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과정의 마지막 달.
나는 논문 주제에 흠뻑 빠져 있었는데, 휴가에서 돌아온 나의 박사멘토 J가 오고 나서 내 큰 계획이 변경되었다.
J에게 그동안 한 결과물을 보여주고, 마지막으로 어느 학술지에 제출하면 좋겠냐는 등의 질문을 했는데, 아직 지도교수 M이 내가 쓴 글을 한 번도 보지 않았기에 이건 논문 디펜스가 끝난 이후에 이야기하는 게 좋겠다고 한다. 충분히 이해는 갔지만, 뭔가 나의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느껴졌다.
그러곤 지금쯤 직장 지원하는 것에 대해 어찌 생각하냐니, 아무도 날 말리지 않는다며 하라고 종용한다.
허허... 괜히 나만 연구실에서의 의리를 지키려고 했던 건가.
그렇게 짧은 미팅 이후, 그저 생각만 했던 걸 실천으로 옮기기로 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여러 직장에 지원했다. 이것만 해도 이틀 온종일 시간을 썼다.
또, 학회에서 돌아온 지도교수 M은 논문을 제출하고 나흘 이후에 디펜스하면 다 읽을 시간이 없으니, 마감기한에 2주 앞서 초안을 보내줄 수 있겠냐고 묻는다. 그러면서 지금 당장 작성한 걸 보내달라더니, 몇몇 그래프를 훑어보고 아주 마음에 든다며, 몇 가지의 피드백을 남겨줬다.
그렇게 M이 내게 앞당겨 준 새로운 마감기한인 열흘 남짓 남은 기간 동안 논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완성했다.
한 챕터가 끝날 때마다 나의 멘토 J가 지독히도 꼼꼼한 코멘트를 남겨주었고, 나름대로 완성됐다고 생각했을 땐, 같이 논문을 쓰는 석사 친구가 당일 자정에 가까운 시간에 피드백을 다시 보내줬다.
굵직한 결과물을 이미 한 달 전에 다 내놓은 상황임에도 이 결과를 글로 적는 건 꽤 어려운 과정을 동반했는데, 이는 내가 이론적으로 부족한 점이 많았고, 형식적으로도 연구실에서 요구하는 수준을 맞추는 것도 꽤 지난한 과정이었다. 무엇보다도 내가 내놓은 결과 자체 중에 크고 작은 오류도 많았으며, 이는 글을 쓰면서 깨닫게 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걸 다시금 정당화하는 과정도 꽤 시간이 필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역시나 생각건대 독일을 오기 전부터, 두꺼운 책들을 완독하고, 수없이 많은 생각과 글을 정리한 게 큰 도움이 됐다. 머릿속에 남아 있는 생각을 정리하고 쓰는 데에 있어선 그 방향이나 속도가 덕분에 빨라질 수 있다고 느꼈다. 물론 제대로 된 학위 논문을 쓰는 건 처음이지만. 이 논문을 쓰는 것도 하나의 글을 쓰는 것과도 비견할 수 있는 과정일 테다.
그렇게 2주가 앞당겨진 가상의 마감기한이 도달했다.
지도교수 M와의 미팅 이후, 꽤 많은 것을 더 보완해야 했는데, 하다 보니 더 욕심이 생겨 이론을 계속 보강했다. 결국 내가 수학으로 표현해낸 결과는 내가 생각해도 아주 괜찮은 것이었는데, 이걸 어디서 찾아본 적이 없는 것 같기만 했다. 아주 뿌듯한 마음이 들었는데..
그러곤 그동안 공부했던 수많은 종이를 살펴보게 됐다. 혹여 내가 이번 논문 작업에 들어가지 않은 부분이 있을까 하고... 재밌는 건 내가 거의 아주 깔끔한 방법으로 정리한 나름대로의 나의 이론이, 사실은 내가 이 논문을 시작할 때쯔음에 봤던 논문에 있었고, 이를 내가 한번 종이에 끄적였던 걸 알게 됐다. 허허. 이제야 내가 이 과정을 한번 했었다는 걸 어렴풋이 생각하게 됐다. 그 땐, ‘아, 이게 똑같은 거지.’ 하고만 적고 넘어갔는데, 이젠 내가 직접 내 논문을 실을 정도로, 직접 도출했으니 훨씬 더 발전한 거라고도 생각할 수 있겠다.
휴일에도, 주말에도 밤늦게까지 수정했다. 그저 다 마무리가 되겠거니 한 것이, 보면 볼수록 수정할 부분이 보이는 게 꽤 괴롭기도 했다.
정말 정말, 완성이 됐다고 생각하곤 디펜스 발표 자료를 만들었다. 이젠 정말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이 지고지난한 과정을 마무리할 수 있는 그런 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