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현장에서 15화

지푸라기

'칠곡 친구 감금·살인사건' 취재기④ - 2022년 3월 24일

by 정준영
절박한 사람에게 실낱 같은 희망이 되는 일이라면
기자로서 사건에 몰입해도 되는 것 아닐까.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다. 칠곡에 온 지 3일째지만 빈손이나 다름없었다. 경찰 수사상황도 파악된 게 거의 없고 CCTV 하나 확보하지 못했다. 찍은 그림이라 봐야 경찰서와 응급실, 빌라 외경이 전부였다. 뉴스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정말 최소한의 영상이다. 날이 밝자 다시 CCTV에 도전하기 위해 사건 현장인 빌라로 향했다. 근처 카센터 직원들이 나와 우리를 멀뚱히 쳐다본다. 외딴곳에 방송국 차량이 이틀째 들락날락하니 그도 그럴 것이다. 차에서 내리는데 깊은 한숨이 올라온다. 근심이 천근만근이다.


CCTV 제공 가부를 알아보고 알려주겠다던 빌라 관리자는 회신은커녕 전화도 받지 않고 문자도 '읽씹'이다. 빌라 CCTV엔 사건 당일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을 터였다. 이 영상을 담지 못한다면 기사 파급력은 확 줄어든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카센터에 가보기로 했다. 현장에서 살짝 떨어져 있긴 하지만 운 좋게 피해자의 모습이나 사건 당일 장면이 담겼을 수도 있다. 하지만 CCTV는 카센터 안쪽 공간만 제한적으로 찍고 있을 뿐 원하는 그림은 없었다. 대신 직원들은 피해자 목격담을 풀어놨다. "아 그 남자요? 백혈병 걸린 사람 같았어요. 온몸이 시퍼렇고. 병원에 가봐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해도 그냥 괜찮다고만 하던데요." 사건 당시 영상을 보여줄 수 없다면 목격자의 생생한 음성이라도 담아야 했다. 증언을 통해 시청자들이 당시 상황을 머릿속으로 그려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문득 주민들이 피의자 차라고 지목했던 회색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가 떠올랐다. 어제 전화번호를 저장해두기만 하고 걸어보진 못했다. 여기에 전화를 걸면 돌파구가 생길까? 이를테면 슈뢰딩거의 고양이다. 전화번호의 주인은 피의자 중 한 명이거나 그 가족 또는 피해자 유족일 수 있다. 아니면 관련 없는 제삼자일 가능성도 있다. 전화를 걸지 않고선 알 수 없다. 쉽게 결정할 수 없었다. 만일 상대방이 피의자 측이라면 내 연락처를 저들에게 알리는 꼴이 된다. 후에 어떤 골치 아픈 일이 생길지 모른다. 자신들의 범죄 행위를 보도한 기자에겐 앙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취재는 막다른 길에 있었다. 기자로서 감내해야 하는 위험일 것이다. 고민을 그만두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연결음이 시작됐다.


잠시 후 수화기 저편에서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등장한다. 귀찮은 듯하면서도 상대방을 경계하고 있는 느낌. 점잖은 목소리는 아니었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자기소개를 하고 전화 건 목적을 설명했다. 이러저러한 사건이 있었고 주민들을 취재해보니 이 차량이 피의자 거라더라. 그래서 전화를 걸어봤는데, 피의자들과는 어떤 관계시냐며. 그러자 남자가 "지금 사람을 범죄자 취급합니까? 아침부터 기분 더럽게 XX"이라며 신경질을 내기 시작한다. 알고 보니 그는 빌라 1층 건설사 사무실 직원이었다. 그의 분노는 정당해 보였다. 자신과 상관없는 범죄의 용의자로 의심받는 기분은 어떨까. 나는 휴대전화에 대고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했다. 그는 두 번 다시 전화하지 말라며 성질을 낸 뒤 거칠게 전화를 끊었다. 건설사 사무실 CCTV는 물 건너간 꼴이었다.


