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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뿔 Aug 26. 2022

당신과 나사이에 거리가 있어야..

황경신 시인의 '거리'에 대하여


거리


당신과 나 사이에 거리가 있어야

당신과 나 사이로 바람이 분다


당신과 나 사이에 창이 있어야

당신과 내가 눈빛으로 마음을 나눌 수 있다


어느 한쪽이 창 밖에 서 있어야 한다면 그 사람은 나였으면


당신은 그저 다정한 불빛 안에서 

행복해라 따뜻해라


                                                                                      - 황경신 -


이 시 해석 좀 해주세요. 어떤 느낌인지는 알겠는데 확실하게 와닿진 않네요...







이 시의 제목은 '거리'입니다.

길도 '거리'가 되지만 여기서는 공간이 떨어져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겁니다.


'거리'가 없는 관계를 생각해보세요....


어린 시절 방한칸에 여섯식구가 살았던 피난민시절의 부산, 

와글와글 바글바글 콩나물 시루와 같았던 국민학교 교실..

신병훈련소와 자대배치를 받으면서 분대가 함께 생활했던 내무반 등등


아침에 화장실에 가면 누군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배식을 받으려고 해도 줄서서 받아야하고 

샤워실이용도 맘편히 못합니다.


단체생활이죠...


개인의 삶보다는 집단이 우선시 되는 그런 시기를 보낸 적이 있었습니다.


거리가 없는 인간관계도 지나고 보면 추억일 수 있습니다만 

다시 그렇게 지내라고 한다면 아마도 1시간도 버티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이미 혼자 지내는 공간에 익숙해져 버린 세상에 살고있거든요...

이 때 '거리'라는 것은 

사람이 자존감을 유지할 수 있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공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사이에는 거리가 없는 것이 좋을까요?

아니면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좋을까요?


담벼락이 둘의 사랑의 감정을 더 아쉽고 깊은 곳으로 이끕니다.

이 시에서 말하는 '거리'는 당신과 나의 거리를 말합니다.

내가 당신을 좋아하는 만큼 나는 당신과 조금이라도 떨어져있고 싶지 않은데

역설적으로 당신과 나 사이에 거리가 있어야 바람이 분다고 시인은 말합니다.


사랑한다고 공간을 좁히는 게 능사는 아니라는 겁니다.

약간은 아쉽고 약간은 서먹할수도 있지만 

우리 사이에 '거리'가 있음으로 해서 바람이 불어옵니다.

꽉막힌 콘크리트 벽이 맞닿아 있는 공간에서는 바람이 불 수가 없죠...


당신과 나사이가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라고 해도 

틈을 두지 않으면 우리의 감정은 갇힌 공기처럼 답답하고 탁해질지도 모릅니다.


한 줄기 바람이 주는 시원함과 청량함은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선물인 셈입니다.

이탈리아 베로나에 위치한 줄리엣의 발코니

그러고 보면 거리만 있고 교감하지 못한다면 쉽게 멀어져버리는 것이 연인관계일텐데

거리를 두고 마주한 당신과 나는 창이 있어서 눈빛을 교환할 수 있습니다.

그 눈빛을 통해서 마음을 나누고 그럼으로 해서 떨어진 거리만큼 다시 보상을 받게 되는 거군요....


그런데 창이 있으니 안과 밖이 나누어집니다.


자연히 안은 따뜻하고 밖은 추울 수 밖에요.


그러니 당신은 안에서 행복하고 따뜻하기를 바라고

나는 그저 창밖에서라도 당신과 마음을 나눌 수 있으니 행복할 수 있다고... 시인은 노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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