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고문당하는 느낌이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뽑은 지푸라기가 축구장 하나 정도 채울 양은 되겠다 싶었다.
가볼 수 있는 곳을 우선 가기로 했다. 먼저 경찰서로 향했다. 지방 시골 경찰서의 넉넉한 인심을 기대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금세 새로 지은 것 같은 건물, 철저한 보안시스템. 우린 로비 안으로 들어갈 수조차 없었다. 수사과장은 전화를 받지 않았고, 경무과장은 "다음에 인사 오시는 게 좋겠다"라며 껄껄 웃을 뿐이었다. 어쩔 수 없이 기자들의 주특기인 '뻗치기'를 시작했다. 누구든 나올 때까지 현관 앞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막무가내 앞에 장사 없다.
유리창 안쪽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잠시 후 수사과장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온다. 시골 경찰서에 기자가 두 명이나 서성이는데 신경이 안 쓰일 리 없었다. 과장이 현관문을 열어줬고, 그를 따라 형사과로 들어갔다. 과장은 녹취를 하지 말라고 했다. '오프 더 레코드'로 뭔가 말해주려나 싶었지만 그는 "확인 중에 있습니다. 지금은 말씀드릴 수 없고, 나중에 송치되면 물어보시죠"라고 한 마디 할 뿐이었다. 사건 현장만이라도 알려달라 졸랐지만 과장은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 피의사실 공표죄가 이러쿵저러쿵 원론적인 얘기만 늘어놓았다.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었다. 역시 시골 인심은 없었다.
경북 칠곡경찰서 / 직접 촬영
경찰서를 뒤로하고 피해자가 실려온 병원으로 갔다. 응급실 문 앞을 지키고 서있던 직원에게 그날 일을 물었다. 그는 사건 당시 근무자는 아니었지만 얘기는 전해 들어서 대강 알고 있었다. 그날 가해자들은 자신들의 차를 몰아 피해자를 데리고 왔다. 119엔 신고하지 않았다. 피해자는 온몸이 만신창이었다. 응급실 직원들은 범죄를 의심해 경찰에 신고했다. 병원 장례식장엔 피해자의 시신이 안치돼있었다. 그런데 빈소가 차려진 적은 없다고 한다. 유족은 왜 장례식을 치르지 않았을까.
가장 중요한 사건 현장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단서는 '20대 초반 남성 네 명이 같이 사는 왜관읍의 원룸'이란 사실 뿐이었다. 읍내 원룸촌을 몇 군데 알아내 무작정 건물을 뒤지고 다녔다. 임대인·부동산·주택관리업체 연락처를 발견할 때마다 전화를 걸고 만나는 주민마다 붙잡고 물었다. 하지만 허탕이었다. 다른 원룸촌도 마찬가지였다. 거의 모든 부동산을 수소문했으나 다들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이다. 적당히 발품 팔면 알아낼 수 있을 줄 알았건만 오산이었다. 왜관읍 면적은 여의도 면적의 18배가 넘었다. 읍이라고 얕본 잘못이다.
빌라 건물에 붙어있는 각종 안내문. 단서가 담겨있을지도 모른다. / 직접 촬영
오후 2시쯤이나 됐을까, 만보계를 보니 벌써 1만4000걸음이 넘었다. 이런 식으로 동네를 뒤지고 다니는 게 의미가 있을지 회의가 들었다. 하지만 발품 파는 것 말곤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 와중에 봄 햇살은 정말 따사로웠다. 그러던 중 모 초등학교 동창회 명패가 붙어있는 식당을 발견했다. 동창회장이라면 동네 정보에 밝지 않을까 싶어 무작정 들어가 사건 내용을 물었다. 하지만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중에라도 듣는 얘기가 있다면 연락 달라며 명함을 건넸다.
또 정처 없이 걷는데 시골답지 않게 영어만 적힌 가게들이 등장했다. 어느새 미군부대 근처까지 온 것이다. 칠곡에 왜 미군부대가 있는지 의문이다. 그런데 꽤나 분위기가 이국적이었다. 테이블에 앉아 맥주 한 잔 즐기고픈 마음이 솟구쳤다. 하지만 그럴 순 없었다. 할 일을 하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나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사실 맥주보단 화장실이 간절했다. 잠에서 깬 이후 양치도 한 번 못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적당한 카페를 하나 발견했다. 일단 좀 쉬자며 전화로 후배를 불렀다. 지친 탓인지 달달한 음료가 마시고 싶었다. 평소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달고나 라테를 시켰다. 생리적 욕구를 해결한 뒤 양치까지 했다. 육체의 상쾌함 지수가 급상승했다. 그리곤 푹신한 카페 소파에 앉아 통유리 너머로 읍내를 내려다보며 커피를 홀짝였다. 오후 세시가 넘었다.