뭐라도 건지기 위해 암담한 심정으로 후배와 함께 동네 주변 편의점과 마트, 식당을 샅샅이 훑었지만 소득은 없었다. CCTV 없는 사건 리포트는 반쪽짜리일 뿐이다. 그렇다고 무한정 이곳에 있을 수는 없었다. 곧 대구 화장터로 유족을 만나러 가야 했다. 그래도 마지막 희망은 있었다. 어제 이미 한 차례 거절당한 빌라 맞은편 단독주택 CCTV. 통사정을 해보는 수밖에 없었다. 죽자 사자 심정으로 다시 한번 대문을 두드리려는 찰나, 마침 집에서 한 중년 여성이 나왔다. 아마 어제 통화한 남성의 아내일 것이다. 우리는 그를 불러 세우고 사정을 설명했다. 얘기를 들어보니 CCTV는 정상 작동하는 것이었지만, 그는 출근하는 길이라 협조할 시간은 없다고 했다. 다시 찾아오는 절망감.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우리는 명함을 건네면서 나중에 다시 찾아오겠다고 했다. 이젠 정말 화장터로 떠나야 했다. 근처 중국집에서 자장면 한 그릇을 먹고 대구로 출발했다.


또 하나의 난관이 시작됐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유족을 찾아내야 했다. 아는 정보라곤 유족이 오후 2시쯤 도착한다는 사실뿐이었다. 화장터엔 사람들로 바글거렸다. 우리는 30분쯤 미리 도착해 시설 구조를 파악했다. 허둥대지 않고 효율적으로 움직이기 위함이다. 다행히 화장터는 코로나19 상황임에도 외부인 출입을 통제하지 않았다. 시설 구조도 단순했다.


시간이 되자 화장장 입구에 병원 차량 한 대가 들어섰다. 피해자가 실려갔던 병원이다. 아마 피해자 시신을 모셔왔을 것이다. 그리고 어디선가 중년 남성 네 명이 나타나 관리사무실로 들어갔다. 후배가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그들의 대화를 슬쩍 엿들었다. 피해자 유족이었다. 생각보다 쉽게 일이 풀렸다. 유족들이 서류 작성을 마치고 사무실 밖으로 나왔다. 그들에게 말을 걸어야 한다. 그들을 향해 저벅저벅 다가갔다. 긴장되는 순간. 제보한 적도 없는데 화장장에서 기자들이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으리라곤 상상조차 못 할 것이다. 그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우리를 밀어낼까, 아니면 반길까.


"OOO씨 가족분들 되시죠? 저는 △△△ 기자라고 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네 명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듣기만 했다. 나를 응시하고 있는 네 쌍의 눈. 어떤 눈은 경계심으로 가득했고 다른 눈엔 절박함이, 또 다른 눈엔 호기심이 서려 있었다. 마지막 눈은 땅을 바라보며 불안정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슬픔의 그늘이 눈 주변으로 시커멓게 번져 있었다. 아마 피해자 아버지일 것이다. 무거운 침묵 끝에 경계의 눈동자가 입을 열었다. 살짝 푸른 기운이 감돈다. 때로는 눈빛 만으로도 하려는 말을 알아챌 수 있다. 그는 맏형이었고 그들은 모두 형제들이었다.


"보도가 우리한테 도움이 될지 해가 될지 어떻게 압니까?"


기자에 대한 대중의 이미지. 일부러 논란을 만드는 사람들. 그는 기사가 나감으로써 오히려 동생이 상처를 입게 되는 건 아닌지 염려했다. 당연히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걱정이다. 나는 "세상의 어느 기자가 범죄 피해자에게 불리한 기사를 쓰겠느냐"고 말했다. 얼굴은 모자이크 되고 목소리는 변조될 것이며 이름은 익명 처리하겠다고 안심시켰다.


그러자 막내가 "언론 취재에 적극 동의한다"며 끼어들었다. 이렇게 억울하게 조카를 보낼 수 없다고. 그의 말에 따르면 피의자들은 이미 변호사를 구했고, 경찰서에서도 유족들에게 변호사 선임을 권했다고 한다. 형사소송 절차에서 피해자들의 대리인 선임은 필수가 아니다. 경찰이 사건을 수사해 송치하면 검찰이 피의자들을 기소한다. 재판이 열리면 범죄를 입증하려는 검사와 무죄를 주장하거나 형량을 낮추려는 피고인 측 변호인이 공방을 주고받는다. 이들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피해자 측이 검·경만 믿고 있을 수 없는 이유다. 경찰도 이 때문에 변호사 선임을 권했을 것이다. 하지만 유족들에겐 변호사 살 돈이 없었다. 장례식 없이 아들의 시신을 장례식장에 안치해놓기만 한 것도 비용 때문이었다. 화장 비용은 형제들이 모아 마련했다고 한다.


