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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다니엘 Nov 27. 2024

예? 해고라니요?

잘못 들었습니다?

어느덧 세번째 학기의 시작.


일하고 있는 연구소의 상사는 내가 한달의 휴가에서 돌아오는 날짜에 맞춰 바로 연락했다. 나는 그 이유가 진행되는 프로젝트를 빨리 마무리 짓자는 식의 이야기인 줄 생각하고, (엄청 쪼네!) 알았다고 했는데, 그건 나의 안일한 착각이었다.


그녀는 나에게 "다른 연구실을 찾는 것이 좋겠다."는 급작스러운 말을 전했는데, 이 중요한 말을 고작 전화로 통보하다니…. 몹쓸….


순간, 계약을 맺을 때 순탄치 않았던 부분이 떠올랐다. 6개월간 전혀 생각지도 않은 분야의 공부를 했어야 했던 건 단지 상사의 권유로 그가 가르치는 수업 내지는 업무와 관련성이 있는 부분이었기 때문인데, 그 노력이 허사가 됐다는 생각에 착잡했다.


하지만 착잡한 채로 신세 한탄만 해서는 도무지 답이 없다는 걸 알기에 새로운 길을 모색했다. 일단은 그 당황스러운 전화 통화에 한 가지만 부탁했다.

"내가 지금 일을 하지 않으면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있으니, 새로운 일자리를 찾을 때까지 일을 해도 될까."


상사는 그렇게 내게 두세 달 정도의 기간을 더 주기로 했다. 그게 그의 배려라기보다도 정말 계약을 연장하지 못하는 이유가 그가 설명한 이유가 맞는가 싶은 의문도 들었다. 그 진실이 무엇이 됐든, 이 상사를 믿는 것도, 그 상사와 함께 논문을 쓰는 것까지, 그 어떤 것도 미래가 없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그런 이유로 당장 연구소에 올라온 구인 공고부터 찾아봤다. 생각보다 하고 싶은 일이 없었다. 한 가지 정도 흥미가 있긴 했으나, 너무 하고 싶어서 지원하고 싶은 정도는 아니었다. 이어서 예전에 관심이 있었던 프로젝트 담당자에게 메일을 보냈다. 관심이 있는데, 혹시 남은 자리가 있겠느냐고.


이어서 같은 상사와 일했던 내 연구소의 사수이자 3년 선배 독일 친구에게 연락했다. 친구는 연구소뿐만 아니라 다른 일자리도 알아볼 것을 추천했다. 그런 이유로, 남유럽, 남미 및 중동에 태양광 플랜트를 건설하고 컨설팅을 진행하는 회사에서 일하는 같은 과 동기에게도 연락했는데, 마침 자리가 남아 있었다. 친구는 내가 지원하겠다고만 하면 직장 동료들에게 적극적으로 어필하겠다고 해준다. (오호 솔깃한데...!)


며칠간 다방면으로 할 수 있는 네트워크와 나의 노력을 쏟아부은 후, 고민했다. 진정 내가 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럴 때, 나는 '아빠 찬스'를 쓰기로 했다. 아버지가 예전에 이야기했듯 학계 및 연구 분야에서의 삶이 녹록지 않다는 걸 뼈저리게 체감했기 때문이랄까. 이윽고 적어도 석사 논문 정도는 혼자 마무리할 수 있는 능력은 되어야 내가 어느 곳에서도 그 역량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피드백을 들었다.


이렇게 회사에서 일하는 동기에겐 연구소에서 더 다른 기회를 찾아보고 싶다고 이야기했고, 처음 보는 교수에게 수업 끝나고 일자리를 혹시 구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러곤 두 달간의 계약을 연장했다.




그렇게 급한 불은 껐다.

무엇보다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 정말 내가 무엇이 하고 싶고, 어떤 일을 해야할지.


나는 당장 내가 가질 수 있는 최선의 카드를 추렸고, 그쪽 분야와 관련된 수업을 들으며, 교수 내지는 강의하는 이들과의 네트워킹을 하려고 했다. 몇몇 지원서도 보냈지만, 몇 개월이 지나도 이쪽 분야에서의 분야는 신통치 않았다.


이는 내 경력이 부족해서일수도 있는데, 절박했던 나는 공수표만 날리고 끝내 내게 그 어떤 기회도 주지 않은 이들에게 실망을 넘어 분노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들이 내게 결국 자리를 주지 않은 것에 대해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하게 됐다. 실력으로도, 사람으로도 별로 배우고 싶거나 일하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는 걸 생각하게 된 이후로부터.


해가 제대로 뜨지 않는 악명 높은 독일의 겨울이었고, 나의 미래도 참으로 암울한 겨울 같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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