칠곡 미군부대 근처에 있는 한 공인중개사 사무소. 영어 간판에 성조기가 그려져 있다. / 직접 촬영
'여기서 우리가 뭘 더 할 수 있을까' 의지가 흐물흐물해지려는 찰나. 갑자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온다. 아까 명함을 건넸던 식당이었다. 자신의 친구들에게 수소문해본 결과, 피의자로 의심되는 인물들이 강 건너 A 혹은 B 아파트에 산다는 얘기들 들었다고 한다.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누구도 사건 현장이 원룸이라고 말한 적 없었다. 지레짐작이었을 뿐이다. 이렇게도 일이 풀리는구나 싶어 희열이 솟구쳤다. 전화기에 대고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며 연신 굽신거렸다.
곧바로 회사 차를 불러 해당 아파트로 달려갔다. 매우 의기양양한 기분이었다. 후배는 경찰서로 보냈다. 또 다른 피의자나 피해자 유족이 조사받으러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읍내도 샅샅이 뒤지고 다녔는데, 아파트 한두 군데쯤이야 혼자서도 충분하다 싶었다. 먼저 A 아파트에 갔다. 경비원 한 명을 만났는데 매우 호의적이었다. 하지만 사건에 대해 아는 바는 없었다. 다만 얼마 전쯤 경찰이 아파트에 와서 CCTV를 확인한 적이 있다고 했다. 관리사무소에 가면 자세히 알 수 있을 거란다. 고지가 멀지 않았다.
관리사무소에 갔다. 신분을 밝히고 사건에 대해 물었다. 그런데 직원들은 처음 듣는 얘기란 표정이다. CCTV 열람 일지까지 펴봤지만, 사건 당일 경찰이 다녀간 흔적은 없었다. 거짓말하는 얼굴은 아니었다. 그럼 사건 현장은 B 아파트임에 틀림없을 터였다. B 아파트는 가파른 언덕 위에 있었다. 낑낑거리며 올라가 관리사무소를 찾아 들어갔다. 똑같은 질문의 반복. 이번에도 직원들 표정이 읽힌다. '그게 대체 뭔 소리세요?'
결국 잘못된 제보일 가능성이 컸다. 취재는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무기력하다 못해 억울했다.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이 가게 저 가게 들쑤시고 다니며 물었다. 그러다 한 술집에 들어갔더니 "걔네들 제가 건너 아는 사람 부모님인데…"라며 사장이 아는 체를 한다. 이번에는 정확한 정보일까? 희망 고문당하는 느낌이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뽑은 지푸라기가 축구장 하나 정도 채울 양은 되겠다 싶었다. 그래도 참을성 있게 추가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역시나 아니었다. 알고 보니 몇 년 전에 발생한 또 다른 감금 폭행 사건에 대한 얘기였다. 공교롭게 그 사건도 칠곡에서 일어났다.
길을 잃은 느낌이었다. 먼발치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던 경비원이 다가오더니 택시기사들에게라도 물어보라 조언해준다. 동네가 좁아서 택시기사들 사이 정보가 가장 빠르다는 것이다. 경비원은 내가 안쓰러워 보였나 보다. 하지만 택시기사들도 들은 게 없긴 마찬가지였다. 사건이 있던 건 맞긴 한 건지 의심되기 시작됐다. 하긴 우리는 이웃에서 일어나는 일을 얼마나 알고 있나. 하루 종일 직장에서 일하다 밤늦게 퇴근하는 길에 갑자기 기자가 '오늘 이런 사건이 있었는데 뭔가 알고 계시나요?'라고 물어오면 뭐라고 대답할까.
또 맥주가 간절해졌다. 전부 포기하고 술집에 들어가 맘껏 취하고 싶었다. 그리곤 숙소 침대에 널브러져 뒹굴거리는 거다. 경찰서에서 뻗치고 있는 후배에게서도 아무 연락이 없다. 아직 소득이 없다는 뜻이다. 무소식은 희소식이 아니다. 그 순간 팀장에게서 메시지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