셋째가 막내를 거들었다. 조카가 죽었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이 개탄스럽다고 했다. 이대로라면 피의자들이 제대로 된 죗값을 받지 않을 것 같다며. 갑자기 기자들이 나타나 당황스럽긴 하지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취재를 부탁한다고.


tvN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 15화엔 주인공 백이진이 공사현장 사고 소식을 리포팅 한 뒤 수습되는 시신과 유족들을 보며 가슴 아파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 백이진을 보면서 선배 기자는 "일일이 하나하나 아파하면 이 직업 못한다. 사정에 무뎌지고, 사건에 집중해"라고 말한다. 그러자 백이진은 "무뎌지고 싶지 않습니다. 다 아파할 거예요. 다 공감하고. 전 그게 먼저입니다."며 대꾸한다. 여기에 선배 기자는 다시 한번 말한다. "같이 울어줄 시간에 세상에 질문을 해라. 이래도 되는지!"


이 대목에서 선배 기자에게 공감하는 편이다. 나는 어떤 일에도 쉽게 과몰입하지 않는 성격이다. 기자의 직업적 소명을 이해하고 이행하려 하지만, 취재원과 기자는 '불가근불가원' 관계로 여긴다. 선악구도와 같은 이분법적 사고 또한 싫어한다. 우리가 '악'이라 규정하고 펜을 휘둘러댄 상대방에게도 억울한 사정이 있다면? 설령 한쪽이 일방적인 피해자일 지라도 기사는 감정적으로 쓰여선 안 된다. 그런데 지푸라기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마음에 통로 하나가 뚫린 것 같았다. 절벽에 떨어지기 직전에 그러잡는 지푸라기. 이 말도 맞고 저 말도 맞는 상황에서 한쪽 편을 드는 게 아닌, 정말 절박한 사람에게 실낱 같은 희망이 되는 일이라면 기자로서 몰입해도 되는 것 아닐까.


장고 끝에 형제들은 취재에 응하기로 했다. 우리는 멀찍이 떨어져서 피해자 관이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아버지는 통곡을 하며 동전 한 줌을 관 위에 흩뿌렸다. 평생 가난하게 살아온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는 마지막 용돈. 풍족한 삶이었다면 아버지와 아들은 지금 한 집에서 함께 살아 숨 쉬고 있을까. 아들의 몸이 재로 변해가는 동안 피해자 아버지와 인터뷰했다. 벤치에 그와 나란히 앉았다. 그의 머리카락은 기름져 번들거리고 있었다. 아마 아들을 잃은 슬픔에 씻을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눈은 여전히 땅을 응시하며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입을 열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질문을 시작했다.


7개월 전, 아들이 친구들과 같이 살겠다고 말한 뒤 집을 나갔다. 친구들 중 한 명은 아들의 초등학교 동창이었다. 아들에게 담배를 배우게 하고 타인을 괴롭히는 나쁜 친구였던 걸로 기억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그와 어울리지 말라고 두어 번 경고했다. 하지만 그도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처지였기 때문에 독립하겠다는 아들을 막지 않았다. 아내는 아들이 어릴 때 집을 뛰쳐나갔다. 무신경한 아버지였지만 아들은 키 183cm 건장한 체격으로 자랐다. 태권도 유단자에 운동에도 소질이 있었다. 어딘가에 취직해 월급 200만 원 정도 번다고 했으니, 그저 잘 살겠지 싶었다.


몇 개월 뒤 아들이 못 보던 친구와 함께 집으로 찾아왔다. 같이 살고 있다는 무리 중 한 명이었다. 아들이 몇십만 원 정도 달라고 했다. 하지만 아버지에겐 돈이 없었다. 그러자 아들은 "아빠 돈을 주지 않으면 안 돼"라며 사정했다. 그래도 아버지는 아들의 요구를 받아줄 수 없었다. 얼마 후 다시 찾아온 아들은 이번엔 800만 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친구들이랑 농구를 했는데 졌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농구 내기로 800만 원을 주고받는다는 게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아버지는 아들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사실인지 따져 물었다. 친구는 태연하게 "단순한 장난이죠"라며 대꾸했다.


