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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다니엘 Dec 04. 2024

깨지면서 배우는 해군 DNA

그룹 내 발표를 마치고, 교수 M은 여러 덕담과 함께 다음 과제에 대해 같이 토의하자고 이야기하곤, 이후 며칠에 걸쳐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그의 관심은 썩 달갑지 않았는데, 이는 실질적인 도움보다는 한정적인 시간이 명확한 나의 논문 데드라인과는 무관한 여러 가지 가능성 내지는 불확실성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나 또한 그 며칠 넘게 M의 말을 곱씹어보며, ‘이런 말을 한 게 이걸 하라는 거야?’ 아니면 ‘그냥 흘려보내도 되는 말인거야?’ 등등을 생각하게 했고, 특히나 상관의 의도 파악이 굉장히도 중요했던 삶을 살았던 나였기에 교수의 말을 몇번이고 되뇌일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 달간,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 관심을 이런저런 곳에 안테나를 돌렸다. 이 많은 안테나가 끝내 더 좋은 아웃풋을 내놓으면 좋을 수도 있겠지만, 더 마땅한 해결책을 낳지 못했고, 결국 여러 아이디어의 한계를 스스로 증명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조그만 학술대회를 한 주 앞두고, 나는 M에게 정식으로 미팅을 요청했다. 분명히 그가 하자고 했었는데, 이를 까먹었는지, (아니 사실 그를 찾는 이가 훨씬 많으니 그럴 법도 하고, 바쁜 그에게 더 적극적으로 어필해야 하는 건 당연히 나의 몫이다.)

이번주에 바로 하자고 하다가, 학술대회 끝나고 하는 게 낫지 않겠냐고 되물으니, 그러자면 디테일을 빼고 큰 그림에 대해서 토의해보자고 이야기한다. 안타깝게도 학술대회 땐 수많은 손님을 상대하던 M은 나의 포스터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물론 큰 그림은 이미 알고 있었겠지만, 저번 발표에 이어 그가 제대로 관심 갖지 않은 사실이 다소 아쉬운 것은 사실이다.


그렇게 미팅 당일이 되었다. 준비한 간략한 슬라이드를 보여주었는데, 그의 예리한 질문들이 들어온다.

‘중간에 이게 생략된 것 같은데? 이건 왜 없지?’

속으론 생각했다.

‘교수님이(아니 네가) 디테일 말고, 큰 그림만 이야기하자고 했잖아.’


물론 워낙 나이스한 인물이라 예전에 해군에서 상관에게 깨질 때처럼 인격모독과 같은 일은 당하지 않았지만, 논리적으로 조목조목 공격당했고, 방어하려 했으나 많은 부분에서 부족함을 느끼고 깨갱했다.


"마지막 두 달은 글만 쓴다고 했을 때,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건 한 달 남짓인데, 여기서 무얼 할래. 수학을 더 할래, 아니면 이걸 더 현실적인 모델로 만드는 걸 할래. 내가 느끼기엔 넌 스스로를 ’practical guy’라고 느끼고 있고, 내가 느끼기에도 그러니, 수학보단 더 현실적인 모델에 집중하는 게 낫겠지?"


셀프 질문하고, 셀프 답변하는데 나는 그냥 모종의 동의만 했다. 교수가 그런 이야기를 직접 하다 보니 속으론, 이 연구실과 이 교수와는 어쩌면 궁합이 안 맞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잠시 해봤다.


M의 마지막 말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처음엔 엄청 빨리 결과를 내는 것 같더니,,, but..."


but 이후엔 그는 말을 끝내지 않았지만, 그가 생각하기에 아웃풋이 첫 번째 발표보다 실망스러웠던 모양이다.


그러곤 미팅이 끝날 때즈음,

"오늘 이러이러하게 이야기한 것 내가 다음주 학회 가기 전까지 결과 내줄 수 있어? 그리고 우리 다음주에 또 토의하자. 당장 모델 바꾸는 건 오늘 남은 시간에만 해도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게 미팅이 끝나고 한참 멍하니 있었다. 생각해보니 억울하기도 하고 화도 조금 났다. 여러모로.


M의 반응들이 곰곰이 곱씹다 보니 오기가 생기고, 그가 미팅 중에 제기했던 질문을 먼저 정리하고, 모두 노트에 적어놓고, 이어서 그가 반나절이면 다 해낼 것이라 생각했던 부분을 해결했다.




M는 또 점심 먹고 잠시 돌아와 몇 가지 아이디어를 이야기하다가, 신경 쓰지 말라더니 주말 잘 보내라고 하고 갔다. 그러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관련된 생각이 계속 맴돈다. 이어서 그가 제시한 몇몇 아이디어들이 최선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고, 이와 더불어 새로운 아이디어가 계속 샘솟았다.


금요일을 그렇게 보내고 나니, 주말 아침 일찍 일어나 몇몇 생각들을 다시 실현해보았다. 여전히 물음표는 있지만, 꽤 발전이 있었는데, 그러던 와중 누적된 피로가 한 방에 몰려왔다. 낮잠과 너무나도 더운 날씨에 잠은 못 이루는데, 다시금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잠 안 오는 새벽까지 아이디어를 정리하다 보니 얼추 생각할 수 있는 건 다 끄집어낸 듯하다.


스스로 생각했다. 결과가 아쉬운 걸 누군가가 감 놔라 배 놔라 했다거나 이런저런 행사 때문에 시간을 뺏겼다는 식의 핑계를 하는 못난 모습을 하고 싶지 않다. 아쉬운 부분이 몇몇 있었던 건 사실인데, 이는 질질 끌지 않고 조금 빨리 명확하게 노선을 정해줬더라면, 또 이를 지원해 줄 이가 연구실에 상주하고 있었더라면. 정도의 조금의 생각이 들긴 한다. 다만, 이 주제를 맡게 되고 여러 고민을 많은 부분 혼자 해결한 게 내게 큰 발전이 됐음은 변함없이 믿는다.


나를 강하게 만든 건 내가 이겨 낸 고난의 기억뿐이고, 나는 해사에서 살아남은 자’라는 생도시절 나의 철학 교관의 위로가 퍽 고맙다. 사실 군 생활하며 그렇게 무참히 깨진 덕분에 내가 더 성장했다는 사실은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동안 너무 안 깨졌는지도 모른다. 지도교수의 쓴소리는 내게 사실 그 어떤 때보다도 필요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난 지도교수에게 다시 면담을 요청하지 않았다. 이제 또다른 면담은 오히려 내게 독이 될 것만 같았달까. 그렇게 지도교수 M은 한 달 동안 멀리 떠났다.


정해놓은 목표를 차근차근 아웃풋을 내고, 이를 토대로 정리하고 마무리 지으면 어떻게 되든 끝나게 되어 있다. 스스로 쉽게 마무리지으려고 했던 길을, 조금 더 좋은 논문을 마무리하는 것이라 생각하면 더 좋을 것이라며 위안을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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