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현장에서 17화

비밀수사국 요원의 난동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방한 비하인드

by 정준영

2022년 5월 20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다음날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방한했다. 흔치 않은 초대형 이벤트에 정치부 기자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지만 사회부 기자는 오래간만에 놀기 딱 좋은 날이었다. 바이든 대통령 환영-반대 시위대가 한 바탕 붙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나는 A경찰서 근처에 새로 생긴 스타벅스에 자리 잡고 아메리카노를 홀짝거리며 여유를 즐기기로 했다. 그러나 이 작은 즐거움은 곧 산산조각이 났다.


'바이든 경호팀 선착대, 술 취해 용산서 난동'


갑자기 초특급 정보가 들어왔다. 미국 대통령 경호팀이 한국에서 소란을 피웠다면 그 자체로 뉴스가 된다. 하지만 단서가 너무 부족했다. '한 경호원이 18일 밤에서 19일 새벽 사이 이태원에서 술을 먹고 난동을 부렸다'는 내용뿐이었다. 그야말로 멘땅에 헤딩이다. 팀장은 경찰을 취재하되 바이든 경호팀 관련 언급은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정보가 새 나갈 것을 염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A를 취재해야 하는데 A를 언급하지 말라니, 일이 더 어려워졌다.


일단 친한 경찰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태원 관할인 A경찰서 소속은 아니었지만 혹시 경찰 내부에서 정보가 돌았을까 해서다. 하지만 그는 금시초문이라고 했다. 그다음 이태원 상인회에 전화했다. 주취난동은 보통 술집에서 일어난다. 상인회 간부 역시 처음 듣는 얘기란다. 관할 파출소장도 사건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 후배에겐 이태원 상권을 탐문해보라 지시했다. 평일 오전, 술집이 문을 열기엔 한참 이른 시간이었지만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리고 나는 A경찰서로 갔다. 여기저기 다 찔러보는 수밖에.


정보관에게 물었더니 자기 소관이 아니라며 말을 아꼈다. 전에 한 번 만난 적 있는 모 형사는 형사 O팀에 물어보란다. 뭘 알고 대답한 건진 모르겠지만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O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전화기가 꺼져 있다. 혹시 예민한 사건을 맡아서 언론을 피하고 있는 걸까. 최후의 수단은 형사과장이었다. 하지만 제대로 아는 것 없이 대충 넘겨짚는 투로 물으면, 대부분 과장들은 모르쇠로 연기한다. 하지만 구체적인 언급을 피하라고 한 팀장의 경고가 떠올랐다. "혹시 며칠 전 밤에 미국인 사건 있지 않았느냐"라고 물었더니 역시 과장은 들어본 적 없다고 답했다. 시계를 보니 벌써 점심시간이었다. 직장인들이 업무에서 도피하는 시간.


근처 카페에서 커피와 샌드위치를 먹는 둥 마는 둥 한 뒤 다시 경찰서 로비에 우두커니 앉았다. 잠시 후 팀장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뭔가 좋은 수가 떠올라 연락한 것은 아니었고, 그도 막막한 터였다. 나는 이렇게 이상 단도직입적으로 묻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취재가 안 돼서든 정보가 새 나가서든 기사를 못쓰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럴 바에야 속 시원하게 묻는 게 낫다. 팀장이 수긍했고, 나는 다시 형사과장에게 전화해 매우 구체적인 언어로 물었다. "바이든 대통령 경호팀이 술 먹고 시비 붙다가 사람 때렸다는 게 사실입니까?"라고. 잠시 정적이 흐른다.


"네 뭐, 그런 사실이 있었고…."


오전에 진작 대놓고 물어볼걸 후회막심이었다. 과장은 피해자뿐만 아니라 경호원에 대한 조사도 한 차례 진행했다고 했다. 내사도 아닌 입건. 사건 발생 장소는 그랜드 하얏트 서울 호텔이었다. 술을 마신 뒤 택시를 타고 돌아와서 사고를 쳤던 거다. 곧바로 영상취재 의뢰를 올리고 호텔로 달려갔다. 하얏트 호텔은 바이든 대통령이 방한 기간 묵는 숙소다. 일부 경호팀이 미리 경호 상황을 체크하기 위해 한국에 도착했있던 것으로 보인다. 과장에 따르면 이미 다른 신문사에서도 냄새를 맡았다고 했다. 촌각을 다투는 만큼 이동하면서 온라인 기사로 먼저 작성, 출고했다.


하얏트 호텔 앞엔 한국 경찰이 쫙 깔려있었다. 특수부대 차량도 드나들었고, 양복을 빼입은 경호원들도 한 트럭이었다. 건물 옥상에 저격수도 있지 않았을까. 우리는 주변을 카메라로 스케치하고 스탠드업을 촬영했다. 후배에겐 CCTV를 물색해보라고 지시했다. 하얏트 호텔에 가본 사람은 알겠지만 호텔 정문을 비추는, 즉 폭행 장면이 담긴 영상이 있을 가능성은 높지 않았다. 호텔 CCTV가 있는진 모르겠지만 5성급 호텔에서 투숙객 관련 영상을 언론에게 제공해줄 리 없다. 더군다나 외교적으로 민감할 수 있는 일이다. 주변에 상가라곤 멀찍이 떨어져 있는 카페와 레스토랑 두어 곳뿐이었다. 그중 한 곳에서 CCTV를 보여주겠다고 했다. 단 회사 공문을 보내달란다. 공문 작성 절차는 꽤나 번거롭다. 이런 노력을 들일 가치가 있을진 의문이었지만 밑져야 본전이다. 나는 회사에서 공문을 받아 후배에게 전달했다.

