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솔은정 Mar 24. 2024

항암이 두려운 이유

과거의 경험으로 현재를 살 필요가 없지.




2019.07.11


어제는 세브란스에 결과지를 받으러 가야 하는 날이라 잠시 외출증을 끊어서  다녀왔다.

세브란스에서 나오기 전에 유전자 검사를 했었고 그 결과를 들으러 오라고 해서다.

어제 성모병원 주치의 선생님이 오셔서

"이제 항암 시작하셔야 해요." 하길래

"저 안 하고 싶어요, 선생님. 남편 상태도 불안하고, 꼭 해야 하는 건 아니지 않나요? 수술했으니까요."

"무슨 말씀하시는 거예요? 항암 해야 합니다. 수술해서 다 도려냈다 해도 눈에 보이지 않는 세포들도 있고

치료 과정이라는 게 있어요. 남편 사정은 알고 있지만, 환자분의 상태도 급하다는 걸 아셔야죠."

"네, 선생님. 조금만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나는 항암이 무섭다.

 엄마는 유방암, 아빠는 위암, 시아버님은 전립선암으로 돌아가셨는데,

나는  항암 과정을 지켜봤고, 마지막의 그 고통스러운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과거에 보고 들은 경험으로  생각하는 것들이 암이 고통스럽다고 생각하는 건지, 항암이 힘들다고 생각하는 건지 혼란스럽다.

보통 내가 겪었던  경험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다시 겪어보지 않고서는 모르기도 하고

뛰어들기 전에는 두렵고 무섭다.

내가 겪은 경험이 진실이라고 생각하니까 말이다.


세브란스 암 예방센터 선생님에게 내 암 조직에 대한 설명을 잘 들었다.

사실 내 귀에 잘 들어오지도 않는다.  

크기도 그다지 크지 않았고, 초기에 발견해서 수술을 양가슴 모두 절제하고 난소까지 다 절제했으니

항암은 안 해도 되지 않을까 하고 선생님께 조언을 구했다.

선생님은 깜짝 놀라면서

" 당연히 해야지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이 경우라도 저는 꼭 합니다. 무조건 해야죠."

하길래 항암을 하지 않을 수 있을 거라는 말을 듣고 싶은 조그만 희망도 다 꺼져버렸다.

항암도 해야 하고 표적치료도 해야 한다고 신신당부하시는 말씀을 뒤로하고 지하철을 탔다.


아직 배액관이 네 개 모두 달려 있기도 하고  통증이 남아서 빨리 걷지 못하는데,

병원에만 있다가 오랜만에 시내로 나가니 사람들의 걷는 속도가 무서웠다.

 내 속도는 라르고인데, 내 앞으로 걸어오거나 옆을 스치는 사람들은 프레스토.

상처 부위가 아프니 어깨가 닿을까 봐, 밀쳐질까 봐 긴장이 되면서 몸이 뻣뻣해진다.

 나도 아프기 전에는 저리 빨리 걸었겠구나 싶기도 하고~

다 나아도 조금 천천히 느긋하게 걸어야겠구나 생각했다.

그래도 내가 진심 원하는 건 템포 프리모다. (처음의 빠르기로)



세브란스에서 돌아와 풀이 죽어 쉬고 있는데

주치의 선생님이 퇴근도 안 하시고 병실에 찾아오셨다.

내가 항암비가 비싸서 안 하는 줄 알고

혹시 돈이 너무 비싸서 그러냐고 조심스레 묻는다.

보험은 들었는지. 이렇게 시간을 자꾸 끌면 1년 안에 항암을 마치지 못해서 내야 할 돈이 더 커진다고

나보다 더 걱정이시다. 표적은 1년 안에 다 마쳐야 한다고 그러신다.

그리고 생각보다 돈 많이 들지 않는다고,

대략 비용까지 예상액을 말씀해 주시고 설득하신다.

아마 남편이 7층에 누워 있는 걸 아시는 까닭일 게다.

선생님 말씀하시는데 난 내 일이 아니고 남의 일을 듣고 있는 것만 같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원래 항암의 고통을  듣고 본 시간이 길어서 싫은 건데.  

이럴 땐 아는 게 병이라는 말이 확실하다.


 아침에 간호사선생님 한 분이

“김은정 님 가시면 너무 쓸쓸할 거 같아요~.” 하길래

“응. 선생님 쓸쓸할까 봐 나 항암 하러 올해 말까지 자주 입원해요.”

하니 손사래 치면서

 “에고. 그런 일로 보고 싶지는 않은데.” 한다.


항암 안 하고 싶다.

진짜 안 하고 싶다.

머리카락 빠져서 못생겨지는 것도 싫고,

퉁퉁 부은 얼굴이 되는 것도 싫고,

밥도 못 먹고 자꾸 구역질하는 것은 더 싫고,

남편을 돌봐야 하는데 내가 더 환자가 되는 건 더더 싫고,

재경과 윤서에게 이런 모습 보여주는 건 더더더 싫다.

어린 시절 아픈 엄마의 모습이 내 머리에 각인되어 있는 것처럼 내 딸들에게 그런 모습  보여주기가 싫다.


그래도

어차피 하는 거라면~

꼭 해야 하는 거라면~

항암 기간 내내 착실히 일기도 잘 쓰고,  지혜롭게 잘 넘어가 보자.

내가 살면서 모든 헤어스타일은 다 해 본 듯하다. 단발머리. 숏 컷, 긴 머리

 딱 한 가지 빡빡이 머리만 빼고 말이다.

태어날 때부터 머리숱이 많았으니 일평생 빡빡머리는 없었는데.

 이번에 확실히 민머리 스타일도 해보겠네~


주치의 선생님이 약속하고 가셨다.

항암 할 때 통증이란 통증은 다 없애주마고, 모든 진통제가 기다리고 있으니  

말만 하면 다 주겠다고 하셔서 날 웃게 하신다.

죽는 건 안 무서운데 아픈 건 무섭다고 한 이유는

죽어본 적은 없지만 아픈 건 겪어봐서 그런 거지.

이번 내가 받는 항암은 좀 다를 지도 몰라.

견뎌야 할 이유가 있으니까.

환자 역할보다 간병인 역할을 하려면 버텨야 하니까.



이전 05화 괜찮지 않아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