그 후로 아들은 다시 집에 찾아오지 않았다. 아들의 전화기는 늘 꺼져있었다. 한 번은 아들이 공중전화로 전화를 걸어 "아빠 무서워"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친구들이랑 같이 사는데 뭐가 무서우냐"라고 물었지만 아들은 "그냥 이해해달라"라고 할 뿐 자세한 얘기는 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참 뒤 또 공중전화로 연락이 왔다. 아들은 대뜸 치과에 가야 할 것 같다는 얘길 했다. 아버지는 어디가 아프냐고 물었지만, 아들은 또 별 일 아닌 듯 대꾸했다. 아버지는 잘 다녀오라고 했다. 그게 아들과의 마지막 대화였다.


아버지는 비통해하면서도 최대한 담담하게 내용을 설명했다. 그리고 난 하지 않는 게 좋았을지도 모르는, 하지만 해야만 하는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지금 심정이 어떠십니까"라고. 그러자 아버지는 오열하기 시작했다. 통곡은 멈추지 않았다. 나는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갑자기 아버지가 정신을 잃었다. 몸에 힘을 빼고 쓰러지는 중년 남성의 몸이 그렇게 무거울 줄 몰랐다. 간신히 머리가 땅에 떨어지는 것을 막았을 뿐이었다. 주변에 있던 형제들이 달려왔다. 그에겐 지병이 있었다. 정수기 물을 떠 와 약을 먹였다. 왠지 모를 죄책감이 들었다. 마지막 질문은 결국 하면 안 되는 것이었나. 하지만 다시 생각해봐도 해야만 하는 질문이었다. 이 끔찍한 사건의 실상을, 피해자 유족이 받고 있는 고통을 전함으로써 피의자들이 제대로 된 죗값을 받도록 하는 게 내 역할이기 때문이다. 기자로 사는 세월이 아무리 길어지더라도 익숙해질 것 같진 않지만.


벤치에 누워 안정을 취하던 아버지는 아들의 화장이 끝나서야 몸을 겨우 일으켰다. 우리는 유족들 동의 하에 납골당에 동행하기로 했다. 납골당은 시골 외진 곳에 있었다. 거름 냄새가 코를 찔렀다. 길고양이 두어 마리가 배를 까뒤집고 누워있었다. 직원 한 명이 마중 나와 촬영 시 주의사항을 일러준다. 다른 참배객은 나오지 않게 해 달라, 타인의 유골함은 찍지 말라 등등. 하지만 첫 번째 주의사항은 신경 쓸 필요가 없어 보였다. 납골당에 있는 사람이라곤 우리뿐이었으니까.


잠시 후 유족이 도착했다. 아버지가 유골함을 안고 걸어온다. 그런데 영정사진이 없다. 아버지에겐 아들의 생전 사진이 하나도 없었다. 그는 자식에게 무심했던 자신을 자책했다. 직원이 납골당 가격을 설명했다. 유골함을 놓을 자리가 사람 눈높이에 가깝고 너를 수록 가격이 비쌌다. 천장이나 바닥 쪽에 붙어있는 게 가장 저렴했다. 아버지는 가장 높은 층 자리를 골랐다. 직원이 철제 사다리에 올라가 유골함을 건네받고 자리에 모셨다. 이름 석자와 생년월일, 사망일자만 적혀있는 초라한 유골함이었다. 고개를 숙여 고인에게 명복을 빌었다.


모든 장례 절차가 끝났다. 납골당 밖으로 나오니 어느덧 해가 지고 있었다. 막냇동생은 꼭 좀 기사를 써달라고 당부했다. 아버지는 여전히 말없이 어두운 낯빛으로 땅만 보고 있었다. 유족들과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유족들이 탄 차가 공터를 가로질러 석양을 향해 사라졌다. 이제 밤이 찾아온다. 아들을 잃은 아버지는 이 밤을 어떻게 견뎌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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