바이든 스탠드업.jpg

슬슬 회사로 복귀하려는데 팀장이 사고 친 경호원이 묵는 방 호수를 알아냈다. 가서 경호원 입장을 들어보잔 취지다. 나는 한껏 긴장했다. 경호원을 만나면 무얼 물어야 할까, 화를 내진 않을까? 뭐 그런 걱정들. 하지만 팀장은 무리하지 말자고 했다. 나는 내심 안도했다. 얼마 뒤 후배가 CCTV를 확보했다며 영상을 보냈다. 불특정 한 택시와 경찰차가 이동하는 장면뿐이었지만 없는 것보단 훨씬 나았다. 취재는 대체로 순조로웠다.


쟁점은 해당 경호원을 국내법으로 처벌할 수 있는지 여부였다. 주한미군이거나 소속 군무원, 가족이라면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제22조(형사재판권)에 따라 면책특권을 갖는다. 하지만 해당 경호원은 국토안보부 소속으로, SOFA 적용 대상이 아니다. 다만 외교관 신분으로 들어온 경우라면 '외교관계에 관한 비엔나 협약'에 따라 면책될 가능성이 있다. 이런 내용으로 군 사건 전문 변호사와 전화 인터뷰했다.


한참 편집실에서 그림을 붙이고 있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 ○○○ 기자님? 나 △△△ 방송국 PD인데요. ○기자가 쓴 기사 보고 우리도 A경찰서에 전화를 걸었는데 자기네들은 모른다고 해서. 확인 좀 가능할까요?"라는 내용. 입 밖으로 욕이 튀어나올 뻔했다. 자신이 뭔데 다른 언론사 기자한테 확인을 해달라 말라 요구하는지. 무임승차도 유분수, 어이가 없었다.


그런데 느낌이 좀 이상했다. 어눌한 한국어. 그리고 경찰서 과장에게 사건을 묻는 건 상식인데 경찰서 당직실에 전화를 걸었다? 혹시나 해서 어디 방송국이냐며 물었다. 대답을 듣고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나는 그가 M본부 PD라고 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첫 글자만 다른 미국 방송국이었던 거다. 나는 친절히 경찰서 언론 소통 창구를 알려줬다. 내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았는지는 의문이었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우리 일이 원래 이렇다.


다른 기사를 쓴 선배와 회사 근처 양고기 집에서 뒤늦은 저녁을 먹으며 소주 한 잔 곁들였다. 그런데 아까 그 미국 PD가 다시 전화를 걸었다. 뭐가 더 궁금한 게 있는 걸까. "○기자, 보답으로 좀 전에 메일로 뭐 하나 보냈는데 확인해봐요. 내가 줬다곤 하지 말고. 그럼 수고!" 메일함을 확인하니 꼬부랑 말이 한가득 써진 메일 한 통이 와있다. 해당 경호원 난동에 대해 미 당국이 자국 언론에 배포한 공식 입장이었다. 문제가 불거진 경호원은 미국 비밀수사국 소속이었고, 한 명이 아닌 두 명이었다. 그들은 즉시 직무에서 해제됐다. 그리고


"The two employees were sent back to Washington on a flight at 4pm local time today."


호텔 방에 가볼까 말까 고민했던 시점에 경호원은 이미 미국행 비행기에 있던 것이었다. 그는 면책 특권 적용 대상이 아닌 걸로 보이지만, 이미 한국에 없는 사람을 처벌할 수 있을지 여부가 새로운 쟁점이 됐다. 경찰은 단순한 폭행 사건인 만큼 이미 해놓은 조사만으로도 혐의 입증은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피의자가 국내에 없더라도 검찰에 송치할 수 있고 기소도 가능하다. 폭행 정도가 가볍다면 약식기소를 할 수도 있다. 정식 재판 없이 서류 검토만으로 벌금형을 선고해 달라고 검찰이 법원에 청구하는 절차다. 하지만 처벌하려면 당사국 협조가 필요하다. 이 경우엔 미국의 송환 의지가 있어야 하는데, 과연 어떨까.


아무튼 PD의 메일을 받고 고민했다. 새로운 내용인 만큼 오늘 밤 뉴스에 반영했으면 좋겠지만 이미 물리적인 시간 여유가 없다. 다른 국내 언론에 정보가 새지 않길 바라며 기도하고 있다가 다음날 기사를 쓰는 게 최선이다. 하지만 잠시 후 해외에서 관련 보도가 나왔고, 국내 언론은 외신을 인용하며 해당 소식을 전했다. 우리는 지구촌 사회에 살고 있고 정보는 빛의 속도로 전파된다. 아쉽지만 때로는 첫 술에 배부를 줄도 알아야 한다. 이 날따라 술맛이 그다지 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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