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칠곡군 ○○읍 ▲▲길...' 팀장이 피의자들 주거지 주소를 메시지로 보냈다. 숨을 멈추고 네이버 지도에 주소를 붙여 넣었다. 과연 어떤 곳일까. 미적분학 문제를 붙잡고 한참 끙끙거리다가 포기한 뒤 답지를 펼치는 기분이었다. 만약 이미 지나친 곳이었다면 너무 허무할 것 같았다. 그런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현장은 가본 적 없는 곳이었다. 이곳을 왜 찾을 수 없었는지 도착하자마자 알 수 있었다. '원룸촌'이긴커녕 미군부대 근처 외딴곳이었다. 주변은 밭이고 좀 떨어진 곳에 카센터, 중국집, 구멍가게가 하나씩 있을 뿐이었다.
가장 중요한 폐쇄회로(CC)TV 확보에 나섰다. 시골에 어울리지 않게 빌라 주변으로 카메라가 둘러쳐 있었다. 현관엔 'OO건설'이라고 적힌 명패가 걸려 있다. 1층은 회사로 사용하고 나머지 세대엔 세를 놓은 것 같았다. 사무실 문을 두드렸는데 반응이 없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직원들은 이미 퇴근했을지 모른다. 감금 폭행이 일어난 '000호'로 올라갔다. 현관문엔 'CCTV 녹화 중'이라는 경고문과 함께 'LOVE HOUSE'라는 글귀가 붙어 있었다. '사랑의 집'에서 일어난 잔혹사. 친구는 죽도록 때렸으면서, 또 누군가는 사랑했던 걸까. 모순적이었다. 안에서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빌라 계단참에서 000호 바로 위층 주민을 만났다. 그는 사건 자체에 대해선 아는 바가 없었지만, 듣고보니 그간 이상한 점이 많았다며 얘기를 쏟아냈다. 가끔씩 새벽에 누군가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한겨울에 반팔·반바지를 입은 채 다리를 절뚝거리고 다니는 남자가 있다. 그 남자가 한 번은 담배를 달라고 해서 한 개비 준 적이 있다… 등. 주민이 설명한 남자는 피해자가 맞을 것이다. 그런데 좀 이상했다. 감금당했다고 들었는데, 밖에는 돌아다닐 수 있었던 건가. 그렇다면 그는 왜 지옥에서 도망가지 않았을까.
건물 관리자 연락처를 알아내 전화를 걸었다. 젊은 여성의 목소리다. 그에게 CCTV를 줄 수 없겠느냐고 물었고 그는 알아본 뒤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언짢은 반응을 예상했는데 대화는 생각보다 온건하게 끝났다. 하지만 기대는 없었다. 집주인들은 열이면 열 CCTV를 제공하지 않는다. 뉴스에 나면 입주자들이 불안에 떨게 되고 집값이 떨어진다는 이유다.
주차돼있는 차량 블랙박스도 확인하기로 했다. 물론 조건이 맞아야 한다. 사건 당시 차가 주차돼있어야 하고, 블랙박스 카메라가 현장 방향으로 향해있어야 하는 등. 그런데 블랙박스가 설치된 차가 많지 않았다. 주차장이 좁고 차가 많아 사고 날 확률이 높은 서울과 달리, 시골에선 블랙박스가 굳이 필요하지 않겠다 싶었다. 그리고 휴대전화 번호를 적어놓지 않은 차량도 많았다.
확인해볼 만한 차는 한 대뿐이었다. 휴대전화에 차주 연락처를 입력한 뒤 한 번 심호흡을 했다. 잠시 후 통화 버튼을 눌렀다. 단조로운 신호음이 한동안 이어졌다. 수화기 너머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등장한다. 무미건조한 음성. 최대한 공손하고 예의 바르게 상황을 설명했다. 하지만 남자는 '바쁜데 왜 귀찮게 구느냐'며 짜증을 내고선 전화를 끊었다. 기자 경력 5년이 넘었지만 마음의 굳은살은 여전히 부족하다. 날 선 언어를 들을 때마다 심장에 빨간 생채기가 난다. 영화나 드라마에선 기자들이 거악에 당당히 맞서는 존재로 그려지곤 하지만, 현실에서 그런 기자들이 얼마나 될까. 일단 나는 아니다. 누군가를 취재하기 전 심호흡을 수도 없이 한다. 상대방이 화를 내진 않을지, 해코지를 하는 건 아닐지 끊임없이 걱정한다. 그리고 많은 기자들이 나와 비슷할 것이다. 이런 불안을 이겨내고 취재를 계속하는 사람들이 기자로 남는다.
그런데 좀 전의 남자에게서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이웃 주민인 만큼 무슨 일인지 알고는 있어야겠다며 사건 내용에 대해 물었다. 설명이 끝나자 그는 돕고 싶어도 도울 수가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공교롭게도 그동안 블랙박스를 전원을 꺼뒀다는 것이다. 영상은 없었지만 취재원이 보인 의외의 호의에 마음의 생채기가 아물었다. 나이 서른 중반인데 아직도 마음이 단단하지 못하고 유약하다. 한편 상대방의 친절함에 쉽게 용기를 얻는다.
