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기자들처럼
앞뒤 가리지 않고 현장에 달려드는 날이 올까
납골당에서 칠곡 숙소로 돌아가는 길, 잠시 잊고 있었던 무거운 마음 하나가 떠올랐다. CCTV를 마저 구해야 했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출장지에서도 근무시간은 저녁 6시까지 지만, 나는 후배 기자와 다시 빌라에 가보기로 했다. 우리는 논밭이 펼쳐진 시골 한가운데 내렸고, 영상취재 기자 선배는 지역 맛집이라고 알려진 국밥집으로 배를 채우러 떠났다. 미군부대 근처에 있는 빌라. 이 외딴곳에 세 들어 살고 있는 이들은 대부분 주변 공단에 다니고 있는 기술자들이었다. 퇴근 시간이 훌쩍 지난 때였지만 인기척은 거의 없었다. 외식할 밥집도, 술을 한 잔 할 곳도 거의 없었다. 집에서 나올 이유가 딱히 없는 동네였다.
그런데 3층 집에 불이 켜져 있었다. 사건이 일어난 그곳에 지금 누군가 있는 것이다. 피의자 3명 중 2명은 구속됐다. 그렇다면 나머지 1명이거나 가족일 것이다. 후배가 한 번 가보겠다며 자원했다. 하지만 안에 누가 있는지, 어떤 위험이 도사릴지 모르는 곳에 후배를 섣불리 보낼 순 없었다. 친구를 수개월간 가두고 목숨을 빼앗은 이들이었다. 끊임없이 신체를 단련하는 경찰들도 방검복이나 방검장갑을 착용하고 임하는 현장이다. 펜이 칼보다 강할지는 모르겠으나 기자의 몸뚱이는 여타 다른 인간처럼 유약하다.
그래도 후배와 함께 일당이 살고 있던 집 현관 앞까지 가봤다. 안에서 별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손을 들어 문을 노크하면 일은 일어난다. 관찰자를 넘어 어떤 식으로든 사건에 개입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시도해야 하는 일일까 계속 의문이었다. 피의자들에게 범행 동기를 물을 순 있겠지만 그건 검찰 송치 과정에서도 던질 수 있는 질문이다. 욕설이든 해명이든 리포트에 담을 수 있는 싱크(sync)도 나올 테지만 필수적이진 않다. 괜히 상대방과 시비가 붙었다가 일이 꼬여버릴 수 있다. 나는 '굳이' 사건의 지평선을 넘지 않기로 했다.
그보다는 CCTV를 찾아야 했다. 오전에 들렀던 집에 다시 가봐야 하는데 영 면구스럽다. 마침 동네를 지나던 할머니 두 분을 만나 사건에 대해 여쭸다. 안 그래도 온몸이 멍든 남자가 집에 갈 차비가 없다고 하길래 안쓰러워 몇 천 원 줬다고 했다. 그는 왜 돈을 꾸고도 집에 돌아가지 않았을까. 할머니들께 CCTV가 달린 집에 사는 사람들과 아는 사이인지 물었다.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해서다. 할머니 한 분이 잘 모르는 사이라고 답하자마자 갑자기 담벼락 쪽을 향해 소리친다. "○○댁~! 함 나와보소!" 그러자 잠잠하던 집 안에서 인기척이 들린다. 아 이게 시골의 이웃살이구나.
아침에 본 중년 여성이 '진짜로 왔느냐'는 표정으로 우리를 맞았다. 그는 "아저씨가 알면 혼나는데..."라며 말끝을 흐리더니 잠시 후 '에라 모르겠다'는 식으로 안으로 우릴 들였다. 우리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거실에 엎드려 CCTV 영상을 뒤지기 시작했다. 남편분이 귀가하기 전까지 그림을 찾아야 했다. 온몸의 신경이 곤두섰다. 다행히 늦지 않게 몇몇 영상을 확보할 수 있었다.
영상 속 피해자는 껑충 큰 키에 비쩍 마른 체형이었다. 머리는 삭발 상태였고 걸음걸이가 불편해 보였다. 차가 지나갈 때마다 손을 뻗는 등 이상한 행동도 보였다. CCTV엔 피해자가 숨을 거둔 날 새벽, 피의자들 차량이 어디론가 이동하는 장면도 담겼다. 이날 피의자들은 정신을 잃은 피해자를 태워 응급실로 향했다. 영상엔 정말 많은 정보가 담겨있다. 피해자는 마르긴 했지만 - 피의자들이 음식을 주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 예상과는 달리 체격이 좋았다. 그리고 삭발을 한 점도 눈에 띄었다. 학대의 일종일 가능성도 있었다. 또 걸음걸이가 불편해 보인단 점에서 폭행이 가해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그의 이상행동에서 심리상태가 온전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었다.
이로써 리포트 구성에 필요한 요소들은 다 갖춰졌다. CCTV, 현장 스케치, 목격자 인터뷰, 피해자 유족 인터뷰 등. 조금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후배와 삼겹살에 소주 한 잔 하러 근처 고깃집을 검색하던 차, 불 켜진 창문이 눈에 밟힌다. 여기에 피의자 인터뷰를 더한다면? 하지만 이내 마음을 내려놓는다. 나도 어쩔 수 없이 겁 많은 인간이다. 나도 언젠가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기자들처럼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날이 올지.
*에필로그
다음날 출장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간 뒤 며칠에 걸쳐 여러 편의 리포트를 썼다. 이후 검찰은 피의자들에게 특수중감금치사를 비롯해 공동폭행, 특수상해, 공갈, 강요 등 총 7개 혐의를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 수사 결과 이들은 2021년 7월 피해자와 동거를 시작한 이후 화투 등 갖가지 내기로 빚 1000만원을 지게 만들었다. 그런 다음 돈을 갚으라며 피해자에게 배달일을 시키고 임금 수백만 원을 빼앗았다. 돈을 갚지 못하자 수시로 물고문을 하고 청양고추를 먹이는 등 가혹행위를 일삼았다. 나중엔 마음대로 다니지 못하도록 수갑까지 채웠다. 피해자는 숨지기 한 달 전부터 용변도 가리지 못하는 상태인 것으로 파악됐다.
피의자들은 재판부에 반성문을 20여 번 제출하며 선처를 호소했다. 그러나 피해자 아버지는 자신에겐 사과 한 마디 없었다며, 그들을 용서하지 않았다. 이후 이들은 특수중감금치사, 공동폭행 등으로 검찰에 의해 기소돼 재판에 넘겨졌다. 법원에서 밝혀진 진상은 더욱 참혹했다. 대구지방법원은 2022년 9월 27일 이들에게 각각 6, 5, 3년형을 선고했다. 20대 초반의 미래가 창창한 청년을 고통스럽게 괴롭힌 뒤 목숨을 앗아간 범죄의 대가로서 적당한지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