대부분 L이 의견을 내면, 나는 맞다고 동의하는 정도...? 매번 상사가 시킨 일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L을 보며, 내가 언제 그의 수준에 도달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곤 했다. 어쩌면 나는 시간이 지나도 그처럼 잘 해낼 수 없을 거라는 의심을 하며.


다음으론, 학기 시작 때는 흥미로울 것 같던 수업이 한 주가 넘어갈 때마다 그다지 대단할 것 없는 내용이라는 걸 느꼈는데.. 안타깝게도 이것이 필수과목이기에 그냥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나를 꽤나 괴롭게 했다. 이와 더불어 조별 과제는 이에 덤이었다.


대부분의 조별과제가 그렇듯... 의미 없다고 생각하는 그룹 프로젝트에 내가 맡은 분야 이외에도 다른 이들의 뒤치다꺼리를 하고, 그들이 준비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 내가 더 해야 하며, 최악은, 그들이 끝내 이를 제대로 하지 않을 것에 대한 걱정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괴로웠다.


그런 이들을 볼 때마다 화가 너무나도 나면서 혼자 일 하는 게 제일 편하다는 생각을 다시금 했다. 토의하며 나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발견해 수정하는 건 좋은 일이지만, 그보다는 다른 구성원의 무책임함, 무능력으로 인해 분노가 더 쌓인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인 듯하다.


무엇보다 쏟아놓은 시간 내지는 노력 대비 결과가 썩 만족스럽지 못하니 그게 마지막까지 아쉬움으로 남았다. 마지막으로 봤던 구술시험이 끝나고 몇 시간은 멍하게 있었다. 내가 노력한 것에 비해 어떤 부분은 멍청하게 대답했고, 어떤 부분은 억울한 마음에.


세 번의 과제와 구술시험을 보는 동안 느낀 점이 있었다. 이는 내가 시간이 꽤 주어졌을 때는 꼼꼼하게 준비하고, 결과를 분석해 발표하는 데는 소질이 있으나 예상치 못한 질문에 반응하는 순발력은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그런 순발력 또한 더욱더 많은 준비 및 제대로 된 분석을 했을 때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매번 시험이 끝나고 내가 놓쳤던 걸 시간이 조금 지나서야 그에 대한 대답이 떠오르는 건 그저 순발력이 부족한 건 아니었냐는 나름대로의 진단을 내놓아봤다.


이런 나의 장단점은 어쩌면 군에서 나의 경력을 시작하면서 더욱 특징으로 발전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끝도 없이 확인하고 팩트를 찾는 한편 유연한 사고는 부족한 점. (아직도 군대 물이 덜 빠졌나...)




이렇게 반년이라는 시간을 돌아보면 참 버거운 일들이 많았다. 일도 그렇고, 수업 중 과제도 그렇고, 특히 나의 직장 상사가 가르치는 과목은 정말 정말 어려웠다. 강의실에 앉아 있는데, 수차례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누구, 여긴 어디...?'


그럴 때마다 ‘아직 부족한가?’ 혹은 ‘내가 너무 무리하고 있는 건가?’와 같은 의문이 들며, 나를 힘들게 하던 것들을 하나씩 내려놓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일을 시작한 것도 마치 내가 과욕을 부린 것 같고 나의 부족한 점만 보였다.




그렇게 반년 가까이의 시간을 꾸역꾸역 잘 버텼다고 할 수 있을까. 시험은 모두 마무리되었고, 약 다섯 달 반 정도 했던 인턴 일을 매듭지었다. 그중, 마지막 석 달은 새로 주어진 프로젝트를 해내야 했는데, 그 마무리를 원래 하나하나 다 알려주던 사수, L의 도움 없이 해냈다.


시간이 지나 보니, 내가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버티다 보면, 결국 다 된다.


처음 생각할 땐, 막막하던 그 많은 것들의, 거의 대부분을 해냈다. 다시 생각하기를, 어쩌면 우린 못하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그저 안 해봤고 겁먹을 뿐...


나는 그렇게 속세를 떠나 고국으로 달콤한 휴가를 떠났다! 유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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