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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솔은정 Mar 17. 2024

괜찮지 않아요.

우리의 고난이 다른 이에게는그래도  안도가 되기를

2019.07.09.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디모데후서 1장 7절     


병원에서 그이와 함께 지낸 시간이 두 달 넘어간다.

지난주 12시간의 수술을 마치고 회복실에 누워 있는데 깨어날 때 정말 고통스러웠다.

통증은 둘째치고 구역질이 계속 올라와 너무 힘든데 간호사 선생님이 내게 와서 묻는다.

“환자분!! 괜찮으세요?”

“우웨에엑! 네! 괜찮아요!”

그 순간 알아차렸다. 나 하나도 안 괜찮다는 것을.

괴롭고. 힘들고, 무섭고, 진짜 아픈데 왜 나 자꾸 괜찮다고 하지?

“괜찮아요!”

 버릇처럼 습관처럼 내가 자주 하는 말이다.

중학교 영어 시간에 

“How are you?” 대한 답을 

“Fine, thank you! And you?”

이걸로 너무나 열심히 외워서 그런가?          

괜찮지 않은데 괜찮다고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순간 눈물이 났다.


“선생님. 아파요, 힘들어요.”

“네! 힘드시죠. 회복실에서 나가시면 언제든 아프다고 말씀하세요. 진통제가 다 있어요.

참지 마시고 언제든 말씀하세요.”

“네.”

말 잘 듣는 아이처럼 난 순순히 대답했다. 

사실 눈 뜨자마자 내 아픔은 잠깐이고, 

그이의 방사선 치료는 어떠한지, 발작은 일어나지 않았는지 그 걱정부터 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려서 

괜찮지 않음을 알았던 것이다.

 수술 전 날 내 옆에서 간호하던 큰 딸 재경이가 

“엄마는 괜찮냐 물어보면 만날 괜찮대!”

“괜찮다고 해야 그래도 좀 괜찮아질 거 같아서. 말이 씨가 되니까. 혹시나 하고.”

수술하는 날 재경이가 와서 있어주는데, 빨리 걸어야 회복도 좋대서 수술 다음 날부터 걸었다.

퉁퉁 부은 얼굴로 복도를 걷는 중인데,

그이의 주치의 선생님이 회진을 돌다 내 얼굴을 보고 엄청 놀라신다.

“여기 왜 계신 거예요?”

그렇지.. 난 7층 신경외과 남편 간병인이었는데. 

“ 그러게요. 저도 환자로 지내게 되었네요.”

그이 방사선 치료 중에는 요양병원에서 지내려다가, 내 몰골과 그이의 잦은 발작으로 인해 신경외과 선생님이 다시 입원을 허락하셔서 그이도 다시 성모병원으로 오게 되었다. 

그이는 7층 신경외과 병동,

나는 6층 산부인과 병동, 유방암은 12층 병동이지만, 

난소수술을 겸해서 그냥 여성분들 많이 계시는 6층에서 지내게 되었다     

 그가 내 병실에 와서 간병인 베드에 누워있으면 수간호사 선생님이 소스라치게 놀라시곤 한다.

“남자 환자분이 왜 여기 계셔요? 여기 여성구역입니다.”

“네.. 제 남편이에요.”

“네에????   아아.... 네에~~”

이런 반응은 이제 익숙하다.

이미 6층과 7층에는 부부암환자로 유명해졌다.

우리의 처지는 가끔 다른 환자들이 자신의 처지를 들여다볼 때 

그래도 내가 저들 처지보다 낫다는

안도감을 주는 것 같기도 하다. 가끔 남의 불행이 나의 일상의 평온에 감사를 주기도 하니까..


 아프고 힘들어서 늘 울고 힘들 거 같지만, 그래도 여전히 우리는 장난도 잘 치고 

서로 쳐다보고 웃기도 한다. 

 병상 커튼을 다 치고 조용조용 이야기하다가 가끔 내가 방귀를 뀌면

눈치 없는 그이는 내게 참 목소리도 크게 말한다. 옆 병상에 너무나 창피하게 말이다.

“ 방귀 뀌었어? 하하하하하"

“ 여보! 눈치도 없이 대체 왜 그래! 그럴 때는 아! 시원하다.! 이렇게 말해야 센스 있는 남편이지! 

 의사 선생님이 당신 뇌에서 센스만 다 도려낸 거 같다.”

그 순간 방귀가 또 나오는데 눈치 센스 제로인 남편이 또 말한다.

“시원해?”     

눈치와 센스만 깔끔하게 뇌에서 도려낸 거 같은 이 남자는 간병인의 자세는 하나도 없이

오롯이 해맑은 환자로  지내는 중이다.

나? 환자 역할 괜찮냐고?

괜찮지 않다. 

간병인도 환자도 아닌 그냥  이 해맑은 남자의 아내로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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