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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다니엘 Nov 28. 2024

어두운 터널 속의 한 줄기 빛

10월부터 시작한 세번째 학기.

내가 제일 관심이 있던 과목은 수학이 많이 요구되는 내용이었는데, 지난 학기에 이 수업의 심화 과정에 대해 고난을 겪어가며 마쳐서인지, 교수가 이야기하는 많은 개념들이 익숙했다. 역시.. 괜한 고생이 아니었던 건가. 그나저나 이 과목 교수 M의 강의는 정말... 독일에 온 이래 최고의 명강의였다.

폭넓은 시야로 적절한 예를 들어가며 가르치는 그의 방식은 감탄을 자아냈다. 무엇보다도 그가 수업에서 다루는 예나 수학적 증명을 해내는 방식이 해마다 다르다는 점은 나를 놀랍게 했다.

살면서 이 방대한 수학적인 증명과 설명을 이렇게 명쾌하고 쉽게, 그리고 흥미롭게 가르치는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마치 MIT 비디오 강의에서만 보던 인물을 실제로 영접한 느낌이랄까.




일하고 있는 연구소 상사와의 미래가 끝났다는 걸 깨달은 이래, 최초 계획은 지금 듣고 있는 이 과목의 이론을 바탕으로 한 에너지 시스템 관련한 분야의 자리를 노려보는 것이었다. 몇몇 이에게 수차례 메일을 보내도 답장이 오지 않고 그렇게 몇 달간 기약 없이 기다리다 보니, 답답한 것을 넘어 불안감도 생겼다.


지금 돌이켜보건대 그 많은 이들이 그렇게 뛰어나지도, 그렇게 훌륭한 스승이 아니었다고 생각하는 바다. 실력은 별개로, 결과론적으로 공수표만 날리고 학생의 기대를 저버렸으니.


모든 선택지가 사라졌던 순간, 수학의 대가인 교수 M이 수업 도중, 석사 논문 자리를 광고하는 것에 지푸라기라도 잡아보자는 심정으로 수업이 끝나고 논문 자리를 알아보고 있다고 물어봤다.


M은 내 신상 조사를 시작하곤 이어서 본인이 석사할 때 했던 주제가 박사논문은 물론이고 지금의 본인의 제일 주된 연구분야가 되었다며, 지금 정말 하고 싶은 분야를 선택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그러고는 꼭 이력서와 성적표를 같이 첨부해서 이메일을 보내라고 했다. 사진이 함께 있는 이력서. 내 이름과 얼굴을 기억하고 싶다며.     


독일에 오고 저렇게 높은 분이 내 이력에 관심을 두고 나만 대화를 5분 내지 10분 간 이어간 게 처음인지라 흥분도 되고 어떻게 이메일을 보내야 하나 고민하다가 정말 솔직하게 메일을 보냈다.


"어떻게 지속가능한 에너지 시스템을 만들 수 있는지가 제일 큰 관심사이자 그 이유로 독일, 프라이부르크에 오게 됐고 상세한 주제에 대해선 100% 확신은 없으니, 교수님의 조언이 매우 도움이 필요하다"


보내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여 M이 한 달 넘게 아무런 연락이 없었던 다른 교수나 강의자들처럼 행동하거나, 안 좋은 피드백이 준다면 내가 그 분야를 공부할 역량이 부족하다고 판단하는 거겠구나.' 싶은 두려움 반, 정말 희망차고 가슴 뛰는 감정 반이었다.




그 다음주, 수업이 끝나고 M과 다시금 이야기하게 되었다. 그는 내가 보낸 메일을 잘 봤다며 아주 흥미롭고 긍정적이라고 이야기한다. 본인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부분이라면서, 어떤 주제가 됐든 좋다며 나의 자리는 크리스마스가 끝나고 결정하자고 했다.


희망찬 2주간의 성탄 방학이 끝나고 시작한 M의 수업. 나는 이 순간을 2주간 손꼽아 기다렸다. 수업이 끝나고, M이 내게 본인의 연구실에 같이 가자고 제안했다.


30분 내지는 한 시간여의 꽤 긴 토론을 거쳤는데, 많은 연구 방향 중 하나의 주제로 거의 연결되었다. 교수는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내게 장문의 메일을 보냈는데, 그건 논문 주제와 관련이 있는 내용이었다.


그러곤, 나도 무언가 보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며, 관련된 자료를 나름대로 찾고 정리했다. M의 상상 속에 나온 개념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걸 나는 알게 됐다.


이를 바탕으로 그다음주, M과의 대화를 흥미롭게 끌고 갈 수 있었다.

“당신이 메일 보내준 걸 바탕으로 검색해봤는데 네덜란드엔 이미 상업적으로 성공한 적용 사례가 있고, 독일에도 여러 사례가 있다. 그리고 여기서 가까운 곳에서 국제 회의도 다음달에 있어서 그 자리에 가보려고 생각한다.”  등등.


M은 흔쾌히 좋다고 했고, 본인의 박사과정생에게 너도 괜찮지? 하고는, 우리 셋 다 행복하니, 박사과정생에게 내 멘토를 맡을 것을 주문하고, 이 주제로 논문을 시작하자고 했다. 본인이 이 분야에 직접적으로 받는 펀딩이 없으니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관련된 분야의 파트타임 계약할 것을 제의했다. (사실 다른 곳에서 논문을 쓰는 것에 비해서는 상당히 적은 액수였지만, 6개월 정도는 나의 미래에 투자해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이유로, 잠시 망설일 틈도 없이... 그 순간 No라든가, '조금 더 생각 해 볼래' 따위의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순식간에 모든 게 정해져버렸다. 그 고민과 괴로운 시간에 비해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나를 앞으로 지도할 박사과정생 J에게 물어보니, 내가 원하고 (성공적으로 논문을 마무리한다는 가정 하에...) 논문이 끝나고 6개월 내지는 1년 동안 일을 계속할 수 있을 거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 때에도 계속 공부할 생각이 있으면 박사과정을 할 수도 있는 것이고.


그렇게 여러모로 불확실했던 나의 미래가, 적어도 반년 정도는 확실해졌다. 삶이란 게 꼭 내가 생각한 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는 걸 또 생각하게끔 한다. 그렇게 나름대로 희망찬 미래를 꿈꾸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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