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에 대한 준비 작업을 시작하게 된 건 참으로 기쁜 일이었지만, 본격적으로 시작하려고 하니 걱정이 밀려왔다. 논문을 쓰는 과정을 위해 필요한 부분을 공부하다 보면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 공부하면서 나온 새로운 의문점을 다시 공부하는 과정을 계속 거치니 그 공부에 끝이 없는 셈이다.
사실 시작할 때만 해도, 6개월이란 시간에 논문을 쓴다고 한다면, 석사과정 중 그 어떤 때보다도 시간이 많다고 생각했거늘. 막상 따지고 보니 부족한 나의 수학 배경을 위한 나머지 공부부터 익숙하지 않은 여러 프로그래밍 툴에 대해 익숙해져야 하며, 그로부터 하나의 결과물, 책으로 엮는 것까지, 시간이 오히려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즉 나름대로 6개월간의 이정표를 세우고 그걸 이루려고 하고 있지만 6개월이 다 끝났을 때, 내가 기대하는 것만큼의 결과물이 나올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계속 여러 의문을 해소하고 정립해가는 과정이었기에.
과연 나는 원래 계획했던 목표를 이룰 수 있을까.
걱정한다고 해결책이 나오는 건 없다. 내가 이에 접근한 방식은 그저 연구실에 매일 아침부터 있을 때까지 있어보자는 것이었다.
사실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삶에 어느 날은 침대 밖에서 나가고 싶지 않았다. 금방 지겹다는 생각이 맴돌고, 어느 날은 그냥 다 그만두고 싶다가도... 그렇게 식빵을 구우며 엉덩이를 무겁게 하고 있었다.
어떤 날은 하루 죙일 투자를 한 결과물이 진전이 없을 때도 있었는데, 사실 그런 날보단 붙잡고 있다 보면 무언가 진전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또 어떤 날은 꽤 생산적인 방향으로 생각지도 못한 발전을 이루기도 했다. 이런 날들이 모이다 보니, 조금씩 발전해 나가고 있었다. 나의 연구도, 내 자신도.
이 모든 게 당연한 과정일 수도 있는데, 워낙 연구실에 석사 논문 쓰는 친구들이 많이 없는 데다가 있다 한들, 대부분 매일 같이 오지 않는 게 보통이었다. 이는 사실 아래의 이유가 따른다.
보통 박사과정생이나 포닥들이 분위기를 꽉 잡고 있는데다가 여기에 대부분 독일인 내지는 독일어가 매우 유창한 외국인이기에, 독일어가 짧은 석사생은 이 이너서클에 들어가는 데에 큰 애로사항이 있다. 그들과 대화할 연구 주제는 물론이고 경력도 그렇고, 언어 장벽까지. (나도 대화에 참여하고 싶은데…)
나로선 연구주제, 관심사가 내가 그동안 공부했던 분야와 워낙 다르니 공감이 안 되는 부분이 제일 크게 느껴졌다. 정식 연구실 소속이 아닌 석사생은 겉돌기가 십상이다. 이 모든 게 적응의 과정이었다.
이와 별개로 석사 논문 자리를 받고, 2주쯤 지나 지도교수 예하의 실질적인 나의 멘토인 박사과정과의 첫 미팅을 하러 갔을 때의 나의 당혹감이 잊히지 않는다. 이는 교수가 벌써 독일을 떠나 미국으로 향했다는 소식이었다. 그가 돌아올 시기는 네 달이 지난 이후라고 했으니, 이 교수 한 사람만 보고 논문 자리를 받은 건데 그가 없다고 하니 이게 맞는 선택일까 하는 생각들이 든 셈이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났을까. 연구실의 헤드, M이 돌아왔다.
M이 없는 연구실에서만 사람들과 교류했으니 원래 그가 있는 모습을 그릴 수 없었다. 처음 연구실에 모습을 드러낸 M은 짧은 인사만 하고 돌아갔는데, 워낙 사람들의 이름을 잘 까먹는다 하여 내 존재 자체도 까먹은건 아닌가 싶었는데, 첫 인사가 ‘디펜스 날짜 잡았어?’ 해서 다행이었다. 그가 날 잊지 않았던 것에.
얼마 지나지 않아 교수는 2주 후에 있을 연구실 자체 세미나 및 단합대회 계획에 대해 이야기가 있었는데, 교수는 석사과정 중엔 유일하게 내게도 발표할 것과 그다음 달에 있을 조그만 학술대회에서도 논문 관련된 포스터를 발표할 것을 주문했다.
이 모든 게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알았다고 하면서도, 부담도 많았던 것도 사실.
한편, M이 돌아오고 제일 좋은 점은 평소엔 대화 주제가 박사 개개인들이 하는 지엽적인 연구들에 관한 것이었다면, 이때부턴 더 일반적인 주제들과 더불어 내게 역설적으로 발언권이 더 많이 생겼다. 재생에너지 관련된 연구를 주로 하지 않는 이들이 대부분인 연구실에 M이 그쪽으로 계속 드라이브를 거는 영향이 크다고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