내친 김에 빌라 건너편 주택 CCTV에 도전하기로 했다. 누가 살기에 외딴 시골 주택에 카메라를 3대나 달아놨을지 궁금했지만, 이유를 따질 계제가 아니다. 그러나 집 안에 인기척은 없었다. 대신 담 옆에 고급 대형 세단이 주차돼 있었다. 집주인의 차일 가능성이 있었다. 또 한 번 심호흡을 하고 전화를 걸었다. 중년 남성의 목소리다. 사정을 들은 남성은 정중한 듯 보이지만 귀찮음이 역력한 목소리로 거절했다. 용기와 그 결과는 비례하지 않는다.
주차장엔 아직 전화를 걸어보지 않은 차 한 대가 남아 있었다. '그들이 타고 다니던 SUV'라며 다른 입주민들이 지목한 차다. 의식을 잃은 피해자를 싣고 병원으로 향한 그 차. 앞유리에 휴대전화 번호가 붙어있다. 전화를 걸까 말까. 우선 전화번호를 저장하고 카카오톡에 추가된 친구 목록을 살폈다. 프로필 사진에 있는 남성은 20대가 아닌 중년의 모습이었다. 피의자들과 성도 이름도 달랐다. 오히려 피해자의 성과 동일했다. 훔친 차이거나 피해자 아버지의 차일 수도 있다. 만약 후자라면 생각지도 못하게 유족과 연락할 방법을 찾게 된 것이다. 그런데 만약 차주가 피의자 쪽 사람이고 위험한 인물이라면 괜히 내 연락처를 남기는 꼴이 된다. 고민은 나중에 하기로 했다. 나중에 취재가 막다른 길에 다다르면 그때 전화해보리라.
그때, 경찰서에서 대기하고 있던 후배에게서 연락이 왔다. 20대로 보이는 남성 두 명이 유치장에 면회왔다고 한다. 면회 신청서를 엿본 후배가 수감자들의 이름을 알아냈다. 한 명의 이름이 상당히 특이했다. 이런 경우 취재가 수월해진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각종 SNS 검색이 쉬워지기 때문이다. 올린 게시물 가운데 범죄의 증거가 있을 수도 있다. 역시 피의자들의 계정을 찾기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게시물 개수는 0. 경찰 수사에 대비해 미리 삭제한 것이다.
"기다렸다가 면회객들에게 붙어볼까요?"라고 후배가 물었다. 대답이 좀 망설여졌다. 면회객들이 불량배라면? 게다가 그들은 두 명이었고 후배는 혼자였다. 후배가 다치기라도 한다면... 하지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기자가 된 이상 물러설 순 없는 상황이다. 얼마 뒤 후배는 면회를 마치고 나온 남성들과 만났다. 그들은 피의자들의 친구였고, 다행스럽게도 우려하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딱히 유의미한 정보는 얻어내지 못했다. "원래 착한 애들이에요. 일도 성실하게 하고." 사람의 생명을 앗아간 이들에게 '원래는 착한 사람이었다'는 항변이 가당키나 할까. 아니면 다른 친구들에겐 천사였던 걸까. 물론 취재 의도를 직감하고 둘러댄 말일 수도 있다.
그런데 다른 친구가 말을 잇는다. "이제 집에 사람이 없으니까, 고양이를 맡아달라고 부탁하더라고요"라고. 나는 반려동물을 키우지도 않고 적극적인 동물권 옹호론자는 아니지만, 동물학대를 저지르는 사람들에겐 분노를 느낀다. 그런데 이 경우는 반대다. 7개월 이상 인간이 감금당하고 피 흘리고 뼈가 부러져 숨졌다. 그런데 그 자리에 고양이도 함께 있었다. 본인들이 구속된 마당에 친구들에게 부탁까지 한 걸 보면 고양이에 대한 사랑이 작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어찌 그럴 수 있는가? 고양이는 끔찍이 사랑하면서 친구는 때려죽일 수 있다?
날이 어두워졌다. 이날 취재는 그만하기로 했다. 근처 분식집에서 늦은 저녁을 먹었다. 이후 편의점에서 소주와 과자를 샀다. 어제보다 더 많이. 그리고 똑같은 무인텔에 들어가 다시 한 방에 모여 술잔을 기울였다. 알코올이 모세혈관 곳곳으로 퍼지며 복잡한 생각들을 몸 밖으로 밀어냈다. 침대에 누워 까만 천장을 보며 고양이를 생각했다. 고양이는 빌라 안에서 벌어진 모든 광경을 목격했을 것이다. 고양이가 말을 할 수 있어 법정에 증인으로 설 수 있다면, 이 사건에 대해 어떤 증언을 할까. 자신을 돌봐준 주인들을 감쌀까, 아니면 그들의 잔혹성을 낱낱이 고할 것인가. 피로와 함께 걱정이 몰려왔다. 내일은 피해자의 시신을 화장하는 날이다. 반드시 유족을 만나야 했다. CCTV 확보에 실패한 상황에서 유족까지 만나지 못하면 취재는 모두 허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